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7-05-05 10:25
오리겐의 창조론 평가-공과(조덕영)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90  
영역: 성경/신학
키워드: 오리겐, 창조, 인간, 창조주 하나님


오리겐의 창조론 평가(공과)
Origen's Doctrine of Creation


조덕영
Duk Young Cho

창조신학연구소
Korea Institute for Creation Theology
www.kictnet.net
E-Mail: dycho21c@hanmail.net


(Received February 25, 2017,
Accepted on March 1, 2017)


This study deals with Origen's Doctrine of Creation. Origen was the first great biblical scholar who was an early church Father and apologist for Christianity. He may be considered the Founder of Christian Philosophy. But He disagreed strongly with the Greek philosophers (for example, Plato and Aristotle) who claimed that God is the architect that formed the world out of eternal matter. Origen insisted that God created matter itself. He contributed to the doctrine of the Trinity with his teaching on the eternal generation of the Son by the Father. The Son was eternally of the same nature as the Father but derived from Him.


I. 서론
II. 창조주 - 삼위일체 하나님
III. 천사 창조론
IV. 세상 창조
V. 인간 창조
VI. 악은 어디서 왔는가
VII. 오리겐과 영지주의
VIII. 나가면서


I. 서론

오리겐(본명 Origenes Admantius, 185년 경-254년 경)은 기독교 초기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복한 그리스도인 부모 밑에서 일곱 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보편적 기독교 지식인 가정의 경우처럼 아버지에게서 헬레니즘 교육과 성경을 배웠다. 당시 헬레니즘 교육은 오늘날 중등교육에 해당하는 철학 공부의 준비 단계로 백과사전식으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하여 배우는 전반적인 교육 과정이었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265경-339경)에 의하면 이오니아(Ionia)어로 레오니데스(Leonides)로 알려진 그의 아버지는 세베루스의 치하 박해(Severan Persecution, 202년)시 순교하였다. 17세의 젊은 나이에 오리겐이 클레멘트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에서 신도들을 가르치는 교리문답학교(catechitical school)의 교장이 된 것은 이 같은 아버지의 조기 교육과 더불어 가족의 생계 부양을 위한 이유도 있었다. 오리겐의 어머니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녀는 맏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순교하려고 결심하자 놀란 나머지 아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오리겐의 옷을 숨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소년 시절 오리겐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순교에의 권면>(Exhortation to Martyrdom)에서 오리겐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히 12:2; 8:1)에 앉으셨음을 강조하고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거나 그와 그의 종들과 그의 말씀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며 신앙의 지조를 강조하고 있다.

오리겐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서관이 있었고 학문의 자유를 바탕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동한 신플라톤학파뿐 아니라 철학의 거의 모든 학파가 활동하고 있었다. 오리겐이 기독교 신학의 여명기에 기독교와 헬라 철학을 종합한 인물이 된 것은 이와 같은 환경적 배경이 있었다. 그는 다작의 저술가로 알려져 있는데 성경텍스트, 주석, 설교, 경건생활, 변증에 관한 다양한 책을 썼다. 이 가운데 중요한 저작은 교의적 주제를 주로 다룬 <원리론>(De Principiis, 원리에 관하여)과 철학자 켈수스의 <The true doctrine>을 반박한 변증서인  <켈수스 반박>(Contra Celsum), 성경 해석의 근간을 제공한 <6개 국어 대역 성경>(Hexapla) 이 있고 강해서는 279편이 남아있다. 오리겐이 방대한 저서들을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유한 그의 제자 암브로시우스의 개종과 관련이 있다. 영지주의 발렌티누스파 이단을 추종하던 암브로시우스는 오리겐의 제자가 되면서 정통 신앙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오리겐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였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215년에서 220년 사이 오리겐은 방대한 저서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의 많은 저술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그가 사후 300년이 지난 후 교회회의에서 정죄되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의 저서를 몰수하고 발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주후 543년). 이후 우리는 유세비우스의 책을 통해 그가 방대한 저작물의 저자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저작은 헬라어 원본이 아니라 대부분 라틴어 역본으로 남아있다.

