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2-10-25 23:17
기독교 변증학 교재1(박해경, 조덕영 공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6,059  
-기독교 변증학-

박해경 교수(조직신학, Ph. D),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


1.서론

1. 변증학의 위치와 정의

1) 변증학의 위치
  신학      자연신학                            교의학(교리학)
              계시신학        조직신학          변증학 / 험증학
                              성경신학          윤리학
                              역사신학            교파화해론(에큐메닉스)
                            실천신학
2)변증학의 정의
  ① 웹스터 사전 : 변증학이라 기독교 신학의 한 분과문인데 기독교의 변호와 증명을 그 관심사로 한다(Wedter's New Wdrd Dictionary,P.64).
  ② 반틸(C.Van Til) : 변증학은 각양의 비기독교적 삶의 철학과 대결하는 기독교 적 삶의 철학에 대한 변호이다(Van Til, Apologrtics, P.1).
  ③에드워드 카넬(E. J. Camell) : 변증학은 기독교를 합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해답하는 신학의 한 분야이다(E. J. Camell,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Apologetics, 제4판 서문).
  ④박해경 교수: 변증학은 성경진리를 과학적 평가와 합리적 설명으로써 파수하며, 기독교 복음진리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어 하나님을 알고 믿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다.
  ⑤김상복 교수 : Apologetics is a science of systematic defense of  Christianity against the objections and attacks of other world views(Kim, Sang-Bok, Apologetogetics, p, 3).
  ※ 벧전 3장 15~16 - 너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2. 험증학과의 비교

  변증학(Apologetics) 은 주로 철학, 논리, 과학적 사고를 통해 기독교진리를 변호하는 것이나    험증학(Evidences)은 역사적 증거,사실성에 근거하여 기독교진리를 방어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험증학은 변증학의 자매학문인 셈이다.
  버나드 램(B. Ramm) : 험증학은 기독교의 사실성의 증명에 관심을 가지는 학문이다(B. Ramm, Protestant Christina Evidenoe, p. 13).
 반틸(C. van Til) : 험증학은 과학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 유실론을 변호하는 학문이다(C. van Til Christian Theistic Evidenoes, p. 1).
 밀라드 에릭슨(M. J. Erickson) :Factual Data supporting the claims of Christianity; such data include fubilled prophecy, miracles, and some archaeological discovenies; Concise Dictionary of Christian Theology, p, 52).
※ 험증(證 證) - 우리의 경험 속에서 확인되고 증명되는 하나님의 진리들과 하나님의 말씀의 사실성, 구속사역의 증거들을 거론하고 설명하며 확인한다는 뜻이 있다.

※변증학(Christian Apologetics, 辨證學)과 험증학(Christian Evidences, 驗證學)의 기본적인 차이점 정리

이 두 용어는 구분이 없이 동일하게 쓰여지기도 한다. 그만큼 두 단어의 의미가 긴밀하고 가깝다는 의미다. 하지만 용어가 다른 만큼 엄밀히 말하면 구분이 가능하다.

기독교 변증학(Christian Apologetics, 辨證學)은 비기독교철학에 대응하는 기독교 철학의 증명을 말한다. 즉 변증학의 목표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기독교의 유신론(theism)을 증명하는 데 있다. 따라서 변증학의 영역은 어떤 한 부분(예를 들면 과학적 변증)만이 아니라 기독교 전체라고 보면 된다. 기독교 유신론의 본질은 창조와 타락과 구속으로 이어지는 전우주적인 면을 다루며 통일체적이므로 변증학은 매우 포괄적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변증학은 모든 신학의 공동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변증과 교리(敎理)는 상호 협조적인 관계를 가진 다고 볼 수 있다. 변증학과 신학은 서로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 험증학은 기독교의 사실성에 관심을 가지는 학문을 말한다. 좁게 말하면 기독교 변증학에서 그 존재를 증명한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푸시는 기독교의 ‘구원 교리’의 타당성과 참됨을 변증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버나드 램(Bernard Ramm)은 험증학이 철학적이거나 이론적이라기보다는, 과학적이며 역사적인 영역에서 기독교의 사실성의 증명에 관심을 가지는 학문이라 하였다. 기독교의 전제론적(presuppositional) 변증학자인 코넬리우스 반 틸(Conelius Van Til)도 험증학을 과학(여기서 과학은 자연과학만이 아닌 광범위한 의미의 과학을 말함, 즉 학문에 가까운 말)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 유신론을 변호하는 학문이라 정의 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변증학은 특히 기독교 신론의 지위를 확보하기를 목적하고 험증학은 주로 기독교의 경험 사실에 관한 정해(正解)를 유지하기에 노력한다. 따라서 전자는 사실보다 철학에 관심을 갖고, 후자는 철학보다 사실을 더 많이 취급하게 된다.”(<험증학>, 박형룡 저작 선집 Ⅻ,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78, 23)라고 하였다. 이것은 반 틸(Conelius Van Til)의 견해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3. 기독교 변증학의 임무와 필요성

  1) 변증학의 필요성에 대한 반대 의견들
      ➀ 神의 초월성 때문에 유한한 인간은 변증할 능력이 없다.
        Apologetics is derogatory(풍격을 떨어뜨린다). Because defendiry Christianity is a fatal mistake...un - conscious betrayal, such a defender is a judas without knowing it How could man defend the transcendent God?(Kierkegaard) [Kim, p. 4]    합리적인 언행과 사고가 오히려 초월적인 차원을 무의식적으로 배신한다.
      ➁ 변증학은 불필요하다.
          Apologetics is useless. Because it all begins with faith merely  accepting it and God of Christian theism is claimed to have been  revealed in the Scripture(lbid). 
    ➂ 변증학은 정당성이 없다.
        Apologetics is unwartanted. Because you can't prove anyting of its certainty by the use of inductive evidence except the probability(lbid)
    ④ 신앙과 이성은 별개의 분야이다(합리적 변호의 불가능성).
2) 변증학의 필요성
  ① 성경에서 권고하고 있다(벧전 3;13-16)
      ※ 행 22;1 -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변명 = apologia)
      ※ 헬라어 Apologeomai(to defend or answer for oneself)가 사용된 성경: 눅 12:11-15; 행 19;21-23; 24;10; 롬 2;14-15; 고후 12;19 등
      ※ Apologia가 사용된 경우도 8회 있다 : 행 22:1; 25:16; 고전 9:3; 고후 7:11; 빌 1:7, 17; 딤전 4:16; 벧전 3:15 등
  ➁ 기독교에 대한 공격 때문에 학문적 방어로써 필요하다.
      (예) Orgen의 Contra Celsum(Against Celsus).  Augustne의 Civitas Dei(the City of God).
  ➂ 기독교에 대한 오해 때문에 변증학이 필요하다.
    (예) 초대교회 시대의 성찬에 대한 오해, 기독교인의 반사회성의 문제, 왕(황제)에  대한 불순종의 문제 등.
 ➃ 진리는 체계가 있고 기독교 역시 성경에 따라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잘 정리하여 표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3) 변증학의 임무
  ➀ 기독교에 대한 바른 소개(중개역할)
        Apologetics is the mediator between Philosophy and Theology (A.B. Bruoe). " The mediat or intellectual tensions" (Bemard Ramm).
    특히 “복음” 의 참된 성격과 본질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기독교에 대해 “윤리”적 차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적 전제와 가치관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이 문제에 대한 좋은 책은 J. C. Machen, What is Faith?
          Grand Rapids : Ecrdmans, 1925; J, Calvin, lnstitutito Christianae
          Religionis. (칼빈강요, 번역판 다수).
  ➁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해명(변호)
      (예) Augustine, ⌈하나님의 도성⌋⥅ 바른 역사관, 참된 하나님나라에 대해 해명하였다.
          Calvin, ⌈기독교강요⌋⥅ 종교개혁 당시의 개신교교리에 대한 카톨릭측의 오해를  풀어주며, 참된 복음, 참 교회를 해명하여 결국 지속적인 기독교진리의 변증서와 신학 교과서가 되었다.
 ➂ 기독교진리를 방어함 (여러 방면의 공격에 대한 방어)
    a.철학적 공격 : 무신론적 실존주의, 언어분석철학, 인본주의, 공산주의(유물론), 각종 불가지론
    b. 과학적 분야 : Cosmogeny, Evolutionary, Hypothesis, Psychology, Sociology,
          Anthropology, Ecology, etc.
    C. 신학적 분야 :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세속화신학 등
  ➃ 이교종교의 모순을 공격함(선교변증학)
        Elenctics(참고 : 요 16장 “책망”) (헬) elergko.
      이방 종교인들의 오류와 모순을 공격하고 책망할뿐 아니라 접촉점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선교하려는 시도이다.
❮참고도서❯ J. H. Bavinck, ⌜선교학개론⌟ 권호진 역, 서울 : 성광문화사, 1980. 참조 바람. (특히 제2부)

