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6-02-10 09:00
베트남에서 온 시 한편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325  

베트남은 지금 설 명절을 즐기느라 야단입니다.

온통 거리가 꽃들로 가득차고 화려한 네온싸인 장식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새해 새 아침 설 인사로 제가 쓴 시 한편 보내드립니다.

 

 

베트남 호치민 푸미흥에서

안 정헌 드림

 

 

 

외로움 이야기

 

 

외로움이란

식사 아무렇게나 잘 하다가 갑자기 지금 난 연명을 위해 뭔가를 입 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을 때

 

 

외로움이란

새벽녘 나도 모르게 다리 쭉 뻗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서 한참 어쩔 수 없이 쩔쩔 맬 때

 

 

외로움이란

사람들 틈새 정신없이 비집고 돌아다니다 퍼뜩 난 이 인간들과 아무 관계가 없는 외톨이임을 깨달았을 때

 

 

외로움이란

어쩌다 부엌 설거지 통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 바라보다가 설거지해야 할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발견했을 때

 

 

외로움이란

멍 들도록 가슴 치며 소리 지르다가, 부르짖다가, 아우성치며 기도하다가 결국 아무 대답도 없어 이른 새벽 터벅거리며 집으로 돌아올 때

 

 

외로움이란

설 명절 때 하릴없이 방에 콕 박혀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 볼 것도 없는 텔레비전 채널 이리저리 돌릴 때

 

 

그리고 외로움은

그토록 믿었던 사람한테서 도끼자루 썩는 거 모르고 있다가 오지게 당했다는 말 들려올 때

 

 

그리고 정말 화가 나는 외로움은

제자라며 애지중지 키우던 몇 아이들 힘들어서 학교를 떠났다는 말 들을 때

 

 

그리고 정말 참을 수 없어 미칠 것만 같은 외로움은

내가 잊혀졌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결국

너와 난 외로움

구름, 뜬구름, 어디에나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에 짓눌려

사람 없어도 외로움, 사람 많아도 외로움

있음도 외로움, 없음도 외로움

깨달음도 외로움, 모름도 외로움

삶이 외로움, 죽음이 외로움

 

 

병신년 설 명절 가까이 다가오는데

하루, 이틀, 손가락 꼽으며 계수하다가 난

너무 가슴이 쓰려

팔불출 광대탈 하나 후딱 뒤집어쓰고

덩더쿵 더덩더쿵

으쓱, 끄덕, 까딱, 앗싸

고개 짓, 어깨 짓, 손 짓, 발 짓, 엉덩이 짓

바보 짓, 꼽추 짓, 푼수 짓, 멍청이 짓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한 바탕 벌인다. 외로움 타령

 

 

얼수, 절수, 지화자 좋다!

괭가리, 징, 장구, 북

자진모리, 휘모리장단으로 숨 가쁘게 휘 돌다가

정중 동, 동중 정!

순간 아차! 갑자기 난

 

 

그 자리에서

온통 날 에워싼 회오리

불 병거와 불 말들 휘몰아치는 놀라움을 본다.

 

 

고마워라!

지금까지 지내온 일흔 다섯 해

내 등 뒤엔 그분이 늘 있었네.

 

 

2016년 2월 7일

병신년 설 전 날 밤에

추릉 안 정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