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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6 08:41
교회에서의 과학과 신앙 교육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529  
영역: 교육/기타
키워드:  과학과 신앙, 창조과학, 문화명령, 교회교육


교회에서의 과학과 신앙 교육
Teaching Science and Faith in Church

김성민
Sung Min KIM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ACTS Seminaries of Trinity Western University
7600 Glover Rd., Langley, BC V2Y1Y1, CANADA
EMail: benybenyg@gmail.com


(Received on April 21, 2016
Revised and accepted on June 15, 2016)


What is the right relationship between science and Christianity? Are they in conflict, independent relationship, dialog, integration? Based on the model proposed by Ian Barbour on science and Christianity, the author presents a way to teach the origin issue in church. The author emphasizes humility and tentativeness as Christian virtues in dealing with issues of science and Christianity.


I. 들어가며
II. 과학과 신앙/성경의 관계로 본 창조론
1. 바버의 네 가지 모델
(1) 갈등 모델
(2) 독립 모델
(3) 대화 모델
(4) 통합 모델
2. 창세기 1장에 대한 다양한 창조론의 입장
(1)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모두 거부
(2) 우주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수용 /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거부
(3)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모두 수용
III. 교회에서 과학과 신앙/성경의 관계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1. 과학에 대한 가르침
2. 올바른 성경 해석을 가르침
3. 학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IV. 나가며
참고문헌


I. 들어가며

최근 과학계는 중력파를 검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중력파는 1916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6-1955)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기반으로 처음 예측하였다. 하지만 중력파는 관측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이후 100년 동안 직접적으로 검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 2월 12일, LIGO에서는 중력파의 검출에 성공하였다. 천체로부터 날아오는 전파를 관측하는 전파망원경이 개발된 이후, 전파천문학의 시대가 열렸듯이 과학계에서는 앞으로는 ‘중력파 관측 망원경’에 의한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우주의 기원, 초기 우주의 특성, 별의 생성과 진화 등 그 동안 풀리지 않았던 많은 우주의 비밀들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안에서는 중력파 검출로 인해 우주의 기원의 문제를 놓고 다시 한 번 논쟁이 점화되었다. 근본주의적 신학과 배경, 해석을 지향하는, 한국창조과학회와 같은 단체 등에서는 여전히 성경 창세기 1장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근거하여 우주의 기원, 지구의 연대 등에 있어서 과학적 연구, 이론, 발견 등을 무시한 입장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노력과 발견이 하나님의 문화명령에 따른 학자들의 성실한 연구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발전된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고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부여 받은 그리스인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또한 기독교 안에도 신학적 견해, 과학에 대한 이해 등에 따라 다양한 창조론의 입장이 존재하지만, 근본주의자들의 공격적인 주장이나 대중 강연 등을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입장이 마치 한국 교회의 대다수의 의견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문제이다.

이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 특히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과 신앙의 괴리에서 오는 차이와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또는 그 반대로 많은 청소년들은 과학과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관심이 없어 창조주 하나님의 경이로움과 그로 시작하는 신앙의 풍요로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사역 현장의 경험을 통해 교회라는 또 하나의 교육 현장 안에서 과학과 신앙/성경 사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반성, 나아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학업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르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먼저 과학과 신앙/성경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본 뒤, 창세기 1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창조론의 입장을 소개하고, 이를 교회 교육에 있어서 과학과 신앙/성경의 관계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며, 가르쳐야 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II. 과학과 신앙의 관계로 본 창조론

과학에 대해서 오늘의 기독교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학적 지식을 모든 객관적 지식의 표준으로 인정하여 그 기준에 따라 성경의 권위를 상대화거나, 과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하거나, 과학적 지식과 성경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므로 상호불간섭, 공존할 수 있다고 보거나 과학적 지식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을 통해 과학을 증명하려 한다. 이 장에서는 먼저 바버(Ian Graeme Barbour, 1923-2013)가 제시한 과학과 신앙의 네 가지 관계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창조론 안에 나타나는 다양한 견해들을 소개하려 한다.