4. 변증학 방법론

  1) 반틸(Van Til)
      반틸은 “전체주의”(Presuppositionalism) 변증학을 그의 방법론으로 사용하였다.  이 방법은 아직도 상당수의 개혁신학자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으며 복음주의 권내에서는 주류를 형성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창조자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입각한 성경적 세계관을전제로 해야만 참된 가치판단, 해석,올바른 지식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인간의 자율성 및 자연인의 이성능력의 가치에 회의를 품는 것이며 자연신학적 태도에 반대하는 것이다. 반틸은 존재론에 있어서 “two layer theory of reality"를 주장하고, 3위1체 하나님(a concrete universal)을 인정하는 기독교 철학이 영원과 시공간의 관계를 바로 해결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비기독교 철학은 영원과 시공을 연속으로 보기 때문에 궁극적 실재와 파생적 존재의 문제를 정립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지식론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신의 해석과 인간의 해석). 윤리론에 있어서도  기독교 철학은 receptively reconstructive이나 비기독교 철학은 creatively constructive 로써 죄 문제를 처리하는 태도가 다름을 지적한다.
 2) 도예베르트(H.Dooyeweerd)
    도예베르트는 지식과 자율성이란 허위이며. 종교적 독단이라고 보았다.
    모든 철학 사상이 이성에 근거를 두었다고 하지만 서로 반대되며 모순되는 이론으로 맞서있다는 사실을 볼 때 이것은 모든 이론 배후에 전이론적 편견, 혹은 pre-understanding이  있는 것이며 그것은 종교적 신앙과 같은 성질이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학리사상이  어떤 필연적 전제를 내포하고 있고,이 종교적 동기는 중립이나 객과성을 가지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예를 들어서 고대헬라사상은 form and matter라는 종교적 사상동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거스틴에 의해 표현된 교부기독교 사상은 창조,타락, 구속이라는 종교적 동인을 가졌고, 중세기 스콜라신학(철학)은 자연과 은총이라는 종교적 사상 동인을 가졌다.
    그리고 근대철학은 휴머니즘으로서 자연과 자유라는 종교적 동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과 사상은 맨 위에 신앙계가 있고 그 밑에서 신에 의해 창조된 상호 유기적 관련성에 의한 우주법적 체계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즉 그는 기독교 철학은 창조자 신이 우주법 아래 아래 전 피조계를 두셨다는 계시적 진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체제는 15단계(법계)인데 그것은 “의미국면”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의미란 창조된 모든 것의 존재의 도식(양식)이다. 창조된 것은 모두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 신앙 -윤리 -법조 -심미 - 경제 -사회 -언어 -역사 -논리 -심리 -생물 -물리  -운동 -공간 -수 (cosmonomic order)
    도예베르트는 기독교 철학이 전 우주에 관한 고찰이라 하며 전우주적 고찰을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이 고정점의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마음은 이론과 학문, 사상의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여 움직이는 통전하는 힘이다. 인간의 마음은 종교적 성격의 것이므로 기독교 철학은 계시를 받은 마음을 archimedian point(hinge)로 삼고, 비기독교철학은 불신앙으로 오염된 마음을 hinge로 삼는다.그러므로 도예베르트는 서구의 이론, 사상들의 객관성 상실을 지적했고, 자율성의 문제를 파혜쳤다. 그의 공헌은 모든 합리주의 논거들이 종교적 편견에서 나왔다는 점을 알려주어 기독교 철학의 우위를 증명하려 한 것이다. 그의  eransoendental Criticism은 신학과 철학에 큰 빛을 주는 방법론이라 하겠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 관한 개념은 그가 영혼의 실재를 회의하므로 비성경적이고 너무 포괄적으로  인생의 전영역을 다루다가 보편주의에 빠지고 있으며, 진정한 초월적 세계를 놓치고 우주론 자체에 머무르는 문제를 보이고 있다.
 
3) 카넬(E, Camell)
    카넬은 신복음주의 계열의 변증학자로서 칼빈주의자이면서도 전제주의를 거부하고 합리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인간은 그의 이성의 힘으로  “이성적 우주”를 세울 수 있고 인간의 도덕적 결단의 능력으로 “도덕적 우주”를 세울 수 있는데 하나님의 존재는 이 “우주”의 기초와 배경으로써 그 객관적인 증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카넬은 조직적-합리적
    (소위 합리성의 방법)인 방법론을 가지고 하나님과 성경계시의 진리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의미하는 조직적-합리성의 방법이란 “모순율”과 “인간경험의 통전성” 같은 것들에 대한 순응 및 조화적 노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완전한 전 시야적 식견”과 “지각있는 오성”으로 기독교를 참된 것으로 변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 모순율 = law of contradiction ...사유법칙의 한가지로 A는 비(非)A가 아니다.
    A는B인 동시에 비(非)B일 수는 없다는 모양으로 표시된다. 동일률(law of identity)의  반면을 보여준다. 동일률이란 P는P다(장미는 장미다)라는 것이다. 또 배증률(law of excluded midde)이 있는데 A는 A이거나 A가 아니다(어떤 사물은 장미이거나 장미가 아니다)가 있다. 그러나 이 사유의 법칙들은 모든 실제에 적용할 수 있느냐? 아니면 단지 사유의 법칙인가? 합리주의자는 사유의 법칙이 모든 것에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경험주의자는 말하는 방법에만 적용된다고 본다; 밀톤 D. 헌넥스, ⌜철학요해⌟ 박해경 공역, 서울;아가페문화사, 1991,PP.16-17]
  그런데 카넬의 방법론은 자연계시를 크게 인정하고, 합리적 방법론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반틸과는 강조점이 많이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4) 워필드(B.B.Warfield)
  워필드는 찰스 하지(C. Hodge)처럼 합리성과 이성의 역할을 상당히 높게 생각하는 칼빈주의  변증학자이다. 반틸에 비교하면 “전제주의” 변증학에 투철하지는 못하여 카넬과 흡사하되 그러나 카넬보다는 더 성경의 권위와 특별계시에 대한 의존성 및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뢰하는 정도가 크다고 보여진다.
  워필드는 사람이 기독교진리에 이르기 위해 바로 특별계시를 받기보다는 역사적 신앙(Historcal Faith)에서 구원의 신앙(Saving Faith)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참고: 박해경, ⌜믿음이란 무엇인가?⌟ 서울 :CLC). 그 말은 워필드가 합리적인 방법을 상당히    중요시했다는 의미가 된다. 워필드는 성경영감을 믿었고 정통 칼빈주의자였는데도 변증학적 동기에 의해서 성경영감의 교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기독교가 진정한 구원의 종교이며 기독교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 등을 우리가 이성적 사고로써 터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Warfield, The lnspiration and Authoeity of thc Bible, p 210). 이것은 그가 기독교진리를 비기독교인들에게 변증하려고 할 때 우리가 이성(理性)이라는 중립지대에서 만나 진리를 효과적으로 지혜롭게 전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고 그가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려는 의도에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5) 메이첸(J. G. Machen)
  메이첸은  “자유주의”를 기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며(Christianity and Liberalism 에서)  "신앙이란 무엇인가?“ 에서는 신정통주의의 ”반지성주의“에 대해 공격을 하였다.  그는 특히 신학정변증에 능한 신약학자였다. 신정통주의(Neo-Orthodoxy) 신학자들의 상투적인 주장인 “만남” (Encounter)을 강조하면서 교리를 무시하는 태도에 대해 극히 못마땅하게 여긴 메이첸은 기독교는 교리이지 허공에 뜬 “만남”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허공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메이첸의 강변이다. 그는 교리를 바로 배워서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왜 오셨고, 그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고나서야 가능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메이첸은 자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의 무릎에서 배운 성경지식이 신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았다고 하면서 종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정식적인 변증학자로 보기는 어려우나 기독교의 근본적 신앙과 교리를 성경대로 변증하는데 있어서 좋은 예를 남겼으며 기독교복음에 대한 자유주의적인 오해를 풀어주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바울종교의 기원” 같은 저서는 사실상 기독교의 본질을 해명한 훌륭한 변증서라 할 수 있다. 그 책에서 메이첸은 기독교가 “구속”의 종교임을 명백히  밝혔고 초대교회 당시의 이종교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종교 사학파의 견해를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변증학의 방법론적으로 본다면 권위주의적이고. 조교주의적인 철저한 “전제주의”라고  할 수 있다.

6) 박형룡
  박형룡 박사는 “신학이란 우리 나름의 창작이 아니라 사도적 전통의 정신앙(正信仰)을  그대로  보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민경배).
  그는 교의신학 서론에서 신학은 “창작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이라 하면서 자신은 여러 훌륭한    신학자들의 화원에서 꽃을 모아 정리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는 지로적 신학 (指路的 神學)을 하였으며 성경의 절대무오와 독자영감을 고수하였다. 그의 변증학을 일종의 신학서론으로 보아야 하며 교의신학이 그의 주된 과업이었다, 그의 신학방법론은 성경의
  절대권위에 입각하여 거듭난 이성을 계시에 수종시켜서 사용한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박형룡 신학은 계시의존의 방법을 쓰되 종속적 내적 원리로서 이성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벌코프 (LBerkhof)와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박형룡 박사의 방법은 극단적인 신앙주의나 반지성주의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성경진리의 절대성을 인정하되 그 진리 표현에 있어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이성의 역할을 존중히 한다는 입장이다.