그가 당대 신학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대체로 팔레스틴에 선교 여행(215년경)을 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오리겐은 가이사랴와 예루살렘 주교들로부터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데메트리우스(Demetrius) 주교는 이에 대해 강한 시기심을 가지게 된다. 표면적 이유는 어린 시절 오리겐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마 19:12)를 위해 자신을 거세한 결과, 사제로 정식 위임을 받을 수 없는 신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30년 경 팔레스틴 방문 시에 오리겐은 드디어 장로가 되어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데메트리우스의 분노를 사게 된다. 데키우스의 박해 동안 많은 박해에 시달리던 오리겐은 황제가 죽으면서 석방 되었다. 유세비우스는 그가 박해 가운데서도 결코 배교하지 않고 견디었다고 전하며 갈루스와 그의 아들 볼루시아누스 황제 때까지 살다가 69세 때 두로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실 오리겐 이전 본격적인 기독신학자는 없었다. 변증가요 순교자였던 저스틴 마터나 논쟁적인 이레네우스가 있었고 스승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있었다. 동시대 사람으로는 이레네우스의 제자였던 로마의 히폴투스(Hippolitos)가 있을 뿐이다. 오리겐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독교적으로 양육 받은 최초의 문필가였다. 그러기 때문에 오리겐이 어떻게 신학을 전개하였는가는 기독교가 초대 교회 당시 어떻게 신학을 형성해 갔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최초의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본고는 오리겐의 이들 다양한 저작(주로 De Principiis, 원리에 관하여)을 중심으로 창조에 대한 오리겐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리겐은 고대 교회 최초로 기독교 가르침에 대한 포괄적이며 체계적이고 신학적인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기독교 초기 신학형성기에 나타난 오리겐의 창조론과 관련한 교의학적 시도의 공과(功過)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II. 창조주 - 삼위일체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세상이나 인간이나 물질과 어떻게 다른가? 오리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비육체적 존재임을 세 번이나 강조한다. 육체는 피조물의 특성을 반영하는 단어다. 오리겐은 하나님을 육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소개한다. 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을 빛이라고 했다고 하나님을 이 세상 태양 빛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성령을 육체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 시대인 오늘날 성령을 마치 파워풀한 존재로 여기는 만유내재신(萬有內在神)적 성령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주로 과정신학자들이나 신사도운동가, 오순절주의자들이 성령을 파워 에너지나 불처럼 여겨 안수 행위로 신자들을 쓰러뜨리거나 ‘불 받으라’는 식으로 인격적 하나님이신 성령을 도구화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오리겐 시대만도 못한 미숙한 성경 해석이 여전히 통용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다. 오리겐은 오히려 하나님을 어떤 육체라거나 육체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분은 그 어떤 것도 절대로 덧붙일 수 없는 단순한 지성적 본성이시다. 헬라 철학의 단어를 빌리면 그분은 전적으로 유일성(唯一性, monas), 말하자면 일성(一性, henas)인 분이다. 그렇다고 오리겐이 철학의 하나님을 믿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헬라 철학이 말하는 완전한 통일성과 절대적 불변성을 가진 순수한 정신적 본질로서 우주의 만유 너머에 존재하면서 모든 만물의 영원한 창조주는 이성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세계를 형성하는 조물주인 데미우르게(Demiurge)를 믿는 헬라 철학자들의 견해와는 다른 것이었다. 신은 자신의 뜻대로 우주를 존재하게 하였고 우주의 본성을 작정하고 만든 것이다.

이 현상 세계를 성부 하나님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성자 로고스(Logos)로 인한 것이다. 오리겐은 창세기 1장 강해부터 창조의 기독론적 접근을 시도한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이 아들을 알지 못한다(마 11:27). 이 성자 하나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장자로 ‘지혜’와 다른 분이 아니라 같은 한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힘이시며 지혜”(고전 1:24)라 했다. “하나님의 지혜”가 실체가 없는 존재로 여기면 안 된다. 오리겐은 요한복음 주해를 통해 오늘날 이단으로 정죄된 양태론을 부정하고 있다. 성자는 말씀이며 성부의 모상이다. 이 제 2위의 신이 물질세계를 존재하게 한 창조에 관여한 신의 아들이었다(요 1:3). 그 분이 또한 모든 사람이 구원자이다.