1. 바버의 네 가지 모델

(1) 갈등 모델

이 모델은 과학과 신학의 관계는 서로 대립적이며 배척하여 갈등을 일으킨다고 보는 입장이다. 중세 시대까지는 신학의 한 분과로 연구되어 왔던 과학이 점점 신학의 권위를 위협하게 되고, 기존 교회는 과학에 대해 종교 재판이라는 명목으로 경고를 하게 되면서, 그 이후부터 과학은 수시로 신학과 갈등 관계를 보여 왔다. 과학은 점점 더 절대화되어 가장 신뢰할만한 지식과 진리를 얻게 되는 유일한 방법으로 믿는 “과학주의”와 “실증주의”를 낳게 되었고, 과학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실체가 아니므로 결국 신학이 전제하는 신적 존재까지도 의심하게 되었다. 이 모델의 대표적인 예가 과학적 물질주의와 성경적 문자주의, 즉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유물론적 진화론 간의 충돌(창조-진화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2) 독립 모델

이 모델은 과학과 신학은 “삶의 다른 영역 혹은 실재의 다른 양상”을 다루고 있으므로 갈등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학과 신학은 다른 영역을 다루는 각각 독립된 학문으로 과학은 자연 현상, 즉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실에 대한 탐구인 반면, 신학은 초자연적이고 초경험적 현상들 및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다루기에 갈등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두 학문은 서로 갈등이나 모순된 관계가 아니라 각기 별개의 분야라는 것이다. 즉 과학은 ‘어떻게(how)’에 관한 학문이라면 신학은 ‘왜(why)’에 관한 탐구이므로 양자는 대립하거나 갈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자인 굴드(Stephen Jay Gould)는 “과학은 경험의 영역 즉 우주의 구성과 작동방식을 다루는 사실과 이론의 영역인 반면, 종교는 궁극적 의미와 도덕적 가치를 다룬다”고 말한다. 이 입장을 따르면 갈등은 피할 수 있겠으나 신학과 과학 사이의 건설적인 대화는 어려워진다.

(3) 대화 모델

이 모델은 과학과 신학은 서로 이해관계가 중복됨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둘은 방법론적 유사성을 매개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보이지 않는 대상을 해석적으로 개념화 할 때는 유추, 은유, 모델의 도움이 필요하며 과학과 신학 모두 이러한 도구를 사용한다. 또한 이 둘은 근본적인 전제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매개로도 대화가 가능하고 본다. ‘우주는 왜 질서 정연하게 존재하며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과학은 답할 수 없지만 우주의 본질적 특성에 관한 질문이기에 관심을 가진다. 이는 신학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주제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놓고 과학과 신학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학적 진리들을 계속해서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비추어 보면서 재고하는 동시에 과학 이론도 그 전제가 되는 철학적, 신학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신학은 상호 연구를 자극하고 격려하는 동시에 자체적인 영역을 훼손하거나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4) 통합 모델

이 모델은 과학과 신학은 궁극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보는 이론이다. 바버는 이 모델에서 자연신학, 자연의 신학, 체계적 종합을 예로 들고 있다. 자연신학은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근거를 자연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로서,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신학의 전제인 신의 존재근거에 도달하려는 것을 말한다. 자연의 신학은 신학의 주된 기원들과 과학은 바깥에 있으나 과학적 이론에 기초해 자연과 관련한 신학적 내용, 창조나 인간에 관한 신학적 교리들을 재해석하거나 변형한다. 체계적 종합은 과학과 종교가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종합된 세계관을 형성하여, 과학과 종교를 포괄하는 일관성 있는 세계관의 수립을 의미한다. 미국의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는 과학이 실재의 한 차원을 말한다면 철학은 과학이 추상화하는 실재 전체를 다루며 신학은 이러한 전체 실체의 도덕적이고 종교적 차원 즉, 신과 세상 및 인간과의 관계를 다룬다고 본다. 따라서 과학과 신학이 다루는 대상, 주제 및 방법도 다르다고 보면서 양자 모두 그 영역 안에서 진리이며 상호 모순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창세기 1장에 대한 다양한 창조론의 입장

앞서 우리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과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여러 모델들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다양한 창조론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특히 창세기 1장과 관련하여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과학적 지식을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기독교 창조론 안에 서로 다른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세 가지만 다룬다.