7) 칼빈(J. Calvin)
  칼빈은 조직신학자요, 성경신학자이며 교부학에 정통한 역사신학자이고, 목회를한 실천신학자로    서 동시에 기독교 변증학자이다. 칼빈을 변증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저서는 Bemard Rammd의  "Vareties of Christian Apologetics"(Anlntroduction to the Christian Philosophy of Religion), Grand Rapids: Baker 가 있다(pp.163-178을 보라). 그러나 Ramm의 평가에 대해 보충할 것이 있어서 몇가지 보완하여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칼빈은 우선 일반계시를 인정하며 이점에서 칼 바르트와 다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눈이  멀어서 깨닫지 못하므로 여기에 특별계시와 성령의 빛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정통기독교 교리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 창조-타락-구속의 기본진리를 중시한다. 이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지식과 지혜, 축복의 근원(source)이시다. 그분만이 진실하시고 인간은 다 거짓 되다(롬 3;4). 그러므로 이 우주와 인류는 근원자에 비하면 먼지와 같으며 일순간도 지태할 수 없는 “파생적”인 의존적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논리와 사고는 근원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와 그분께 용납되는 “죄사함”의 진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말하자면 칼빈은 죄인(현 실존)인 인간이 “진리” 이신 하나님께이르기 위한 “실재적”(realistic)방법, 곧 회개와 죄사함의 복음을 중시한다. 이것은 칼빈의 신학방법론과 일치하는바 논리보다 “사실 자체”(resipsa)를 중히 여기는 태도이다. 따라서 칼빈의 방법론은 계시의존의 방법이긴 하나 계시(성경, 자연) 자체에 머물기보다는 계시의 근원자인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신앙”으로 되어진다. 어떤 신앙인가? “복음신앙”(Faith in Gospel)이다.
  이 신앙은 카톨릭이 말하는 implicit faith나 unformed faith가 아니라 “notitia faith가 아니라 "notitia fidei"이다. 이 신앙의지식을 Battles는 “실존적지식”이라 하였으나 그보다는 “바로 알고, 실제로 확신하는 영적 실재의 바른 이해와 구원의 신앙인 지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논적들을 격파시킬 때 논리보다 우월한 “사실”을 가지고 공격하므로써 험증학적인 면을 이미 보여주고 있으며, 그는 전제주의에 철저하면서도 증거주의 방법도  사용하는 놀라운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칼빈의 방법론은 논리적 연결보다 사실의  연결을 강조하면서 “진리”(사실)가 무엇인지 먼저 답을 알고, 확신을 가지고 논박해 나가는 방식이다. 기독교강요를 보면 그는 자신의 해석에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신앙의 확실성은
  “하나님” 자신께로부터 왔다고 말한다.그러므로 그는 먼저 “결론”을 말하고 논리상 맞지않는 듯 하더라도 성경진리의 자체적 진의(force)에도 접근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것은 “확신의  방법“이라고 이름을 붙일만 하다.
  이 확신의 방법으로 기독교진리를 변증하려면하나님께대한 진정한 결의에서 출발해야 하며,  성경의 근본의도를 파악하고, 기독교의 본질적 이해에 도달하여 신본주의로 진리를 논해야  한다. 실제로 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판단받으실 때 이기신다”는 신앙으로 기도하고,  연구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확신의 변호는 설득력이 매우 강한 것이다.

Ⅱ. 기초 변증학 (Foundational Apologetics)
 
1.신앙과 이성 (Faith and Reason)
1)신앙과 이성 문제의 역사적 고찰
  ① 고대 교부시대 : Logos 교리, Alexandria학파
  ② 중세 스콜라시대 :
    a. 초기-Eriugena, Anselm.
    b. 중기-Thomas Aquinas
    c. 말기-Duns Scotus, Wim. Occam
  ③ 종교개혁시대 : Luther / Calvin
  ④ 근대 / 현대 : Schleiermacher/ Ritschl/ Hamck/ Barth/ Brunner/ Tillich
2)  이성의 특징과 한계
  ① 이성의 특징-
  ② 이성의 한계- 초월적 세계에 대한 한계 / 특별계시와의 관련에서 /하나님 아는데에 한계 / 영적 진리와의 관련에서
3) 신앙의 특징과 바른 신앙
  ➀ 신앙의 특징 - 지식, 감정, 신뢰, 승인
  ② 바른 신앙 - (성경 신앙 → 복음신앙)
  ※ 참고 : 신앙의 종류
    a. Historical Faith
    b. Temporary Faith
    c. Miraculous Faith
    d. Saving Faith
4) 이성의 필요성과 바른 사용법
  ※ Reason - the ability to think coherently and logically; to draw conclusions from facts Known or assumed.
 ➀ 이성의 필요성 :
    a.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성을 사용하라고 권고하심(사 1:18)
    b. 창조된 세계의 합리성과 질서 때문
    c. 인간다움의 한 측면임(reasonable animal)
    d. 진리를 발견하고 정립하는 수단이 됨
 ② 바른 사용법 : 이성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종속적, 도구적 원리로 사용된다.
                  “열린 이성”은 학문 연구에 매우 유익하다.
5) 신앙과 이성의 관계  (예) 맹신, 미신, 광신, 불신 등에서 분석되는 양자의 관계
6) 합리주의(Rationalism) = Reason Alone
    Reason is capable of discovering truth without the help of God,
    revelation or faith.
    John Lock = God is the most obrious truth that reason discover.
    [Revelation = natural reason]

7)  신앙주의(Mysticism, Neo_Orthodxy, Antinomian)
      Leap of faith(신앙의 도약) - Kierkegaard, Barth.
    ※ 신앙지상주의와 신앙주의의 문제점 / 신앙권위주의(Thomas)
8) 절충주의(Mediating position)
  (예) 육신진화론 / 복음주의입장
9) 개혁주의(Refomed view) = Faith based on the authority of God and His  Word can be rationally substantiated and supported by evidence.

2.성경론 (비평학과의 관련에서)
1) 성경 비평가들과 주요 주장들 (Kim, Sang-Bok, p. 11)
    David Hume - By the beginning of the 19th century Philosophy wiㅣㅣ  triumph and Christianity will fade away... l own that l have never read the New Testament with attention.
    F. Voltaire - lt is said that twelve Fishermen Founded Chistianity. l will show that one  Frenchman can overthrow
                    it ... An attentive reading of the Mosaic constitution discloses  a most detestable polity ... crush the wretch-Jesus Christ!
    Robert. G. lngersol - The infamous doctrines of christianity petrify the  human heart. They have covered the world with blood. they have filled the asylums for the insane. l say let us rid the heavens of this monster and write upon dome : Liberty, love and law.'
2) 성경론의 연구대상
    구약신학, 신약신학, 주석학, 성경고고학, 신구약총론, 정경론, 성경해석학, 비평학 등.
    ※ 변증학에서는 정경론(Canonics)과 영감론(lnspiration) 및 비평학(Biblical  Criticism)이 중요하다.
3) 정경론
  ➀ Canon이란? (Canon ➝ Kanon = reed = rule) Origen ➝ "rule of faith"
      (후에는 list or index) "Canon" - an officially accepted list of books.
  ② Canon의 결정 원리
      a. ls it authoritative? (from the hand of God)
      b. ls it prophetic? (man of God)
      c. ls it authentic? (reliable)
      d. ls it dynamic? (life-transforming power)
      e. Was it received, collected, read and used? (accepted)
  ③ Council of Jamnia (O.T.)
      Synod of Hippo(N. T.) ➝ Carthage
4) 영감론
  ※ Calvin, lnstitutes, 1. 7. 1, 2.
  ➀ 동력적    ② 기계적    ③유기적 영감설(Berkhof)
  ※ 유기적 영감 :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을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의 성품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교양, 용어, 어법, 문체 등을 다 사용하시되 성령으로 조명하셨으며, 격려하여 저술케 하셨고, 죄의 영향을 억제하시며, 그들의 언어를 선택하고 그들이 사상을 표현하게 하셨으며 오류없게 인도하셨다. 
5) 성경의 신비성 (Reliability of the Bible)
  ➀ 역사적 Text에 의한 확증
      a. 성경 사본들의 권위
          Philip Schaff : 15만군데 중 400군데만 의심이 가는 정도. 단지 50군데만 큰 차이를 보일 정도의(Greek과 English N. T. 비교)
          Geisler & Nix : 성경 Text의 98.33%의 순수성 발견
          A. T. Robertson : Latin Vulgate MSS 8000. (1.000 Early versions)
          Greek MSS 4000 (But, Bruce Metzger는 5000으로 본다.)
          13,000 MSS copies of N.T.
      b. 다른 고대 저술(가)와의 비교에 의한 증거
          F. F. Bruce : Caesar' s Gallic War(58-50 BC)의 경우 9-10개만이 상태가 양호. 가장 고대사본이라도 Caesar시대보다 900년 뒤져 있음. Roman History of Livy(59 B.C. - 17 A>D)의 경우 겨우 35권 잔존(142권 중).
          Tacitus의 역사서 14권 중(A.D. 100경) 현존하는 것은 4권 반 뿐임.
          Herodotus의 History는 (480-425 B.C.) 8개만 현존(copies).

      c.  Chronology of N. T. MSS Authonity.
          John Ryland MSS(130 A>D.) 최고의 N. T. 단편 복음서 기록시기에 가깝다.
          Chester Beatty Papyri (200 A.D.)-Beatty Museum
          Codex Sinaiticus (350 A.D.)
          Codex Vaticanus (350-50 A.D.)           
          Codex Alexandrinus (400 A.D.)
          Codex Ephraem : (400' s A.D.)
          Codex Bezae (450 A.D. plus), etc.