오리겐은 성령은 만들어지거나 창조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 성령은 성화의 은총을 베푸신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다. 즉 거룩한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서 은혜를 받을 가치 있는 자들에게 향한다. 따라서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은혜는 성도들이 거룩하게 되도록 한다. 오리겐이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보는 군주신론이나 양태론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한 세 본체(位格, hypostases) 혹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오리겐은 성령께서 로고스로 말미암아(through) 지은바 되었다고 보았다. 이것은 성령을 아들에 종속된 것으로 간주한 것을 의미한다. 오리겐이 분명 세 위격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성부가 성자보다 뛰어나고 성자는 성령보다 뛰어나다고 본 것은 삼위일체에 “위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정통 교리와 벗어난 낯선 주장인 것이다. 성자가 성부와 동일하나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개념은 정통 교리가 아니다. 일종의 층위를 나눈 삼위일체론은 일종의 ‘종속설(Subordinationism)’ 이 되어버리게 된다. 이같이 성부, 성자, 성령의 층위를 종속적 관계로 구분한 것은 공교회의 지지를 받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독론에 있어 아리우스(Arius)의 유사본질(類似本質)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서 주석>(Commentary on Hwbrew)을 통해 동일본질(homoousios)의 교리를 발전시킨 오리겐이 종속설(surbodination)로 귀착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II. 천사 창조론

창세기는 뱀이 하와를 유혹했다고 기술한다(창 3:1-6). 유다서는 미가엘 천사장과 모세의 시신을 놓고 다투는 악마를 표현한다. 오리겐은 창세기 1장에 두 가지 창조 장면이 있다고 보았다. 바로 창조(creation)와 만듦(make)이다. 여기서 최초의 창조는 순수하게 영적인 것이고, 이것은 육체를 갖지 않은 영혼들이었다. 이 영적인 존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성과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들이다. 천사들도 여기에 속한다. 오리겐은 말씀과 이성뿐 아니라 모든 이성적 존재들(logikoi)도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존재들은 어느 특정한 시점에 하나님에 대한 관상을 중단하고 그들이 지은 죄악의 정도에 따라 천사나 인간이나 혹은 사탄이 된다. 물질적 우주는 타락한 존재들을 머물게 하기 위한 창조된 두 번째 장면(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도 오리겐은 본래 육체는 선한 것(창 1:10, 12, 18, 21, 25, 31)이라 말한다. 오리겐이 영지주의를 반대한 학자임을 보여준다. 즉 모든 영적 실재들은 자유로운 행동자로서 창조되었는데 그 자유의 결과로 죄를 짓게 되었다. 이후 모든 영적 실재는 그들의 타락 정도에 따라 계급이 나뉘었고, 그들이 거할 곳도 정해 졌다. 이때 높은 영성에 도달한 존재들은 신적 존재, 천사, 인격화된 성신 등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은 이들을 위해 천국을 만들었다. 가장 타락한 사탄과 악마들은 어둡고 저급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었다. 인간은 바로 이러한 두 계급 중간에 육체를 입고 나타난 존재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이들을 훈련시키신다. 인간의 영 혹은 영혼은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정화되어 천사의 위치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선재한 영혼(anima)들의 타락을 설명하기 위해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생각을 빌려온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렇게 창조된 영들이 신적인 것에 관한 관상(觀想)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가 관상을 게을리 하여 타락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둘째 창조 사역에 임하셨다. 둘째 창조는 물질적인 것으로서 타락한 영들을 위한 임시 처소를 마련키 위한 것이다. 가장 바닥에 떨어진 영들은 악마들(demon)이 되었고 나머지는 인간 영들이 되었다. 이 타락한 인간 영들(선재하던 영들)을 위해 하나님은 현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몸들을 만들었다. 즉 흙으로 일부는 남자로, 일부는 여자였다. 이 같은 주장은 성경적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낯설다. 정경이 확정되지 않고 플라톤 철학에 익숙한 오리겐이 범할 수 있는 초기 신학 형성기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겐이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 여겼던 것은 그의 신학이 성경 밖으로 나가버리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교회 전승 속에서 로마 카톨릭은 수호천사 교리를 가지게 되는 데, 오리겐도 교회 안에 아주 신분이 낮은 천사라 할지라도 각자의 권능에 따라 자신의 기도를 우리와 합치시키며 우리가 청하는 것을 위해 협력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오리겐은 <창세기 강해>(8.8)에서 아브라함 앞에 천사의 형상으로 나타난 이는 천사가 아니라 말씀(Logos)이라고 설명하므로 천사 해석에 있어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정통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천사 해석의 풍성함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IV. 세상 창조

