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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4 22:41
후성유전학 혁명, 진화론의 재부상인가? 창조의 새로운 지평인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052  
영역: 과학/기술

카워드: 유전학, 후성유전학, 신다윈주의, 라마르크.

 

 

후성유전학 혁명, 진화론의 재부상인가? 창조의 새로운 지평인가?

The Epigenetics Revolution, is it a resurgence of evolutionary theory, or a new horizon in the creation

 

 

박춘호

Choon-Ho PARK

 

㈜ 미슬바이오텍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대 창업보육센터 210호

Mistle Biotech

E-Mail: mypeace@postech.ac.kr

 

 

(Received on February 15, 2017,

Accepted on February 20, 2017)

 

 

Epigenetics is the study of potentially heritable changes in gene expression without any variations in its DNA sequence. These trans-generational epigenetic phenomena found in biological systems are reminiscent of ‘inheritance of acquired characteristic’ originally proposed by Lamarck in early 19th century. Actually, it has been found that phenotypes are changed by the epigenetic principles in various organisms without changing the genetic information. Thus, some evolutionists began to question the premise that genes are the major driving force of evolution. From a creationist point of view, epigenetics is a deliberately designed process for manifesting various traits in response to external environmental changes.

 

I. 라마르크 진화론의 부활?

II. 생물학의 새로운 혁명 : 후성유전학 시대의 도래

III. 후성유전학과 변화하는 진화론

IV. 후성유전학적 현상에 대한 창조론적 조망

V. 유전자 중심 세계관에서 통합적 세계관으로

 

 

I. 라마르크 진화론의 부활?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Jean-Baptiste de Lamarck)는 다윈이 태어난 해였던 1809년에 그의 책<동물철학>을 통하여 화석과 살아있는 종의 형태를 비교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물이 변화하는 방식을 제안하였던 진화론의 선구자 중 한사람 이었다. 그가 제시한 이론의 핵심은 용불용설(use and disuse)과 획득형질의 유전(inheritance of acquired characteristics)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용불용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동물의 신체는 퇴화하는 반면에 많이 사용하는 신체부분은 커지고 강해진다는 생각으로 잘 알려진 대로 라마르크는 기린의 목을 예로 들어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가뭄이라는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높은 나무의 나뭇잎 까지 목을 뻗치기 위한 기린의 행동 때문이라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획득된 형질이 기린의 자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기린의 긴 근육질 목은 오랜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한 것이라고 그는 추론하였다. 하지만 이후 유전학 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생물개체가 일생동안 사용을 통해 획득된 형질들은 라마르크가 제시한 방식대로 후대에게 유전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결국 라마르크는 다양한 환경에 따른 생물의 적응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하고자 하였지만 진화가 일어나는 방식에 관하여 잘못된 설명을 제시했던 학자로 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라마르크가 <동물철학>을 펴낸 지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생물학과 진화론에서 새로운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에 의한 진화이론을 폐기시켰던 유전학과 분자생물학 분야에서의 새로운 발견들이 도리어 라마르크의 진화론적 사고를 다시 부활시키고 있는데 바로 한 세대에서 특이적으로 나타난 형질이 세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태동하면서 부터이다. 후성유전학의 발견에 따르면 DNA 염기서열에 저장된 유전정보가 변하지 않고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어떤 세대에서 새롭게 나타난 형질이 몇 세대에 걸쳐서 대를 이어 유전될 수 있다.

 

생물의 형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접하게 되는 다양한 환경에 대한 반응과 경험 및 행동을 통하여 달라지는 유전자의 작동양상에 의해 변화되며 다시 후손에게 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례들이 후성유전학 연구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유전자의 변이에 대한 자연선택만이 진화를 일으키는 유일한 기작이라는 생각에 회의를 품는 진화론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유전학의 연구의 외연적 확장을 통해 얻어진 후성유전학의 새로운 지식들은 이제 여러 진화론자들로 하여금 라마르크가 생각하였던 진화의 방식이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 아니었으며 진화론의 확장 발전을 위하여 도입이 필요한 개념으로 재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본고에서는 후성유전학이 가져온 생명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 이와 함께 후성유전학적 사고들이 현대 진화론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인 신다윈주의(Neo-Darwinism) 진화론에 미치고 있는 중대한 변화와 그 의미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더불어서 후성유전학 혁명이 가져온 진화론 내부에서의 새로운 변화의 기류들을 창조론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II. 생물학의 새로운 혁명 : 후성유전학 시대의 도래