<기록 당시>
<최고 사본 시기>
<시간차>
 Caesar
100-44 B.C
900 A.D.
1000년
Plato
427-347 B.C
900 A.D.
1200년
Tacitus
100 A.D.
1,100 A.D.
1000년
Pliny
61-113 A.D.
850 A.D.
 750년 등
  ※ 다른 고대 사본들과 비교하면 성경의 고전성이 입증된다.
  (상세한 내용은 J. McDowell,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 pp. 43-5을참고 바람)
    ※ 성경은 100년-300년 차이이다.
    d. 구약 사본들의 보존 과정에 나타난 신빙성
        서기관들의 기록, 보관, 보존 방식의 엄격성, 철저성
    e. 인용의 빈도수에 의한 권위(N. T.)
      Justin Martyr 330 / lrenaeus 1,819
      Clement of Alex 2,406 / Origen 17,922
      Tertullian 7,258 / Eusebius5,176, etc.
    f. 수정률에 따른 비교 권위
      lliad - 5% (15,600 Lines에서 764 Lines 의심)
      Mahabharata(The national epic of lndia)의 경우 250,000 Lines
      중 26,000 Lines 수정 (10%)
② 성경의 유일성
    a. Continuity : 1,600년간 기록, 60세대, 40명 이상의 저자.
      다양한 장소, 다양한 시대, 3대륙(Asia, Africa, Europe), 3대 언어(Habrew,
      Aramaic, Greek). 그러나 주제의 unity가 있다(그리스도, 구속).
    ※ Calvin : 성경은 문체보다도 주체보다도 주제의  닥월성이 중요하다.
    b. Circulation :
      1804년    409,000,0000    Britain Bible Society
      1928년    88,070,068      National Bible Society (Scotland)
      1932까지 1,330,213,815    German Bible Society
      1966년    87,398,961      American Bible Society
    ※한국의 경우 해외에 성경을 인쇄하여 보급하고 있다. 한 해에 2억부를 인쇄하는 경우도 있음 
    c. Translation : (세계 인구의 95%에 해당하는 번역 완료)
      LXX (250 B.C.) = Heb ➝ Greek      Encyclopaedia Britannica : 1966년 240언어
      1950-1960 사이에 3,000명의 번역자들이 성경 번역에 종사함.
    d. Survival
      시대, 핍박, 비평학을 통과하면서 건재하고 있는 성경
    e, Influence, Power :
      성경은 항상 새롭다(신문이나 과학 교과서와의 비교).
      성경은 거룩한 감화력이 있다(주간지와의 비교).
      (etemal youth and authority)
      . Lincohn  .작가들    .작곡가들    . 예술가들
    ※ 성경은 세상과 역사를 변화시킨 점에서 초자연적 힘을 보여준다.
      . 살아서 역사한다(히 4:12-13).
      . 죄인을 변화시킨다(느 8:1-9).
      . 교회의 부흥, 심령변화; Huss, Pierists, Wycliff, Luther, Calvin,
        Moravians, Lollards, Zwingli Knox, Augustine, Wesley, et al.
      . 사탄을 꺾는 힘이 있다(마 10:1, 막 16;15-20).
      . 사회를 변화시킨다 (여성, 노예, 자선, 정책 등).
   
 ③ 성경고고학의 증거 (생략)
    J. McDowell, Evidence ..., PP. 68-80을 참고 바람.

Ⅲ. 기독교와 과학

1. 성경과 과학은 어떤 관계인가?
;성경은 과학의 영역에 대해 말할 때 어떤 책인가?

1) 창조와 창조주
성경은하나님께서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타락과 구속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볼 때 과학의 모든 원리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2) 성경은 과학교과서는 아니다.
창조와창조주에 대해 말하나 성경은 과학교과서는 아니다.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성경은 바른 해석을 하는 한 모든 영역에 있어 정확무오하나 과학과 관심이 다른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구체적 과학 이론을 끄집어내는 데에는 조심하여야 한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꽃의 원리를 찾으면 안 되는 것과 유사하다. 망원경의 원리는 성경서 찾지 말고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찾는 게 유리하다. 성경의 잘못된 적용으로 마치 성경이 과학적 문제가 있는 책으로 공격받게 만드는 누(累)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무오하나 과학은 절대적이지 않다(하이젠베르그, 아인쉬타인, 토마스 쿤 등).

3) 성경은 모든 인류에게 적응된 책이다.
하나님은자신을 인간의 한계에 맞추어 적응하셨음을 기독교 신앙의 선배들은 잘 알고 있었다(오리겐, 암브로스,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 아버지가 어린 자녀에게 말을 걸려고 시도할 때 겪는 것과 동일한 문제에 부딪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낮추어 내려 오사 우리의 연약한 점에 자신을 맞추신다. 이것은 유아원 선생님이 유아 언어로 말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면서 자녀들의 방식을 채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제한된 지성의 어린아이에게 그들의 이해와 경험을 능가하는 말과 개념을 사용할 경우 의사소통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 수준에 맞는 방법이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적응(Accommodation)의 방법이다. 이것이 또한 성경을 과학의 틀에 집어넣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 기독교와 과학은 어떤 관계에 있어왔는가?
;관계를 규정하는 모델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일찍이 학자들은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전쟁, 갈등, 충돌, 대립, 대화, 조화, 독립, 분리, 상생, 공격, 양자유익, 공명 등 다양한 단어를 추출해 내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과학 이슈들에 대해 이들 모든 현상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슈는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분히 복합적이다. 그 이유는 어떤 모델은 서로 충돌하나 어떤 모델은 독립적이며 어떤 모델은 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원주의 시대를 신학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2) 현대 과학이 기독교의 토양에서 자랐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대 과학이 태동할 시기인 17-18세기에 종교, 특히 청교도주의는 과학의 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기독교와 과학이 주로 갈등과 충동 모델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3. 창조과학 운동

1) 창조과학은 무엇인가
‘창조과학’(CreationScience)은 헨리 모리스(H. Morris)가 시작한 과학적 창조론을 말한다. 과학적 창조론은 종종 개신교 식의 교회 권위주의로 오해받기도 한다. 오늘날 과학적 창조론의 조상은 근본주의이다. 분명 근본주의는 로마 가톨릭이 교회의 권위에 호소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성서의 권위에 호소한다.
과학적 창조론의 이론은 주로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설립을 주도한 헨리 모리스와 듀안 기쉬(D. Gish)로부터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그 신학적 신념의 목록 속에 다음의 내용들을 포함시킨다.
이 내용은 미 대법원이 참고했던 ‘맥리안 대 아칸소 교육위원회 소송사건’(Mclean v. arkansas Board of Education)의 지방법원에서도 창조론 측의 공식 입장으로 정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세계는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며 ②돌연변이와 자연선택설을 진화의 매커니즘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못하며 ③현존하는 종들은 고정되어 있고 한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것(대진화, Macroevolution)은 불가능하다. ④원숭이와 인간의 조상이 다르다. ⑤지질학적 형성은 대격변(catastrophy, 즉 Genesis Flood)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산에서 바다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은 대홍수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⑥마지막으로 지구의 창조는 젊다. 즉 6000년 내지 1만년 전에 생성되었다.
2) 창조과학의 공헌
①무신론적 우연주의와 진화론을 향한 공격적 논쟁을 통해 기독교 호교 운동적 측면
②한국 기독교의 보수적 경향에 편승하여 교회의 호응을 받음

3) 창조과학의 과제
①성경과 신학과 과학이 구체적으로 증거하지도 증명하지도 못하는 연대문제에 대한 수구적 주장 고수의 문제(시간은 절대적이 아니라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 벧후 3:8).
②창조과학 틀을 인정하지 않는 복음주의자들과 대화 차단 극복 문제
③성경이 적응된 책이라는 신학적 해석학에 대한 이해 부족 극복 문제, 이로 인한 교회사, 신학, 과학과 불필요한 갈등과 긴장 관계 초래
④학문적 추구보다는 대중 운동에 치중함으로서 탁월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성과가 미흡하여 오히려 세상 학자들에게 딜레탕트들의 모임, 종교적 프로파겐다적 모임, 우파츠(Ooparts)에 대한 끼워 맞추기식 아전인수격 무분별한 인용단체, 문자적 성서근본주의자들이라는 비판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약점 노출 극복 문제


4. 지적설계운동의 위치

1) 지적설계는 무엇인가?
뎀스키(Dembski)는지적설계와 창조과학(또는 과학적 창조론)이라 알려진 창조론 사이를 구별하는 분명한 차이점을 창조 과학이 선험적(先驗的) 종교적 헌신을 가지고 있는 반면 지적설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적 창조론이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한 초자연적 행위자와 그에 대한 성경기록의 과학성을 고수하는데 반해 지적설계는 성경의 이야기에 의존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즉 창조과학이 종교적 교리임에 비해 설계한 지성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삼간다. 지적설계의 폭은 대단히 넓다.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는 분명 색깔이 너무도 다른 운동임을 알아야 한다.