(1)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모두 거부

이 모델의 대표적인 예로서 근본주의적 신학자들과 창조과학회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든 과학적 주장을 거부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문자적으로 주장한다. 특히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참된 과학은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고 성경을 과학의 교과서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는 약 1만 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젊은지구론을 이야기 하며, 우주 팽창이나 오래된 지구 암석과 같은 과학적 증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하루를 현재와 같은 24시간으로 보고, 6일 즉 144시간 내에서 지질학적 격변이 일어났다고 보며, 노아 시대의 대홍수로 인해 오늘날의 지구의 대부분의 지층과 화석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인류와 지구와 우주는 약 6천 년 전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2) 우주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수용 /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거부

이 입장은 우주의 기원에 관해서는 현대 우주론 분야의 연구 결과, 우주 나이, 지구 나이, 대폭발 우주론 등을 수용하지만, 생명의 기원에 관한 화학진화론은 작업가설로서 과학적 검증이 부족하여 거부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예로 밴쿠버 기독교세계관 대학원(VIEW)의 양승훈 교수의 다중격변 창조론을 들 수 있다. 다중격변설은 현재 지구의 모습이 과거 지구 내부 원인, 외적 원인에 의해서 일어난 수많은 격변들, 즉 대형 운석 충돌, 전 세계적인 화산폭발, 지진, 해일, 대륙이동, 빙하기, 대규모 홍수나 산사태 등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중격변설은 현대 지질학에서 절대 연대를 측정하는 표준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은 방사능 연대측정법이나, 현대 천문학에서 관측하고 있는 먼 우주(deep space)의 존재,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대규모 운석공 등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며, 이 외에도 다른 모든 생물들의 화석은 풍부하게 발견되는데 왜 인류의 경우는 화석이 아니라 유골만이 출토되는지, 왜 석유와 석탄이 같은 지역에서 생산될 수 있는지, 어떻게 단단한 현무암이 그렇게 깊은 수로로 침식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깊으면서 여러 지층들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그랜드 캐니언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 왜 130억 광년 이상 떨어진 은하들이 지금도 관측되는지 등등을 설명하기에 수월하다.

(3)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지식 모두 수용

이 입장을 바버의 모델로 구분하면, 과학과 신앙/성경의 대화 혹은 통합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델에 해당하는 창조론 입장은 유신적 진화론이라 할 수 있다. 유신적 진화론은 화학진화(무기물로부터 생명의 자연발생)와 생물진화(아메바에서 시작해서 사람까지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진화라는 방법을 통해 생명체를 만드셨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창조주가 최초의 진화를 일으키는 물질과 생명, 종의 진화를 일으키는 법칙을 만들었고, 자연 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따라 생물 종이 생겨났다고 믿는다.
 
 
III. 교회에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현대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모든 것은 과학으로 검증이 되어야 믿게 되는, 이성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시대 속에서 한국 교회는 근본주의 신학과 문자주의적인 성경 해석으로 인해 과학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극단적이고 근본적인 신앙을 강조하여 더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도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이 나누어질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학적 견해, 과학에 대하는 입장에 따라 다양한 창조론이 존재한다. 필자는 목회자로서, 청소년 사역자로서 이 모든 것을 성도들에게, 청소년들에게 폭넓게 가르치고, 그들이 자신의 신앙에 따라, 각자 연구하고 고민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서는 교회라는 교육 현장에서 과학과 신앙/성경의 관계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1. 과학에 대한 가르침

갈릴레오는 우리에게는 두 권의 성경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는 책이라고 하였다. 베이컨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 자연과 우주를 하나님의 솜씨를 기록한 책으로 보았다.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이므로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 또한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되므로, 과학 연구도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과학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 연구에 대한 기독교적 기초는 자연을 연구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창조적인 능력이 있는 것은 인간이 그것을 감지하든 못하든, 인정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인간의 활동도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두 가지 명령과 관련하여 이해를 해보려고 한다. 첫째는 문화명령 즉 창조명령(창1:28)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땅에 잠재된 것을 개발하도록 부르셨고,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르셨다. 땅을 다스린다는 말은 곧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섬기는 것을 의미하며, 지킨다는 것은 인간이 책임 있는 청지기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기능을 완수하도록 돕는다는 것을 내포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를 인간에게 위임하셔서 모든 피조물들이 유익을 얻도록 하셨다.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 속에서 자연을 이용해 문명을 이룰 수 있다. 과학기술은 소위 문화명령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도구이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바벨탑을 쌓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문명을 건설할 수도 있다. 어떤 문명을 건설할지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고, 문화명령을 위임 받은 우리들은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선한 청지기 사명을 위임 받은 우리는 자연세계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피조세계를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인간의 손에 맡기셨다. 자연을 맡은 청지기로서 인간은 자연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환경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오늘날 자연을 맡은 청지기로서의 기독교인의 책무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자연을 보살피는데 꼭 필요한 지식과 수단을 제공해 줄 것이다.