 

인간은 몸을 이루는 수십조개의 세포들은 모든 같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세포는 신경세포로서 기능하고, 어떤 세포는 근육세포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여왕벌과 일벌이 형태와 기능이 차이나는 것은 그들의 유전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벌레 시절 공급된 먹이에 따라서 전혀 다른 개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부모로부터 동일한 유전정보를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를 경우 전혀 다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두 개체의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어떤 방식으로 비교하였을 때 서로 동일하지 않다면 그것은 후성유전학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유전적 요인이 아닌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성유전학은 모든 생명활동의 근간이 되는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염기서열에 변화가 없이 어떻게 생물의 형질이 바뀔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후성유전학의 영어표현인 ‘epigenetics’에서 접두어 'epi'는 '~에 더하여'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는데 이처럼 많은 생명 현상들은 기존의 유전학 지식과 더불어 후생유전학 현상을 더하여야만 제대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약해보면 DNA의 유전정보만으로 생명의 복잡성을 모두 설명할 수 없으며 생명체가 처한 환경, 먹는 음식. 경험 등의 다양한 유전자 외적 요소들이 이미 주어진 유전자의 스위치를 껴 거나 끄는 방식을 변화시켜 형질의 발현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이렇게 변형된 형질이 세대를 넘어 자식에게까지 전달되는 현상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후성유전학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들 중에서 후성유전학의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치에 의해 봉쇄되었던 네덜란드에서 기근을 겪은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건강과 성장 과정을 추적한 연구에서 나왔다. 과학자들은 네덜란드 대기근 시기에 임신 중이었던 어머니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대상으로 영양의 부족이 아이들의 체중과 건강상태에 미친 효과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임신 초기에 어머니가 영양공급을 잘 받다가 임신 마지막 몇 달 동안 어머니가 대기근으로 굶주렸던 경우 아기는 작게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임신하고 나서 처음 석 달 동안 굶주리다가 그 후에는 영양 공급을 잘 받았던 어머니로 부터는 대개 정상 체중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런데 학자들이 이 때 태어난 아기들을 수십 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정말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출생 시에 몸무게가 작았던 아기는 평생 동안 몸집이 작은 상태를 유지했으며 전체 인구에 비해 비만율이 더 낮았던 것이다. 예상외의 또 다른 결과는 임신 초기 석 달 동안만 굶주렸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 정상체중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평균보다 비만율이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 태어날 당시에는 건강해보였지만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초기에 일어난 사건들이 수십 년 후의 삶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대기근을 겪은 임신부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장한 뒤 결혼해 낳은 자식에까지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들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되었다. 이 연구는 환경 변화에 따른 경험이 우리의 유전자가 아닌 다른 곳에 흔적을 남기고 대물림되는 후성유전학적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후성유전학 연구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질병과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십 년 전 과학계는 인간의 염색체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한 개인이 일생동안 겪을 가능성이 있는 질병을 미리 예측할 뿐만 아니라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치료하여 인류의 오랜 꿈인 무병장수의 시대가 머지않은 장래에 도래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2001년 사람의 전체 유전정보의 초안이 완성되고 획기적인 염기서열 해독 기술의 개발로 한 사람의 유전정보를 100달러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분석하는 서비스의 실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현재에도 원래의 장밋빛 전망과 다른 의견을 갖는 학자들이 많다. 이는 인류가 겪는 난치성 질병들의 상당수가 유전학적인 요인이 아닌 후성유전학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므로 유전학적인 접근법으로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 한 사람에서만 특정 질병이 발병하게 될 경우 두 사람의 후성유전체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후성유전학적인 변화와 질병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후성유전학자들은 암이나 성인병, 퇴행성 질환과 같은 인류의 건강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질병들을 후성유전학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들 질병들의 후성유전학적 특성을 파악하여 치료하고자 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후생유전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분자생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후성유전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분자기작들을 연구해 오고 있는데 한 예로 유전자 정보의 변화 없이도 유전자의 화학적 구조를 이루는 DNA가 역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DNA의 특정 영역에는 작은 화학적 기(基)가 들러붙을 수 있고, 또한 어떤 특별한 단백질은 DNA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DNA 분자구조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 기반을 이루는 유전암호 자체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학적 기를 DNA나 관련 단백질에 첨가하거나 거기에서 떼어내면 그 부근에 있는 유전자들의 발현이 변화하며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일어나면 세포 모양과 형태, 기능 등의 본질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식으로 유전암호의 정보는 변하지 않고도 외부의 자극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세포에서는 후성유전학적인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후성유전학 시대에도 여전히 유전자의 본체인 DNA가 생명 청사진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DNA만으로는 경이롭고도 오묘한 생명의 복잡성을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은 이제 생물학자들에게 보편적인 인식이 되었다. 이러한 생명현상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의 변화는 진화생물학자들이 진화의 분자기작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로 유전자만으로 진화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III. 후성유전학과 변화하는 진화론