2) 지적설계의 공헌
①일반계시적 측면에서 설계와 설계자를 정교하게 제시하려고 한 점
②창조과학이 기성 과학과 대립적 관계를 설정한 데 비하여 지적설계는 좀 더 유연하여 그 충돌을 줄일 수 있다.
③포스트모던 시대에 시대적 배경을 갖고 나타난운동

3) 지적설계의 과제
①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복음 제시를 표명하지 않음으로 인한 선교적 측면에서 결정적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가톨릭, 유대교, 이슬람, 이신론, 불교, 힌두교, 카발리스트, 영지주의자, 이단과 사이비 창조론자들에게까지 자리를 마련해주는 포용성).
②자연신학을 표방함으로써 성경관, 성령론, 기독론 등의 약화 초래 가능성


5. 기독교는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복음주의 창조론 운동-창조론 오픈 포럼-을 제안하며

1) 과학의 영역도 하나님의 피조세계이다:
과학 질서도 피조 세계의 일부로 볼 때 과학도 분명 하나님이 주신 도구이다(하나님이 주신 두 권의 책 성경과 자연=갈릴레이, 파스칼, 케플러 등).

2) 과학은 여전히 한계를 가진다:
포스트모던 상황 아래서 과학의 한계와 제한성은 두드러진다. 성경은 피조물인 인간의 수용 능력 부족(captus)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신학과 과학이 증명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함부로 규정하고 적용하는 성급한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연대 문제 등).

3) 과학적 영역에도 성경의 일반적 원리와 윤리는 적용되어야 한다:
과학 안에도 여전히 신앙적 윤리와 사랑과 평화의 방법이 필요하다.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내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과학과 성경 안에서 탁월한 해석과 증거가 찾아질 때까지 겸손과 기다림도 필요하다(보기=연대문제, 우주 종말의 시기 등). 무조건 기다리는 게 아니라 명료한 과학적 사실이나 성경적 교리에 대해서는 분명히 마지노선을 그어야 한다(보기=결코 무신론적 우연주의를 수용할 수는 없음).

4) 과학연구에 대한 적극성과 기독교적 청지기 역할:
창조와 구속의 역사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는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의 영역에 있는 몽학선생으로서의 과학 연구에 적극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 세상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과학의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생명공학, 동성애, 한반도대운하, 광우병, 새만금 등). 그리고 자연의 노예나 폭군이 아닌 창조 영역의 청지기로서의 진지함과 자유함을 갖자.

5) (하등학문인) 과학에 대한 열린 마음
그리스도인에게있어 창조 신앙은 같다. 다만 창조론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다(적응의 방법). 그러므로 우리들은 겸손하게 인간 지식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주님 오실 때까지 추적할 수밖에 없다(벧후 3:18). 자연 과학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맥그라스는 자연 과학에 대해 칼빈이 과학연구에 대해 긍정적 활력을 불어넣었고, 과학 연구의 장애물을 제거하였으며 성경을 적응의 방법을 가지고 이해하려 한 세 가지 공헌이 있다고 하였다. 과학에 대해 자유함을 가지며 마치 내 주장만 옳다는 식의 과학에 대한 독단적 태도는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과학의 각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의 학문적 성과를 무조건 배타시하는 편견은 옳지 않다. 그들의 공헌을 존중하고 대화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는 로마 카톨릭의 스콜라 신학자이다. 간단히 말하면 스콜라 신학이란 중세 로마 카톨릭 신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빌어 설명하려고 한 신학이다. 그래서 스콜라철학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일반적 특징들로부터 출발하여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믿는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를 철학적으로 논증하였다. 이것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따르는 자연철학적 방식인데 그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신 존재 논증을 말한다(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pt. Ⅰ. Q. 2, Art. 3). 논증(論證)은 전제(前提)가 있고, 그 전제에 따르는 증거들(evidences)을 가지며, 그 증거들의 목표인 결론으로 구성된다. 이때 논증의 전제들이 참이고 그 전제의 증거들이 만든 결론이 모든 조건들을 만족시키면 그 논증은 비로소 증명(證明, proof)이 된다. 따라서 신 존재 증명이란 말보다는 신 존재 논증이라 부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 

첫째, 운동과 변화(motion or change)로부터의 논증

우리는 움직이고 있는 사물을 볼 때 그 물체가 스스로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움직이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의하여 움직여진다. 따라서 그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운동시키는 제일의 (원인으로서의) 운동자(Prime mover)인 “부동(不動)의 동자(動者)”(unmoved mover)가 있어야 한다. 그 “부동의 동자”가 바로 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 인과법칙(因果法則)에 따른 능동인(能動因)으로부터의 논증

본래부터 능동적인 것은 아무 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어떤 사물이 그 자체가 원인이 되려면, 자신보다 먼저 능동적 자신이 존재해야 되는데 그것은 논리상 불가능하다. 본질에 있어 알려져 있는 모든 원인이란 것은 동시에 다른 원인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런 관찰 가능한 유한한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원인들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과 법칙으로서의 제일 원인(First-Cause)을 필요로 하며, 이것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셋째, 우연적 존재들로부터 필연적 존재를 따지는 논증

관찰된 대상은 본질에 있어 우연적이다. 우연적 존재들(contingent beings)이라 함은 대상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물에 의존함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대상들의 존재는 그들이 존재해 있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필연성이 아닌 가능성이다. 이와 같은 존재의 가능성은 그 이외의 것에 의존하지 않는 필연적인 존재(Necessary being)가 있음을 시사해주는데 이 필연적 존재가 바로 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넷째, 자연에는 상대적 가치가 존재하므로 이에 따른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 논증

우리는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 보다 더 좋거나 더 나쁘다고 말한다. 즉 가치의 등급(degrees of value)을 매긴다. 이런 가치의 상대적 비교는 필연적으로 판단의 규정과 일치하는 절대 가치(Absolute value)의 기준이 있음을 시사한다. 즉 선함과 질서, 조화, 아름다움, 완전함 등 절대적 가치의 기준을 제공한 존재를 바로 신이라 여기는 것이다.

다섯째, 자연에 존재하는 지적 목적성으로부터 신적 설계자를 논증하는 방법

자연에는  특정한 질서와 조화와 의미가 있다. 세계의 모든 일은 알게 모르게 자신들에게 맞는 목적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질서나 조화나 모양을 단순한 운명이나 우연으로 돌리는 것은 잘 납득하기 어렵다. 자연은 우연이 아닌 자신이 의도하는 지적 목적에 따라 모든 모양과 일을 이루어 나가는 어떤 지적 설계자가 있음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목적성(purposiveness)이 있다. 그 신적 설계자를 바로 신이라 본다.

이 논증의 처음 세 가지는 우주에 있는 모든 알려진 경험적 속성(운동, 원인과 결과, 우연과 필연)에서 나오는 원인을 다룬다는 점에서 근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하는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도 크게 보면 우주론적 논증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는 데 다섯 번째 논증이 이에 해당한다(telos라는 헬라어는 끝, 목표, 목적이라는 뜻을 가짐).

앞에서도 언급했듯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논증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창안품이 아니라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의 스승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중세 카톨릭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마침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을 접했으므로 스콜라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아래 있게 된 것이다. 플라톤의 책들이 번역 되었다면 당연히 플라톤의 사상도 흡수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므로 플라톤을 아무리 뛰어 넘으려 했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안에는 플라톤적인 요소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논증에도 그것이 남아 있다. 특별히 4번째 논증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논증을 플라톤적 논증이라고 말한다.

신 존재에 관한 논증에는 토마스 아퀴나스 말고도 인간은 절대적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가지고 논증하는 안셀름(Anselm), 데카르트(Descartes) 등이 주장한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 Ont-라는 단어는 존재라는 의미의 헬라어에서 파생된 접두어)과 인간의 선악과 참과 거짓 등을 판단할,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내릴 궁극적인 입법자와 재판관과 같은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최고선(最高善)의 완전한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도덕론적 논증(Moral argument) 등이 있다.