세상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로 구성된다. 오리겐은 모세가 세상 기원에 관해 쓴 창세기 1장이야말로 역사적 사건 이상의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즉 많은 구절에 단순한 세상 창조를 너머 영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계시의 문자 속에는 신비적이며 깊은 실재가 담겨있다. 또한 오리겐은 물질의 선재(先在)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한 사람이다. 세상은 특정 시점에 분명 창조된 세상이다. 비록 그가 철학에 능통한 인물이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이 물질과 영원히 공존한다고 보는 철학의 관점과는 분명 다른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것을 볼 수 있다.

신학자로서 오리겐이 지닌 세상 창조론에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어찌하든지 그가 삼위일체의 틀, 특히 기독론의 틀 안에서 세상의 창조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리겐은 눈에 보이는 물질계는 일시적이며 잠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세상은 형체가 사라지고 있으며(고전 7:31) 종말을 향한다. 즉 물질계에 속한 생명은 시작이 있되 유한하다. 피조물은 시작이 있었으나 종말을 가진 ‘허무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오리겐은 세상의 창조에 대해 성경이 ‘카타볼레’(καταβολή, 기초 놓음)라는 새롭고 고유한 말을 사용한다는 데에 주목한다. 이 말은 철학이나 신학에서는 전문 용어로 잘 쓰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 성경에서 구성(constituo)이라는 부정확한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헬라어로 이 말은 단순히 세상이 피조 되었다는 의미가 아닌 떨어뜨리다(deicere), 곧 아래로 향하여 던지는 행위(deorsum iacere)를 표현한다. 이 설명에서 우리는 오리겐이 세상 창조를 바라보는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곧 세상은 가장 완전한 상태로 하나님에 의해 하강한 것이다. 또한 이렇게 세상이 하강하듯 피조된 것은 세상(물질적 세계)이 타락의 결과로 형성되었기 때문임을 암시한다. 그것이 ‘카타볼레’의 특징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크티시스’(κίσι&#962;,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은 세상에서 훈련 받도록 정해진 모든 영혼 그리고 그 영혼들을 곁에서 보살피고 다스리고 도울 준비가 된 모든 세력을 담을 수 있는 속성과 크기로 창조되었다고 오리겐은 역설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결국 모든 회복하시고 모든 것을 성화하시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이다. 오리겐은 사랑의 하나님의 본성 속에서 이 세상이 완전히 회복될 것임을 아주 강하게 믿은 사람이었다.


V. 인간 창조

오리겐은 인간은 성경을 통해서만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리겐은 물질 선재는 부정하나 인간의 영의 선재설(先在說, preexistence)을 주장한다. 이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육체를 입고 세상에 찾아왔다. 인간은 또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이 인간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 오리겐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3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동물을 다스리고(창 1: 26-27), 친자(親子) 관계와 관련된다(창 5:1-3).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피 흘림이 허락되지 않는 신성한 존재(창 9:6)이다. 살인이나 타인의 피를 흘리는 일은 절대 금해야 하는 일이다. 