현대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생물의 표현형의 변화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유전자 돌연변이는 DNA의 염기서열에 불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킴으로서 후세대에게 안정적으로 전달되고 그 결과 변화된 표현형은 지속된다. 따라서 현대진화론의 근본 신조는 오직 유전적인 변이만이 진화를 초래하며 유전자 변이 없이는 진화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1930-40년대에 진화론자들은 다윈의 시대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변이의 기작들을 멘델유전학과 초파리 집단 유전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설명하게 됨으로서 오늘날 진화론의 패러다임인'신다윈주의(Neo-Darwinism) 혹은 ‘현대 종합이론(modern synthesis)’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 후 신다윈주의로 대표되는 유전자 중심적(gene-centered) 사고는 오늘날까지 진화론의 중심사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근래의 다양한 후성유전학 연구결과들은 유전자형의 변화가 없이도 특정한 형질이 발현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여러 세대에 걸쳐 전달됨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기존의 유전자의 기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후성유전학적 현상들도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진화론자들은 유전자를 읽는 방식을 바꿈으로서 생물체의 형태와 기능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데 ‘왜 유전자만을 진화의 중심이자 근본동인이라고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지로 유전자 발현의 차이만으로도 생물체의 형태와 기능적 특성이 바뀌는 현상은 다양한 생물체에게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최근에 워싱턴 주립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스키너(Michael Skinner)는 적응과 진화의 예로 널리 소개되어 진화론의 중요한 상징이 되어 있는 갈라파고스 핀치새들에 대한 흥미로운 후생유전학적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는 다양한 부리모양을 가지는 핀치새들의 적혈구를 얻어 이들의 유전정보의 차이와 더불어서 후성유전학적인 표식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흥미롭게도 서로 다른 부리모양을 가진 다섯 종류의 핀치새들 사이에서는 유전자의 차이보다는 그들의 후성유전학적 차이가 훨씬 더 광범위하게 발견되었으며 계통적으로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진 핀치새들 사이에는 이들의 후성유전학적 차이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새의 부리의 깊이와 넓이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단백질을 암호 하는 유전자에 대한 후성유전학적 표시들에서 차이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다양한 부리의 모양을 가진 핀치새 간의 형태적 차이는 유전적 변이보다는 오히려 후성유전학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났을 것으로 추론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진화론자들로 하여금 진화는 유전자의 변화만이 아니라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재의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전자는 주변 환경에 의해 쉽게 변화하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안정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체의 유전정보는 대사 중에 발생하는 활성산소(reactive oxygen species), 외부환경으로부터 가해지는 이온화 방사선(ionizing radiation) 같은 다양한 DNA 손상인자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지만 세포내에는 이러한 내부 및 외부의 인자에 의해 발생하는 DNA 손상을 복구하고 유전정보의 안정성(genomic stability)을 유지하는 고도의 정밀한 조절 기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유전자 변이의 발생 빈도는 매우 낮으며 이러한 변이들이 자연선택을 통해 형태적 및 기능적 변화를 수반하는 진화를 일으키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명체는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의 적응이 필요한데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여주는 것이 후성유전학적 현상들이라고 설명한다. 후성유전학적 현상은 가역적이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가 지속적이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 반면 환경의 변화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생명체는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비가역적인 유전자변이를 일으켜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진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진화론자들은 세우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의 진화론에서는 기존의 신다윈주의의 관점과는 달리 유전자를 생명을 변화를 이끄는 주도적 요인이 아니라 변화를 따라가는 하나의 구성요소로 본다. 즉 유전자는 진화를 이끄는 주체가 아니라 진화를 따라가는 존재이며 유전자의 변화에 의해 생물체가 변화는 것은 진화가 일어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후성유전학의 발견이 진화생물학자들로 하여금 유전자가 생물학적 운명과 진화를 결정짓는다는 신다윈주의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IV. 후성유전학적 현상에 대한 창조론적 조망