오늘날 토마스 아퀴나스적 자연철학, 자연은총적 논증은 일부 변증학이나 창조과학운동, 지적설계운동 등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많이 활용하는 것들이다. 이것을 자연신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 신 존재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적 논증에 대해서는 데이빗 흄이나 버트란트 러셀 같은 세상 철학자들과 칼 바르트 같은 일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신랄한 논리적 비판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신 존재 논증에는 좀 더 진지한 신학적, 철학적 성찰과 공부가 필요하게 된다. 그 복잡한 논증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우리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아무래도 신 존재 논증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존재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에 대한 핑계치 못할 분명한 증거를 그 만물 안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롬 1:20). 성경은 또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예비하라 하였으니(벧전 3:15) 어떤 방식이 성경적이고 바른 대답인 가를 우리 기독교인들은 항상 고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한다. 즉 토마스 아퀴나스적 단순한 자연신학 논증이나 변증이 아닌 참된 성경적 복음주의 창조신앙의 논증과 확산에 대한 전방위적, 종합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

※변증가로서의 아더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

Ⅰ. 왜 아더 피어선의 변증인가

21세기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포스트모던 상황 가운데서 반기독지성인들로부터의 세찬 도전을 받고 있다. 이들 반기독지성을 대표하는 중심인물 가운데 그 영향력에 관한한 3총사를 꼽으라면 아마도 평생 신을 부정하던 유명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Christopher Eric Hitchens, 1949-2011)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 30년 이상 캠브리지 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 )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 세 인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모두 영국계이며 반기독인인 동시에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지성인이라는 점이다. 히친스는 무신론에 정면 도전한 책인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 마더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판서인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 「헨리 키신저 재판」(The Trial of Henry Kissinger) 등의 저서를 통해 신을 정면  부정하고 있으며 이들 주장을 바탕으로 많은 토크쇼와 순회강연을 통해 복음주의자들과 ‘신의 존재’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인 인물로 유명세를 떨쳤다. 무신론자들 사이에 우상파괴자라고도 불렸던 그는 신구약 뿐 아니라 지적 설계, 악과 지옥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해왔다. 또한 신·구교 뿐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를 싸잡아 비판해온 인물이었다. 히친스 못지않은 무신론 논객인 유명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신은 인간이 만든 존재에 불과하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으로 기독교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에 정면 도전하여 모든 종교인의 공적이 되어있으며, 스티븐 호킹도 최근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무신론자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같은 선교적 위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이미 100 여 년 전 선교사, 목회자로서 뿐 아니라 탁월한 변증가의 모습을 보였던 피어선 박사(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의 사역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10년부터 만 5년에 걸쳐 90여 편의 글을 묶어 출판한 「근본교리들」(The Fundamentals)의 집필진 가운데서도 피어선 박사는 64명의 참여 저자 중 놀랍게도 가장 많은 논문을 제출한 인물이었다. 그가 세속에 대항하여 성경과 신앙 수호에 얼마나 열심 있고 탁월한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신학자요 목회자요 선교사인 동시에 평택대 전신인 피어선 신학교의 설립자였던 아더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은 탁월한 변증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구체적으로 잘 연구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청교도 배경의 가정에서 자라 일찌감치 헬라어와 라틴어 수사학적 교육을 받고 성경 자증의 원리를 받아들인 보수주의적 신학자였다. 안명준 박사는 이런 피어선의 성경관을 종교개혁주의자들의 신학에 굳게 선 루터와 칼빈의 전통을 굳게 따르는 학자였다고 논증한다. 이런 그가 어떤 식으로든 성경과 신앙의 변증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종의 기원」(1859)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고 과학이 폭발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던 19 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분명 인류 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이 격동의 역사적 중심을 치열한 목회자요 선교사로 살았던 피어선 박사의 변증가적 혜안을 살펴보는 것은 19세기 말과 유사한 혼동의 시대로 접어든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이 될 것이라 본다.

Ⅱ. 변증가로서의 피어선의 학문적 배경은 어디서 왔는가?

아더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은 1837년 3월 6일 뉴욕에서 10남매의 9번째 그리고 4형제 중 막내 아이로 태어났다. 그해는 무디와 존 워너 메이커 그리고 런던의 스펄젼이 태어난 해였다. 같은 해  태어난 이들 네 사람이 미국과 영국의 기독교 역사는 물론, 세계 선교사적 차원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아주 주목할 만한 일이다.

피어선의 출생은 그의 조상이 1639년 영국 국왕의 명령을 받아 미 매사추세츠에 도착하여 미국에 정착한지 약 200년이 지난 뒤였다. 피어선의 조상 중 처음으로 미국에 도착한 사람은 뉴왁(New ark)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초대목사였던 아브라함 피어선이다. 주민들이 그들의 마을을 뉴왁(New ark)이라고 고쳐 부른 것은 그의 출생지인 영국의 Newark-on-the-Trent의 지명을 따왔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 피어선의 후예들은 현 예일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의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이다. 피어선의 선교적 열정이나 복음적 설교의 능력이나 학문적 깊이가 한결같이 그의 조상들의 신앙적 유산 때문이었다고 후대 평가자들은 밝히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코네티컷 주 브랜포드(Branford)에서 피어선 목사를 따라 이사 온 사람들은 엄격한 생활의 규범을 강조한 청교도들이었는데 이들은 신정주의 원칙에 입각한 첫 교회를 설립하였다. 즉 교인이 아닌 사람은 투표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 피어선 목사의 아들 아브라함 피어선 2세 역시 목사였다. 그는 예일대 설립자 중의 한 명이며 초대총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의 부친인 스티븐 피어선은 장로교의 장로로 열 명의 자녀들을 장로 교인으로 길렀는데 피어선은 주일이면 스프링가 장로교회의 교회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이런 신앙적 배경은 그가 탁월한 기독교인으로서 뿐 아니라 학자적 수양을 쌓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스티븐 피어선과 그의 아내 셀리는 자녀들에게 철저한 복음주의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기독교 사립학교로 보냈다. 나이 11세 되던 1848년 워싱턴 스퀘어에 위치한 마운트 워싱턴 교구학교에 등록하여 그곳에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12세 때 희랍어신약성경을 읽었으며 뉴욕시 테리타운 언덕 허드슨에 위치한 고등학원에 입학하여 그의 뛰어난 학문의 능력과 시, 음악, 어학, 그리고 화술 등의 재능이 나타나 부모들로 하여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불구하고 대학과 학교에 다니도록 결정을 내렸다.

13세에 감리교회 특별 부흥회에서 중생을 경험한 그는 15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1852년 5월 28일 머서가(街)에 있는 장로교회 강의실에서 복음주의 청년들과 회합을 가졌는데 백인 계 무역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정신적 도덕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고안한 당시 영국인 조직인 YMCA에 관한 강의를 듣고 뉴욕 청년대표들을 포함한 백 명의 창립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1853년, 피어선은 뉴욕 주 클린턴에 있는 해밀턴대학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시학, 수사학, 그리고 어학에 몰두하였고 동료 젊은 토머스 베일리 알드리히는 피어선의 시를 높이 평가해 줌으로 피어선의 문학적 포부를 더욱 북돋아 주었다. 피어선의 고전적 시 형태는 그의 종교교육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도덕적 경건으로 넘쳤다. 이런 시적 감각은 그의 저작들에 반영 되었을 뿐 아니라 변증가로서의 삶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1857년 피어선은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하여 문학에 몰두하였다. 그는 시(詩) 기고란 외에도 헨리 비쳐(Henry Ward Beecher)가 창간한 「표준과 독립」(The Standard and the Independent)신문에 여러 편의 시와 평론을 기고하였다.

피어선은 1860년 뉴욕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하였는데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후에 성경이 역사와 과학 등에 대해 잘못된 진술을 포함한다는 고등비평이 힘을 얻었고 유니온신학교의 찰스 브릭스 교수는 1880년 이후 이 새로운 신학사조를 장로교에 들여왔다. 1892년과 1893년 장로교총회는 성경원전의 “무오성”을 선언하고 브릭스 교수를 장로교에서 정직 시켰다.

이 후 유니온신학교는 성경원전의 “무오성”에 도전하는 대표적인 진보주의 신학교로 바뀌었다. 현재는 자유주의 신학의 총본산이며 종교다원주의와 범신론에 입각한 신학교로 완전 변질 되었다. 이런 모습들을 경험하면서, 거듭난 신앙인이요 선교의 열정에 불타던 피어선은 자연스럽게 성경을 변호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1860년대 초반 피어선은 기독교에 대한 증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독교에 대한 증거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돌을 수집하고 놀던 어린 시절부터 자연 과학에 흥미가 많던 피어선은 과학과 신앙 사이에는 아무 런 모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독일의 자연학자이자 탐험가인 훔볼트(B. Von Humboldt)와 프랑스의 파스칼(B. Pascal)에 대한 대중적인 글쓰기를 좋아하였다.