오리겐은 또한 인간이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일명 삼분설). 삼분설은 인간을 혼(또는 영혼, the soul, nephesh, Psyche, anima)과 영(the spirit, ruach, pneuma)과 육체(soma, corpus)로 구별한다. 성경은 영과 혼을 구분한다(히 4:12; 살전 5:23; 고전 2:14-3:4; 고전 14:14). 이 이론은 오리겐 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학파, 이레니우스. 닛사의 그레고리, 에라스무스, 마르틴 루터, 워치만 니, 부흥사들의 설교, 성결교 등에서 발견된다. 3분설은 신학적 사유를 떠나 성경을 일반 성도들에게 그대로 쉽게 그대로 전달하는 데 편하므로 목회자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부흥사들이 3 분설 적 설교에 익숙하다. 종말론에 있어 세대주의적 설교가 성경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부흥사들이 종말을 설교할 때 세대주의적 설교를 잘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3분설에서는 위에 소개된 4가지 성경 구절에서 보이는 영과 혼의 구분을 주목하고 우리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혼을 가지고 있으므로 둘을 구분하는 것은 영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중생하면 우리의 영이 살아난다고 본다. 영이 살아날 때 인간이 인격(지,정,의)과 구분되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배드리는 감정이 살아난다. 3분설은 신학적 오해를 많이 산 주장이다. 이단으로 정죄 받은 시리아 라오디게아의 주교 아폴리나리우스(361-390)가 자신의 기독론을 내세울 때 3분설을 사용하면서 3분설에 대해 신학자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3분설을 경계한 측면이 있다. 19세기 들면서 3분설은 루스, 올스하우젠, 베크, 델리취, 허드 같은 독일 및 영국학자들에 의해 부활되었다(벌콥, Systematic Theology, 191-192). 필자는 신학적으로 볼 때 2분설 적 논리가 좀 더 성경적이라 보나 2분설과 3분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오리겐은 그 3분설의 신학적 원조의 한 사람이었다.

오리겐은 영(프뉴마)과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정신(nous)을 구분한다. 오리겐은 사람 안에 선하고 천상적인 영혼과 더 낮고 지상적인 영혼이 있다고 문제를 다룬다. 영혼적 영혼이 있는가 하면 지상적, 물질적, 비이성적 영혼들(짐승들의 영혼)이 있다.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영혼이 있는가하면 선과 악, 영과 육을 선택할 수 있는 영혼도 있다. 오리겐은 영(루아흐/프뉴마)과 영혼(네페쉬/ 프쉬케)이 동물 세계에도 적용(전 3:21, 계 16:3)되며 여호와 하나님(사 42:1. 렘 9:9, 암 6:8, 히 10:38)도 네페쉬임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우리말로 100 가지 이상으로 번역된 영혼(네페쉬)는 그 쓰임새가 아주 다양한 단어이다. 최고의 종교적 행사도 프쉬케의 일로 간주(막 12:30, 눅 1:46, 히 6:18, 19, 약 1:21)된다.

다양하게 번역되는 네페쉬를 크게 네 가지 의미로 압축할 수 있다. (1) 생명 자체(시 29:4), (2) 생명 유지 관련(호흡, 목), (3) 인간의 실재, 하나님을 향한 갈망(시 24:1), 열망, 감정, 물질적 갈망(미 7:1) 관련, (4)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격(레 2:1)이 그것이다. 육체와 영혼과 영에 대해 2분설과 3분설으로 첨예하게 맞서는 오늘날 신학과 달리 오리겐은 그런 이분법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편협한 해석이 성경적 인간학을 오도할 수 있다고 볼 때 인간 영혼 기원에 대해 성경적 해석을 모색하며 영혼을 추적한 신학 형성의 초대 교회를 산 오리겐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영혼에 대해서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부터 견해가 갈라졌으니 어느 것이 맞는 건지 규정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보면(벌콥의 말을 따른다면) 2분설이 좀 더 신학적 의미의 일반적 견해이고 3분설은 사람의 3가지 다른 측면을 말한다고 보면 되겠다. 다만 오리겐은 영혼이 영과 육 사이의 매개체처럼 묘사한다. 그럴 경우 영혼은 고유한 의지를 가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오리겐의 경우 영혼이란 자신의 상위 부분인 영의 제자인 이성으로 이끄는 영의 의지를 따르던지, 영혼의 하위 부분인 육의 의지를 따른다. 영혼에 대한 오리겐의 이 같은 관점은 오늘날 주류 신학에서는 분명 낯선 것이다.