 

전술한 대로 후성유전학은 유전자의 화학적 구성단위인 DNA 염기서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환경에 반응하는 유전자가 발현이 달라져서 형질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러한 유전자의 발현 변화의 양상이 다음 세대로도 전달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명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평가해 본다면 후성유전학은 무엇보다도 생명체 안에 환경에 대한 놀라운 적응능력과 다양한 표현형의 발현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유전정보를 밝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된 결과 약 30억 개의 염기쌍을 가진 인간 유전체에는 대략 25,000개의 유전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수는 유전자가 인간의 다양한 형질을 결정하는 우선적인 요인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예상 밖으로 매우 적은 수였다. 생물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유전자의 정보가 계속 변화하고 증가하여야 한다는 것이 유전자 중심적 진화론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후성유전학의 현상을 통해 살펴보면 생명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반드시 유전자의 변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후성유전학의 기작을 이용하여 유전자의 발현 양상을 바꿈으로서 적응도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명체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유전자 정보의 양보다 유전자의 정보들을 상황에 맞게 다양하고 조화롭게 해석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후성유전학은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생명체가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유전정보의 발현이 주어진 유전자만을 가지고도 후성유전학의 기작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후성유전학은 창조된 유전체의 정보만으로도 종 내에서의 다양한 변이, 즉 소진화(microevolution)가 가능하다는 것을 분자수준에서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핀치에 대한 후성유전학 연구는 유전정보의 변화 없이도 핀치 부리의 다양한 형태가 후성유전학적인 방법으로 생겨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새의 부리의 두께와 깊이를 조절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환경에 따라 그 단백질이 발현되는 정도를 후성유전학적으로 변화시킴으로서 변이와 소진화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보다 많은 생물에서 종 내에서의 다양한 변이에 대한 후성유전학적 연구가 수행된다면 소진화의 후성유전학적 원리가 보다 명확히 규명되어 질 것으로 기대된다.



 

V. 유전자 중심 세계관에서 통합적 세계관으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의 유전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후성유전학의 발전은 환경과 생명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풍성히 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유전자 중심의 진화론에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전술한대로 후성유전학적 원리들은 생명현상의 주인으로서의 유전자의 역할이 너무 과장되고 있다는 인식을 일으키고 있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DNA의 유전정보를 하드디스크, 후성유전현상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비유로 DNA의 유전정보를 테이프라고 한다면 후성유전현상은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레이어(후성유전)가 없는 테이프(DNA)는 아무 쓸모가 없다. 결국 후성유전학은 유전자만이 생명현상의 중심에서 진화를 일으키는 근본적 동인이요 주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신다윈주의적 세계관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에 다윈과 멘델이 진화와 유전의 화두를 열었다고 한다면, 20세기에 들어서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발견한 후에 진화론자들은 구체적으로 진화와 유전이 작동하는 방식을 기능적으로 설명하였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후성유전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출현하여 지금까지 도그마로 간주되어온 생명현상에 대한 단순한 설명들을 무너뜨리고 훨씬 더 다양하면서도 정교한 방식으로 생명의 청사진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후성유전학의 시대에는 생명현상에 대한 유전자 중심의 환원론적 관점을 넘어서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이 조화롭게 고려된 보다 통합적인 관점의 생명관을 절실히 요구한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후성유전학은 분자수준에서 감추어져 있었던 창조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서서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