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2-11-18 21:55
<제1회 대학생문예작품모집>에 얽힌 세 청년의 신기한사연! 7080, 이공계 젊은이들의 문학적 자화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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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이공계 젊은이들의 문학적 자화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그림: by E. S. Cho)


<제 1회 전국 대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얽힌 세 청년의 놀랍고 신기한 사연!
 숨 막히는 유신과 경제 개발로 대변 되는 1970년대, 대중 문화로는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 되던 시대!




1977년, 당시 굴지의 문예지 <한국문학>은 의욕적으로 "제 1회 대학생 문예 작품 모집"을 추진한다. 당시는 젊은 지성들의 시대적 고민과 욕망을 배설하는 최고 탈출구는 문학이었던 시대였다.  대학 가요제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막 출범하였던 70년 대 중반, 당시 본격 문학지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문학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제 1회 대학문학상>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캠퍼스 젊은 문학도들의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자신들의 생년월일이 똑 같은 방황하는 두 젊은이가 있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50대 부친의 늦둥이들이었다. 모든 건 6.25덕이었다. 놀라운 인연이었다. 둘은 아버지의 나이도 같았다. 어느덧 이제 그들도 자신들의 부모가 자신들을 낳았던 그 나이를 훌쩍 넘어섰다. 이 둘은 정신적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70년대 치열한 문학적 방황을 한다. 예비고사(지금의 수능) 소집일을 하루, 이틀 앞두고도 이들의 고민은 예비고사가 아닌 '과연 문학이 정말 이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느냐' 하는 아주 생뚱맞은 것이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그 시대 그들이 치열함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공간은 공부와 밥보다도 문학이 먼저였던 것이다.

이 후 한 친구가 졸업과 동시에 입대를 하게 된다. 친구는 친구에게 자신의 시 원고 뭉치를 맡기고 입대 한다. 원고 뭉치를 전달 받은 친구는 이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한국문학에 응모하게 된다. 입대하는 친구의 뜻이었다. 자신의 이름 대신, ‘뭐든지 하기만 하면 수석 잘 하는 네 이름으로 평가 받고 싶다’는 군대 가는 친구의 문학적 치기가 발동한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작품은 치열한 예심을 통과한다. 그리고 드디어 군대 간 친구의 작품은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된다. 소설 같고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선 통지 축하 전보는 날아들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작품은 지면에 발표되지 못한다. 친구는 이 작품이 원작자인 입대한 친구의 이름으로 발표되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은사인 양채영 시인과 이상범 시인 그리고 당시 한국문학의 주간이었던 이근배 시인 등을 두루 찾아다니며 백방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당선작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당선작은 당시 서울대를 다니던 한 젊은이의 작품으로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이 친구도 56년생이요 같은 이공계 젊은이였다.

문학으로 70년대를 고민하던 기막힌 이 사연의 동년배 이공계 젊은이들 세 사람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시인이 되었을까? 학자가 되었을까?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한 사람은 생명과 윤리를 탐색하는 생물학자요 국립대 총장이 되었고 한 사람은 건설회사의 임원이 그리고 또 한 사람은 21세기 화두인 종교와 과학을 탐색하는 신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작가, 시인이 되었다. 이들 셋이 다시 문학의 이름으로 뭉쳤다. 경포대 바닷바람을 맞으며 언젠가 함께 공동 시집을 내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kict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