근본적으로 영혼에 대한 두 견해는 신비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신비의 문제다. 즉 피조물인 사람은 영-혼-육의 결합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성경도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이 명쾌하지가 않다. 따라서 이 해석에 대한 바른 해석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교파마다 이 문제에 대해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VI. 악은 어디서 왔는가

모순으로 보이는 선하신 하나님과 악의 공존 문제는 신정론의 끝없는 논쟁거리이다.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 완전하신 존재라면 과연 악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오리겐은 신학자로서 악의 문제를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접근한 기독교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오리겐은 악의 신적 기원을 배제하며 이 문제를 접근한다. 악과 물질 사이에 모든 형이상학적인 필연적 관계는 없다. 악은 절대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물질이 악의 기원이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사악함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선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다름 아닌 악에 떨어지는 것이다. 선에서 멀어지는 만큼 사람은 악에 다가가게 된다. 선을 소홀히 하면 사람은 선의 반대편으로 이끌리게 마련이다. 다른 악은 없다. 절대적 악 또는 실체(hypostasis)라 할 수 있는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상대적이다. 악은 선의 부분적인 결핍(缺乏)인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악이 선의 결핍이라는 점이다.(Certim namque est malum bono carere).

이 같은 오리겐의 신정론은 성경 속 바울의 신정론을 따른 것으로 어거스틴에게 연결된다. 그리고 이 같은 악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통제되고 지배된다. 그리고 악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드러내는 몽학선생으로 작용한다. 어거스틴이 오! 복 된 죄악이여(felix culpa)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신앙적 토대로부터 나온 고백인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칼빈도 이 같은 악의 이중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악은 사단과 아담의 원죄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질서에 반항하고 복종을 거부할 때 생겨난 것이기는 하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선의 결핍이라는 사상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완성으로 나아간다. 이 하나님을 닮게 되는 완전함에 이르는 길은 유보되어 있다. 즉 범죄한 인간은 영혼을 정화시킬 ‘불’로 연단된 뒤 그 분과 비슷하게 된다(요일 3:2). 비슷함이란 진보하여 비슷한 어떤 것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종말에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고전 15:28)이라 한 말씀이 동물이나 나무나 돌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서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즉 죄의 모든 찌꺼기에서 깨끗하여 지고 악의의 모든 구름은 완전히 걷히고 이성적 정신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시라는 사실을 느끼거나 이해하거나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사탄 역시 인간과 같은 영적 존재이므로,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탄 까지도 구원하시고 피조세계의 모든 존재는 순수한 정신으로 존재하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오리겐의 종말론이 단순히 악의 존재를 넘어 ‘만유 회복’, ‘보편 구원론’으로 나아가는 이유이다. 진노의 하나님은 근원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이다. 자비로운 하나님의 목적은 악의 만연이나 인류의 저주가 목적이 아니다. 이렇게 오리겐은 낙관적인 보편구원설의 길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이 견해는 오늘날 칼 바르트에게 까지 연결되고 있다.


VII. 오리겐과 영지주의

오리겐의 고향 알렉산드리아는 저명한 영지주의 이단자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고향이기도 했다. 성경에 대해 필로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택한 발렌티누스의 영지주의는 여러 분파를 만들어내면서 기독교에 다양하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영지주의가 기독교에 지성적 위협을 가하던 시기에 오리겐은 영지주의에 대해 철저한 반대 입장을 취한다. 당시 필로의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에 우호적이었던 오리겐이 같은 우화적 해석을 택한 영지주의를 배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지주의와 성경적 기독교는 여러 면에서 충돌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창조론과 기독론이었다. 먼저 영지주의는 성경적 창조론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오리겐은 이단자들(영지주의자들을 말함)이 믿는 창조주 데미우르게(demiurge, 조물주)는 불완전하고 선한 존재가 아니라 말한다. 당연히 그들에게는 더 완전한 하나님이 존재해야만 했다. 발렌티누스에 의하면 다양한 조물주가 있다. 플레로마(Pleroma)의 세계에는 30개의 아이온(aeon)이 있으며 소피아는 가장 낮은 아이온이다. 그렇다면 악이 만연하는 세상은 수준 낮은 아이온이 만든 세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세상을 만든 조물주가 바로 데미우르게인 것이다. 유대교 카발라에서 말하는 아인 호프는 아마 최고 수준의 창조주가 될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단숨에 악의 문제를 극복한다. 즉 이 같은 신비로운 지식을 바로 아는 것이 곧 영지요 구원인 것이다.

