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7-03-25 10:28
존 H. 왈튼의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서평)
 글쓴이 : 예성
조회 : 1,740  

서평: 존 H. 왈튼,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

Bookreview: John Walton, <The Lost World of Genesis One>

 

 

박석호

Seokho BAK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softpsh1@hanmail.net

 

 

(Received September 25, 2016,

Accepted on October 7, 2016)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하면서 창세기 1장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성경에 나오는 어떤 말씀과 사건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의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라면,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게 하는 일, 그리고 홍해를 가르는 일 등은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창세기 1장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왜 그리고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맹목적으로 이 천지창조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씀이 특별하고 중요하기에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그 의미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이란 이름으로 특별한 말씀을 특별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창조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그리심, 2011)의 저자는 “구약성경은 현재의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며 모든 인류를 위해 기록되었지만 그러나 우리를 향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해 기록되었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당시 이스라엘이 속한 문화와 문서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가 물질적 창조가 아니라 기능적 창조를 보여 준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당시 고대 우주론은 기능적 서술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등의 당시 문서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이 우주의 물질적 창조보다는 우주의 각 부분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기능으로 움직이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다. 창조 기사를 받았던 이스라엘인들도 바로 이런 고대 근동에서 살았기에 이런 배경 속에서 이 글을 이해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과 신학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대립적인 관계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창조과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컨코디즘(Concordism, 과학적 일치주의)이 보수적인 성경 관과 신앙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과학을 더 배제하고, 성경만 믿으라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저자도 이런 과학적 일치주의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물질적 창조를 주장하고 성경 무오를 지지하려고 나선 창조과학이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과학을 더 불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성경의 문자적 읽기를 제시한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말한 의도와 청중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해석을 하자는 말이다. 다시 말해, 본문이 기록된 그 시대의 관점으로 읽는 것이다. 창조 기사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를 물질적 창조로 받아들였을 때보다 기능적 창조를 받아들일 때 과학 이론을 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다. 진화론이 무조건 잘못 되었고 불경스러운 이론으로 금지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고 목적론적 진화론 같은 경우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물질적 창조가 이해되지 않아 교회를 떠나고, 신앙에 회의마저 갖게 되는 사람들에게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창조 기사가 성전으로서의 창조를 묘사한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고대 근동 자료들을 비교하며, 근동에서 우주 창조가 성전 창조의 의미였고 기능적 창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창조 기사를 보면 하나님이 각 날마다 우주의 각 부분들을 정하시고, 제 역할을 하도록 기능을 부여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는 성전 낙성식이라 하여, 하나님께서 성소에 좌정하셔서 실제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이라 한다. 만약 창조가 단지 물질적 창조라면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역할은 이미 완성되었기에 창조가 과거로 끝나버린 사건이 된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가 물질의 창조가 아니라 기능의 창조라면, 과연 물질은 언제 창조되었냐는 질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경에서 물질적 창조를 중요하지 않게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이렇게 더 중요한 기능적인 것을 창조하셨다면 물질적인 것을 창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저자는 물질적 창조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정확히 알 수 없고,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적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라 논증한다.

 

이 책은 그동안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물질적 창조라고만 굳게 믿어 왔던 필자에게 굉장히 큰 충격을 줬다. 고대 근동의 세계관과 당시 사람들의 우주론 인식과 배경을 바탕으로,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진 기사라고 해석하는 것이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의 여러 자료들과 성경을 비교·대조하여 당시의 인식을 파악하는 게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성경의 말씀을 더 깊이(본 저자의 의미에 맞게)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책에서 제시된 창조 기사의 이론과 접근법과 해석을 통해 신학적 통찰력의 새로운 방법들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을 전체로 보고 해석하며, 종합적인 시각과 관점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신학과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생각할 수 있었다. 진화론을 비롯하여 과학적인 여러 부분들을 마치 믿음이 아닌 불신이요,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큰 죄를 범하는 것처럼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신학과 과학이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으며 서로 상당부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이를 통해 신학적인 부분들이 더 확고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대 근동의 신화와 외부 자료들을 성경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많은 부분을 고대 근동의 세계관을 근거로 창조 기사를 설명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창조를 고대 이방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고대 이방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물질 창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순서가 잘못된 것 같았다.

 

창조가 우주 성전의 창조이고, 제7일은 성전 낙성식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도 당시 세계관과 신화들을 통해 이끌어 낼 수 있고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해석이다. 고대 근동의 자료들에서 우주 창조는 그들의 터전을 만드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여기에는 터전을 만드는 데 반대하는 적 세력이 있고, 아주 자기중심적인 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즉,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깃들여 있는 성경의 창조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게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아무런 적이 없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언제나 절대자이자 주권자이셨으며, 아무런 방해와 위협의 세력 없이 창조를 이루셨다. 물질과 그 기능까지 창조하셨다. 근동의 신화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자료로 성경의 창조 기사를 기능적이라고 말하는 주장에 의문이 든다.

 

또한 저자는 제7일 성전 낙성식 부분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제 시작되고, 그분께서 좌정하셔서 온전히 다스리시며, 우주가 기능적으로 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즉위식에 대한 내용도 문서마다, 신화마다 다르며 또 적을 상대로 승리하고, 이긴 자가 즉위하여 권위를 세울 수 있다. 그래서 이것 또한 성경 속 창조 기사와 비교한다는 게 불가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