이후 그는 디트로이트 YMCA에 적극 참여하면서 YMCA가 초교파적인 병기로서 청년들을 양성하는데 공헌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피어선은 디트로이트 기독청년 연합회를 위한 건물과 체육관 구입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한동안 임시건물에서 성경연구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피어선은 에큐메니칼운동에 참여한 외에 장로교단 일에도 적극 참여한다. 1872년에는 장로교 디트로이트 연맹을 조직하는 일에 앞장을 섰으며 1875년 피어선의 나이 서른여덟 되던 해에 미시건 대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선교운동에 있어 가능한 한 중립적 위치에 서려고 애썼다. 하지만 1890년 이후 신학적 다양성에 대한 자신의 온건하면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서서히 바꾸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1893년 세계박람회에서 노출된 신학적 다원주의가 피어선을 놀라게 하였으며 복음주의적 신학과 에큐메니칼적 관용 간에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애 마지막 15년간, 그는 평신도 성경연구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고등비평이 주장하는 지성주의와 불경건을 거부하고 나섰다. 그리고 전(前)천년주의 성경강해자의 주역이 되어 영국과 미국에서 성경에 굶주린 수많은 학생들을 양육하였다. 그는 진실한 근본주의자였으나 훗날 근본주의 운동을 특정 짓게 된 분파주의와 편협은 몹시 싫어하였다. 그는 성경강해에 관한 저술 및 「스코필드 관주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을 편집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영적 생활을 강화하고 국제적 성경강해자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확고히 하였다. 그의 초기 저술들은 대개가 선교에 관한 것들인데 반해, 1895년 이후 저술의 대다수는「세계선교 논평」을 제외하고는 영적생활과 성경연구에 관한 것들이었다. 초점이 선교에서 케스윅 영성운동 및 성경강해로 옮겨간 것은 선교단체들 간의 신학적 논쟁을 피하려는 방법 뿐 아니라 성경적 근본주의로의 전환이기도 하였다. 이런 그를 훗날 많은 학자들이 진정한 근본주의자라 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피어선이 조지 뮬러를 따라  후천년주의자에서 전천년주의자로 전환한 것은 주림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그의 근본주의적 관심을 심화시켰을 것이라 본다.

변증가로서의 아더 피어선의 학문적 배경은 이 같은 그의 삶의 궤적과 선교사로서의 사역이 결합하여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Ⅲ. 변증가로서의 피어선

피어선은 정통 조직신학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탁월한 변증가로서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변증가로서의 모습은 주로 「오류 없는 증거들」(Many Infallible Proofs: Chapters on the Evidences of Christianity, 1886)에 나타난다. 주로 위대한 불가지론자라 불렸던 잉거솔(Robert Ingersoll)에 대한 논박으로 시작된 이 책에서 그는 증거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여기서는 피어선의 이런 변증가로서의 모습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피어선은 특수 계시로서의 예언(prophecy)을 수용한 변증가였다

피어선은 기독교의 증거가 외적 증거와 내적 증거로부터 온다고 했다. 내적 증거에는 그리스도 자신의 성품과 가르치는 교리와 도덕성을 내포하였다. 피어선은 예언과 기적에 대해 주목한다. 피어선은 그 어떤 것보다도 외적증거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예언과 기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언은 말로 표현되는 기적을 말한다. 따라서 예언과 섭리는 쌍둥이 자매이다. 피어선은 이신론자(理神論者)들이 기적을 반대하는 것에 맞서 자연신론을 강하게 거부한다. 피어선이 볼 때 기적의 반대는 곧 예언의 반대였다. 성경은 기적의 책이 아닌가. 기적이 부정되면 예언이 부정되는 것이요 기독교가 부정된다. 이것이 그가 이신론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못한 이유였다.

그는 진정한 참 된 예언의 기준으로 3 가지를 꼽았다. 첫째, 인간적 예견이나 지혜나 총명으로 추측할 수 없는 미래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았다. 둘째는 참된 예언이라면 결코‘만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 된 예언은 예언의 시간적, 종합적 증거가 완벽하게 일치해야 한다. 피어선은 이것은 마치 증거의 시냇물이 강과 합쳐지고 거대한 홍수를 이루듯 거대한 성취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대인의 흩어짐을 예수님 당시 누가 과연 담대하고 명료하게 예언할 수 있었겠는가. 이 하나만 보더라도 성경은 범상한 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권위는 하나의 예언이 모든 예언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관점은 코넬리우스 반 틸의 ‘전제에 의한 이론’(the reasoning by presupposition)과도 유사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신지식이 있음을 웅변적으로 알려준다. 우리가 비기독교 철학의 소유자인 현대 인간을 기독교로 개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학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신지식에 호소해야 한다. 성경 예언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겨우 이신론자에 머물게 된다. 성경은 우리가 기독교를 변증할 때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다같이 인정하는 어떤 ‘사실’이나 ‘법칙’에 호소하지 않고 어떤 ‘사실’이나 ‘법칙’을 진정으로 ‘사실’과 ‘법칙’이 되게 하는 궁극적 표준이 무엇인가를 따져 변론하게 하는 표준이 된다. 이렇게 성경은 “규범을 주는 규범”(Norma Normans)인 것이다.

2. 피어선은 성경의 기적을 의심하지 않은 변증가였다

기적(奇蹟)은 불가사의한 일을 뜻하는 라틴어 미라쿨룸(miraculum)에서 왔다. 신약에 나오는 ‘이적’과 ‘기사’와 ‘표적’ 세 용어는 경우에 따라서 함께 쓰일 때도 있는 데(행 2:22; 살후 2:9; 히 2:4) 이 용어들은 구원의 역사와 관련된다. 즉 구원적 신론에서 이적은 필연적 귀결이다. 창조, 섭리, 죄, 구원의 원리를 인정할 때 구원은 진실한 필요물, 즉 은총으로서의 이적이 된다. 자연이나 사건의 흐름에 대해 초자연적 간섭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적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면 다양하다. 오늘날까지 성결파 및 오순절 복음주의자들은 신유와 방언의 기적이 유효함을 주장한다.

하지만 18세기 철학자 흄(David Hume)은 기적은 자연법의 위배로 보았다. 흄은 종교에 관한 자신의 두 저서 ⌜종교의 자연사⌟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우주 질서의 원인이 되는 지적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신은 우주 질서의 원인으로서 가정된 이신론적 존재(a deitistic being)이며 따라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기적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흄에게 있어 기적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흄이 볼 때에 혹 신의 특별한 의지에 의해 일반 법칙이 깨어지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전혀 알아챌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기적은 분명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20세기 초 과학자들 뿐 아니라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기적을 거부한 사례가 늘어나자 구프린스턴의 신학자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는 우리 마음에 품은 세계관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실들에 대한 정당한 고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기적을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워필드는 기적은 사도들이 교회의 토대를 놓음과 함께 그쳤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피어선은 기적을 자연법의 위배로 본 흄(D. Hume)이나 스트라우스(Strauss)와 의견을 달리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는 표적으로서 기적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기적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은 기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태양이나 무지개를 기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힘 모두를 초월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기적이라 인정한다. 정해진 자연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작용을 경이롭다고 하나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성경을 과학의 틀 속으로 가져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즉 피조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과율(因果律)에 사로잡힌 희랍인들의 구조 안에서 기적은 존재할 수 없다. 기적이 그들의 틀 속에 잡힐 수 없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에 있어 관심은 하나님의 일이었다. 하나님이 단지 무엇을 하시며 그 일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그들의 의문의 영역이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의 과학적 검증은 희랍인의 몫이지 결코 유대인들의 몫은 아닌 것이다.