둘째는 인간에게 주신 대위임령(마22:39)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과학 기술은 인간에게 편리하고 좋은 길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예속시키기도 하며 악한 동기가 결부되어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과학 교육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성경적 사랑을 반영하도록 구조화될 필요가 있다. 가르치는 내용은 사실과 지식 지향적인 것을 넘어서서 실천적인 것으로 나아가야 하며 주제와 관련된 사회적 상황에서 과학 지식으로 이웃을 섬기는 방향으로 사용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솜씨를 반영한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그분 자신을 계시하고 계시며 인간은 주변세계를 탐구함으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 자연 안에 새겨진 그분의 놀라운 계획과 솜씨를 배우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의 사랑을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대 명령에 순종하고 또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통해 경외심과 이해와 통찰을 얻는다. 양승훈 교수는 과학과 영성의 관계와 관련하여 기독교적 과학관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째, 과학적 연구의 대상인 물리적 세계를 하나님의 피조물로 본다. 자연은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관리책임을 위임 받은 창조주의 피조물이다.

둘째, 과학적 연구는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적 소명이다. 이 청지기적 소명 때문에 과학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목회나 선교가 그러한 것처럼 과학 연구를 성직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

셋째, 과학적 연구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 가지적 혹은 비가시적인 방법으로 이웃 사랑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의학을 발전시킨다든지 사람들의 건강을 연구하는 것, 품종개량 연구를 통해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 등은 연구가 직접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과학적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과학 연구의 재능이 더 있는 사람이 있고 덜 있는 사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 때문이다. 본능에 따라 자연에 순응하는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인 창의성을 발휘하여 피조세계를 연구, 관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과학과 기술을 우상화 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 때문에 이를 우상화 할 가능성도 있다.

한 가지 과학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주의할 것이 있다. 과학적인 활동, 과학을 한다는 것은, 진리를 발견하는 활동이다. 진리 발견이 과학의 궁극 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해 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과학적 사실을 진술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 교수와 교사들이 가져야 태도는 잠정적이어야 한다. 과학은 언젠가 그것을 뛰어넘는 이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연구를 통해 안 것을 지나치게 과장해서도 안 된다. 이런 태도는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배양될 수 있다. 우리는 과학의 목적이 진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하는 데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탐구심과 더불어 겸손, 주의, 신중함, 한계 등의 ‘지적 덕목’(epistemic virtue)을 제대로 배양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세 가지 견해들이 전부 유익한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어느 견해를 따르느냐는 각자가 신학의 입장과 신앙에 따라 판단,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 견해를 선택한 후에는 다른 기독교적 견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의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과학에 대한 견해는 다르더라도 진지하고 성실한 지적 대화를 가져야 한다.

양승훈 교수도 “다중격변모델이 동일과정설이나 대홍수설에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자료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모든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므로 우리들이 최선을 다해 연구해도 알 수 없는 문제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우리는 겸손하게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임이 마땅하다.”고 권면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첫째, 과학 교육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연구하는 한 분야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하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감각과 이성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능력임을 깨닫고 그러한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셋째, 탐구 방법으로서의 과학의 한계를 알려주어야 한다. 이는 곧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의미한다. 넷째,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자연 현상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확신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다섯째, 과학에 의해 세상을 탐구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동시에 겸손한 자세를 갖도록 해야 한다.