영지주의는 성경적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는 거부하는 반면 그리스도는 표면적으로 수용한다. 하지만 창조와 악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다른 방법으로 해석한다. 신령한 지식으로 구원 받는 영지주의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교리가 바로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영지주의는 십자가 중심의 성경적 기독론과도 전혀 다른 길을 주장하였다. 영지주의가 얼마나 기독교 교리와 대립하는 주장을 펴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오리겐은 이 같은 조물주 데미우르게를 내세우는 영지주의의 주장을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을 저버린 망상가들이라고 말한다. 육체는 더러운 것이 아니다.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도 인간의 더러운 육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육체를 창조하신 분이 육체를 변형시켜 부활시킨다는 뜻이다. 오리겐이 영지주의자들과 달리 육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체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듯 더러운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흙이 된 인간을 부활시키고자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육체를 취하여 내려오셨다.

오리겐은 영지주의자들이 이 같은 오류에 빠지게 된 이유는 성경을 영적 의미로 이해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성경은 인간의 작품이 아닌 만물의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 진 책이다. 따라서 그에 맞는 해석법이 있어야 한다. 이 신비한 구원 경륜(oikonomia)은 현명하고 겸손한 사람들도 알기 쉽지 않다. 바울에게 주어진 은총과 같은 특별한 것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오리겐이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성경해석 방법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나 그가 알레고리적 해석 방식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과가 어떻든 헬라 철학에 능한 오리겐이 영지주의를 반대했다는 것은 그가 당시 신앙의 편에 굳건히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VIII. 나가면서

본격적인 신학의 연구 전통이 없던 시대에 계시인 성경과 달리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분명 제한적이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오리겐의 신학은 성경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그것은 창조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시대를 앞서 교리를 정립하고 신학의 첫 길을 닦는 작업을 선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오리겐은 정말 실패한 신학자였던 것일까? 하나님은 말씀을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한 것처럼 하나님의 신학자들도 큰 오류 없이 성경 해석의 길을 닦도록 왜 인도하시지 않은 것일까? 오리겐은 단순히 시대를 앞선 신학적 저서를 집필한 부족한 면이 많은 신학적 진술에 그친 미숙한 신학자인가?

오리겐은 본문 주해와 주석을 쓴 최초 기독교 성경학자요 교의학의 최초 작품을 쓴 학자요 <켈수스 반박>을 통해 초기 기독교 변증을 이끌었고 창조 신앙에 있어서도 성경적 교리를 구축하려고 노력한 학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54년 경 순교한 이후 약 300년 후인 제 5차 종교회의(553)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몰수되어 버렸다. 이 때 오리겐의 모든 저작들은 수난을 당하게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의 작품들이 몰수되었기에 오늘날 그가 썼다고 알려진 책들이 정말 그가 쓴 원본과 다름이 없는 지도 불분명하다. 사람들은 오리겐의 작품이 분명한지 아니면 후세 인물들이 얼마나 가감했는지 검증 없이 그를 정죄한 편견을 가지고 그를 다루고 있다. 필자 또한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또한 그가 만일 순교 당하지 않고 신학적 연구에 매진하였다면 어떤 학문적 발전과 수정을 이루었을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그가 초기 기독교 학자로서 기독교를 강력히 위협하던 영지주의 사상을 부인하는데 앞장서고 성부수난설(聖父受難說, pastripassianism), 양태론(樣態論), 아리우스주의와 같은 이단적 사상에 빠지지 않도록 신학적 통로를 제공한 것은 분명한 공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