성경은 과학 책이 아니다. 과학의 언어로 쓰여 지지 않은 책이다. 자연과학적 영역과는 관심 분야가 다른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해 우리가 갖는 신앙적 믿음으로 인해 비록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기는 하나 성경의 말씀대로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이 곧 성경의 하나님이시라면 진정한 과학은 성경적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 두 권의 책(말씀의 책 성경과 하나님의 활동의 책 자연은 때로는 근접하기도 하고 어떤 시기는 우호적이었으며 어떤 때는 서로 간에 무관심한 영역으로 치부하여왔으며 어떤 때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여왔다. 그것은 간혹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필요한 긴장이기도 하였다.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자연과학의 질서를 만드시고 그 사실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시고자 하였다. 헨리 모리스는 엔트로피(entropy)의 법칙이 성경 창조의 기적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흔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참된 기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과 과정들의 관계에 비추어 정의 될 수 있다.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도 당연히 성경은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확고한 창조 신앙의 피어선이 살아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것은 당연하였다. 피어선은 변증에 있어 과학과 기적 둘 다 당연히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3. 피어선은 성경 자증의 원리(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를 사용한 변증가였다

피어선에게 있어 성경은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피어선이 볼 때 교리나 실천 상의 오류는 성경 전체를 가지고 시험해보면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의 변증의 핵심 도구는 언제나 성경이었다. 피어선은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해 보아서 한 본문이 다른 본문의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게 하던가, 다른 본문의 올바른 느낌을 확증해 주든가, 새로운 각도에서 그 의미를 조명해 주고 그 깊이를 열어 주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성경 자증의 원리를 받아들인 이 같은 피어선의 입장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의 모토로 시작된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어선에게 있어 성경적 변증은 불신자와 신자 사이의 단순한 '공통적 관념'(롬 1:20)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데서 말미암는 차원의 '공통적 관념'(요 1:1-12)에 호소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변증학도 당연히 신학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원리, 즉 성경 자증의 원리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유추적 체계의 원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4. 피어선은 성경과 과학 모두가 변증에 유용함을 인정한 변증가였다

라틴어 「Scientia」는 사람의 지식을 말한다. 이 라틴어에서 영어의 「Science」가 유래하였다. 이 말을 지금부터 110여년 전 일본 사람들이 ‘과학’(科學)이라고 번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과학도 인간이 가진 하나의 지식 체계임을 알 수 있다. 즉 과학은 자연 세계에 대한 지적이며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지식 체계가 어떤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것과 종교의 지식체계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를 해석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또한 오늘날 과학은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떠나 높이 평가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성경이든 과학적인 데이터든 모두 해석을 통해서 산 의미를 갖는다는 면에서 오늘의 컨텍스트 아래에서 이 둘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 지를 다루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은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의 담을 쌓아온 면이 없지 않다.

성경은 창조의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 더욱이 성경은 우주가 시작될 때 시간(태초:bereshith)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과학이 아무리 성경과 다른 언어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다른 책인 자연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을 피어선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피어선은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과학의 언어로 성경을 탐색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성경은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어선은 과학에도 대단히 해박한 학자였다. 피어선이 활동하던 시기는 진화론과 자연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과학에 대한 관심은 당대 탁월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당대 근본주의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피어선의 관심 영역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피어선이 과학적 변증서를 남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피어선은 자신의 책에서 자연과 성경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는 주장 뿐 아니라 오늘날 설계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유사한 주장을 편다. 피어선은 또한 창세기의 날(yom)이 문자적 하루가 아니었다고 논증한다. 피어선이 볼 때에 창세기 2:4절에서 이 말은 창조의 전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시 95: 8절에 보면 “시험하는 때에” 란 말씀에서 그 날(‘yom’)은 40년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오리겐과 어거스틴을 인용하여 피어선은 이 “날”은 하나의 시기를 의미했을 것이며 히브리어가 정해지지 않은 것을 의미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창조과학운동이 주장하는 것과 조금은 다른 결론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피어선이 볼 때에 성서의 목적은 과학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었다. 성경이 목적하는 것은 분명 도덕적이며 영적 진리를 가르치려는 것이다. 만일 성경의 언어가 과학적이었다면 그 언어는 관심을 끌었을지 모르나 오히려 약점과 방해를 받았을 것이라고 피어선은 역설한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피어선은 과학의 영역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그리고 자연의 영역 안에서 진화가 물리적 세계 속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방법 가운데 하나 일 수 있다는 추측을 허용하고 있음도 주목되는 언급이라고 본다.

5. 피어선은 성경 속에서 진정한 도덕적 권위를 찾은 변증가였다

세상 철학에 있어 인간의 최고선은 자아실현이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로서 우주의 법칙에 순응해서 그의 내적 가능성을 계발한다. 기독교 철학에서 인간의 최고선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세상 안에 모든 죄악을 완전히 소멸해야 하며 악한 자의 사역이 계속하는 한 절대적 최고선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이 도적적 양심은 가지고 있으나 인간의 최고선은 하나님과 세상 앞에 늘 무능할 뿐이다. 피어선이 볼 때 성경적 최고선은 개개인의 악과 내재적 악을 소멸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윤리는 소망의 윤리요 회복의 윤리이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 책이 아니다. 성서의 통일성, 명확성 가운데 내재하는 도덕적 숭고함의 극치(sublimity)는 다른 종교와 차원 자체가 다르다. 피어선은 성서를 대적하는 것이 곧 도덕적 타락이라고 말한다. 피어선은 “이교도들에게 성서를 공격하게 내버려두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전능하나 선하시며 모든 것을 알지만 자비로운 분이다. 세상 헬라의 처럼 신경질적이고 자기 아버지를 퇴위시키고 자기 아이를 잡아먹는 신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기 아이를 삶아 먹는다. 이게 인간의 본 모습이다. 인간을 닮은 신이 아닌 신을 닮은 인간이 타락한 것이다. 성서만이 인간의 존엄과 위엄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한다. 동물과 사람의 위치는 분명 다르다. 송아지를 숭배하고 악어를 숭배하는 것은 추락한 인간의 상징일 뿐이다.

현대 과학은 동물의 창조를 고귀하게 여기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는 모든 피조물의 왕관이 주어졌다, 자연철학, 천문학, 지질학, 소설, 역사, 법과 의학은 지식은 주나 육욕을 억제하고 감각적 욕망을 제어하며 고상한 목적을 고취하고 죄의 기질을 드러내며 더 진실한 아들이 되게 만들고 더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게 만들지는 못한다. 성경의 도덕적 권위는 성경이 다른 종교 문헌과는 차원이 다른 책임을 증거한다. 피어선은 이점을 강조한다, ‘사람은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의를 위하여 역사하는 소망이 생기기 시작하며 악은 억제 되며 선(善)을 자극’한다.

6. 피어선의 변증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변증이었다

피어선은 다른 무엇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변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피어선은 총 6장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변증한다. 그 주요 내용은 첫째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요, 둘째 그리스도의 인격에 나타난 독특하고 신비로운 측면을 다루고 셋째 신이 어떻게 인간의 모습으로 역사적 실재로 나타날 수 있었는가를 다루면서 이 당혹스러운 주제에 대해 변증을 시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머지 2장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교사로서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능력과 독창성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오늘날 구속사적 설교에서 잘 나타나는 오실 메시야에 대해 피어선은 직접적 예언(direct prophecy)이 소위 ‘원복음’이라고 알려진 창세기 3장 15절로부터 시작하여 다윗과 예언자의 시대 가운데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절정을 이루며 말라기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논증한다. 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과 역량이 풍부했던 피어선은 직접적 예언보다 오히려 간접적 예언(indirect prophecy)들이 보다더 놀라운 증거들이라고 본다. 예언적 시(詩)들과 모형론적 레위기의 의식과 규정들 그리고 역사책들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형을 추적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성경의 파라독스에서도 그리스도의 모형을 발견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는 성경의 많은 역설 가운데 바로 십자가에서 그 적나라한 절정을 발견하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과 완전한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니케아공의회 이후에 지속되고 있는 신학의 관심 영역이다. 제한된 우리 인간이 어찌 전지전능하신 참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논증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피어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긍정하는 피어선은 이 문제를 정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성경의 기록자들은 예수님은 선생(랍비)으로 묘사한다. 우리 인간은 믿음 뿐 아니라 배워야 한다. 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불렀다. 피어선은 워드워즈의 말을 인용하여 “언어는 사유의 화신(Language is the Incarnation of thought)"이라고 했다.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권위와 거룩함과 고상함과 생명력과 독창성과 희생의 사랑은 세상 철학과 다른 참 진리요 참 철학이다. 과연 이 세상 누가 이분과 견줄 수 있겠는가. 예수의 가르침은 아래로부터 온 것이 아닌 위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Ⅳ. 나가면서

지금까지 변증가로서의 피어선의 생애와 학문적 여정과 증거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피어선의 변증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먼저 그는 단순한 성령의 사람이 아니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변증가였다. 그는 자신의 신앙적 확신에 더하여 신학, 문학, 예술, 철학,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총동원하여 기독교와 성경과 그리스도를 증거한 탁월한 변증가였다. 피어선이 살던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은 성경과 기독교가 세상의 세속적 자연주의와 우연주의로부터 세찬 도전을 받던 시기였다. 그가 이에 전혀 굴하지 않고 기독교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신앙의 변증에 있어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설득력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작금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피어선의 증거들은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변증이었다. 기독 학자로서 피어선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성경과 기독교를 변증하였다. 그의 변증은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에서 나온 확신에 찬 지성과 열정의 강력한 변호였다. 이것은 그가 성경을 신뢰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한 철저한 ‘믿음’, 그것이 바로 그의 설득의 힘이었다.

셋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충성의 변증이었다. 피어선의 변증은 단순히 성경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피어선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향하지 않는 변증이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 믿음에 대해 피어선기념연구원 원장을 지낸 유윤종 박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과 확신은 산을 들어 바다로 옮길만한 믿음이었다’고 칭송하고 있다. 피어선은 열정의 선교사답게 이렇게 21세기 첨단과학기술시대를 사는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려는 모든 복음주의자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소개할 것인지 이미 100여 년 전 그 길을 변증의 방법으로도 비춰준 신앙의 위대한 등불이었다.


<박해경-조덕영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