2. 올바른 성경 해석을 가르침

교회 교육에 있어서 과학에 대한 바른 가르침과 더불어 바른 성경 해석에 대하여 가르쳐야 한다. 바른 성경 해석이 왜 중요한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위튼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왈튼(John H. Walton)은 성경 해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성경 자체의 권위와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건방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누구도 오류가 없는 해석자가 아니므로, 우리는 항상 새로운 정보의 조명 안에서 우리의 해석을 재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해석이 성경적 권위의 자리에 있게 하면 안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잘못 제시할 위험에 빠지면 안 된다. 만약 이성이 실패하는 곳에서 우리의 신앙이 믿기를 요구한다면 기꺼이 이성을 묶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믿음 안에서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배우는 것이 성경 해석을 재고하는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성경의 내재적 권위나 본질에 질문하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성경 구절은 성경 전체의 맥락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경의 원 저자가 그 당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영원한 타당성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면서도 역사적 특수성을 가진 사람의 글이다. 성경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지만, 일차적으로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 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신약 교회에 주어진 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지키고 가장 참된 의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본문이 어떤 종류의 글인지를 연구하고, 다양한 수사법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에 의하면, 창세기는 언제, 어떻게 창조가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기록이라기보다 누가, 왜 창조하였는지에 관한 기록이라고 본다. 이는 창세기를 해석함에 있어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갈등이 있을 때에는 먼저, 그 성경 구절을 우리가 올바로 이해했는지, 또한 과학의 주장이 과연 절대적인지를 물어보아야 하고, 과학의 주장이 의심할 수 없이 참이라면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성경 해석도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수 있고 과학의 주장도 잘못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은 거짓이라는 성급한 결론은 위험하다.

그리스도인은 과학을 대할 때 ‘언제, 어떻게’의 부차적인 문제에 대한 과학과 신학의 갈등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과학의 발견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떠올려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과학이 설명하는 영역에서 설 자리를 잃는 ‘틈새의 신’이 아니고, 자연 법칙이 성립하도록 붙드셔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끝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사색을 통해 신학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어질 수 있다. 오늘날 신학에서는 자연이 사라졌다.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한 분이라면 신학은 어떤 형태로든지 자연을 품어야 할 것이다.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할 때 신학은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더 깊은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생명과 물질과 정신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한다고 느껴질수록, 과학을 앞세운 유물론적 담론이 거세게 밀려올수록 신학은 과학과 의 소통에 힘써야 할 것이다.

3. 학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교회 교육 현장에서 올바른 성경 해석을 통한 바른 신앙을 갖도록 지도하고, 과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 책임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은 성도들, 특히 청소년, 청년들에게 넓은 의미에서 “학문”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갖게 한다. 양승훈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첫째, 학문 활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문화명령(창1:28)의 일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를 잘 다르시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피조세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둘째, 학문 활동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예배의 한 형태이다. 학문 활동뿐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때(고전 10:31) 그것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학문활동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학문 연구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인간의 복리를 위해 사용되거나 비가시적으로 인간에게 유익을 끼치거나 모두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명령(눅 10:27)을 순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학문 활동은 하나님을 아는 한 방편이다. 만물에는 우리가 핑계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다(롬1:19-20).

결국, 그리스도인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며, 학문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자연이나 논리 세계에 체계와 질서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공부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 인간에게 새겨진 하나님 형상의 반영이라고 한다면(창1:26-27)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IV. 나가며

과학과 신학은 분명히 다른 학문이다. 왜냐하면 그 연구하는 대상과 주제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피조세계에 담겨 있는 법칙들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신학은 이러한 피조세계가 존재할 수 있게 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과학과 신학은 모두 하나의 학문이므로 논리적,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지식을 도출한다는 학문적 방법에 있어서 또한 학문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상호 연결점이 있다. 따라서 과학과 신학은 서로 대화가 가능하며 각 학문의 결과는 상충될 수도 있지만 상호 보완될 수도 있다.

또한 과학과 신학은 학문으로서 그 궁극적인 방향이 모두 하나님 나라를 향해 있다. 기독교세계관으로 보면 과학과 신학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이웃을 섬기는 목적으로 계속해서 책임의식과 청지기 의식을 가진 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이든 신학이든 계속해서 겸손히, 그리고 열린 자세로 탐구하며 대화하는 동시에 진리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학문과 신앙 그리고 삶 전체가 일관성 있게 통합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교육의 또 다른 현장인 교회에서 과학과 신앙/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 교사의 역할은 매우 크다. 특히 배움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학업의 선배, 신앙의 선배로서 적절한 가르침과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공공교육에서 다루는 학업, 전공으로 선택한 학문에 있어서 그것이 어떤 목적과 의미가 있는지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 교사들은 먼저 모든 학업, 학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질서가 인간의 죄로 인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런 왜곡된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이 일에 동참해야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청년, 더 나아가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지성과 감성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고, 그 진리에 자신을 헌신하도록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 교육의 현장이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 교회 안에 많이 일어나 이 세상에 하나님의 참된 진리가 가득히 선포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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