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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19 22:06
헨리 M. 모리스의 종말론을 중심으로 본 창조과학과 종말론(2)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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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M. 모리스의 종말론을 중심으로 본 창조과학과 종말론(2) 


IV. 모리스의 영향을 받은 자들의 종말론

 

1. 케네스 A. 햄

 

창조과학을 대중에 소개하고 활성화 시킨 것은 모리스였다. 그의 책은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그의 대중강연을 통한 창조에 대한 성경과 과학의 논의는 ‘창조과학’이라는 표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하고는 이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창조과학 운동이 미국 바깥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첫 번째 나라는 호주였다. 1973년 모리스가 호주를 방문하여 창조과학을 소개함으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때에 고등학교 과학교사였던 케네스 A. 햄(Kenneth A. Ham, 1951-)과 의사였던 칼 위랜드(Carl Wieland, 1950-)에 의해 창조과학재단(Creation Science Foundation)이 설립되고 창조과학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햄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젊은 지구연대에 대한 견해를 물려받게 되었고, 대학에서 환경 생물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대학에서 모리스의 <창세기 대홍수>를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고, 모리스의 호주 방문을 계기로 창조과학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창세기의 해답(Answers in Genesis)이란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국내에도 몇 권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폴 테일러(Paul S. Taylor)와 함께 공저한 <창조와 진화, 신앙 대 신념>은 창조와 종말에 대한 그의 이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창조주간의 하루에 대한 해석에서 다소 표현이 모호하지만 문자적 해석을 따라 24시간의 6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창조에 대한 해석은 믿음과 선택이었다. 창조론 진영 안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햄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는 과학이 창조가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해도 성경의 근거가 가장 최고에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해석도 최종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생각했다. 그는 성경을 제외하고는 모든 증거들이 과학자들의 편견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편견을 만든 것은 진화론이라고 결론짓는다.

 

햄이 생각하는 진화론은 성경에 대립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진화론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무정부 상태로 빠지기 쉽다고 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우연이라는 방식을 선택하면 사회적 혼란과 무정부 상태 또는 공산주의로 변질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성경에서 사사시대에 사람들이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곳과 같다고도 한다.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의 소견이라고 할 수 있는 우연의 법칙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었으며, 결국 무정부 상태와 같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사회가 부도덕하고 심각한 문제들로 변한 이유는 인간을 진화의 산물로 본 진화론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로마서 1장이나 고린도후서 10장에 나오는 죄악들이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문제라고 보았다. 햄은 진화론을 인본주의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며 진화론은 현대에 나타나는 심각한 죄의 원인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는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의 생각의 근간에는 우연의 산물을 믿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성을 의존하고, 쾌락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인본주의 세계관은 진화론적 철학과 함께하며 더욱 하나님을 배척하고, 비도덕적 행위를 하게 된다고 한다.

 

햄의 종말론은 어떤가? 그는 종말에 있을 낙원에 대해 본래적 낙원으로의 회복이라고 한다. 그는 이 세상의 처음은 완벽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계속해서 타락하고 퇴보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말세가 되면 적자생존의 진화론적 원칙이 지배하는 가장 퇴보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에 의한 원상회복이야말로 바른 신학적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진화론의 발달로 인해 미래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현대 사회는 점차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결과들을 예측하게 되는데 이는 죄악된 세상의 원인이라기보다 진화론 교육이 그렇게 사회를 파괴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그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사회적 죄악뿐만 아니라, 영적 죄악이 커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진화론을 사단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는 현대에 사단이 진화론으로 교회에 침투하여 다음 세대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과학 교육이 계시록의 종말 때에 있을 뱀의 행동과 같다는 것이다. 햄의 이런 생각은 종말론적 세대주의 해석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할 린제이

 

다음은 모리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창조과학 운동과 종말론에 영향을 준 할 린제이(Hal Lindsey, 1929-)에 대해 살펴보자. 그의 책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 1970)은 한국에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가장 잘 설명한 책으로 소개되었다. 특히 한국창조과학회를 설립한 김영길 박사(1939-)가 그의 책을 읽고 회심을 하였다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책이었다. 린제이의 책은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성경해석에 근거해 있는데 휴거, 7년 대환란, 천년왕국 등 성경에 대해 문자적인 해석을 기본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는 자신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전천년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댈러스 신학교 출신으로 그 곳에서 세대주의 성경신학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댈러스신학교를 졸업한 린제이는 역사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 본성의 악함으로 인해 사회와 국가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부터 한 세대, 40년이 될 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었다. 그러나 그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가졌지만 미국 정치에 있어서는 우파적 정치 이념을 지지하였다. 모리스가 진화론을 공산주의에 대입하였던 것과 같이 린제이는 자기 스스로 우파에서 활동함으로 종말론이 정치적 이념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미국이 소련과 냉전기 동안 자국의 번영과 자유를 위해 강한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신학으로는 임박한 종말론을 이야기하면서, 실제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개혁을 외쳤다.

 

3. 한국창조과학회

 

한국창조과학회는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창조냐 진화냐”란 시리즈 세미나를 계기로 태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강사들 중에는 당시 미국창조연구소(ICR)의 소장 헨리 모리스, 부소장 듀앤 기쉬(Duane T. Gish, 1921-2013) 등이 있었다. 당시 KAIST 재료공학과 교수였던 김영길 박사도 통역자로, 강사로 참석하였다. 세미나 후 유일하게 국내 강사로 참석한 김영길을 중심으로 국내 학자들이 한국창조과학회 설립에 힘을 합하였다. 조덕영 박사에 의하면 이 때 시리즈 세미나에 참석한 상당수의 강사가 미국창조연구소의 핵심 멤버들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창조과학회는 시작부터 미국의 창조과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했다.

 

조덕영은 당시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적인 성향이 한국창조과학회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이유는 신학에 무지한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성경해석이나 적용에 문자적이고도 세대주의적인 해석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영길은 자신의 자서전적 책 <갈대상자>에서 자신의 회심에 큰 영향을 준 책이 발로 <대유성 지구의 종말>이었다고 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깨닫고 믿어지지 않던 것이 그 책을 읽으며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은 당시 교회가 가지는 근본주의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처음 도입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신학적 무지와 편향된 사고로 인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 내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논의는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된 이래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젊은 지구연대와 노아 홍수의 단일격변설은 한국 교회에서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교회 내에서는 창조과학이 말하는 문자주의적 해석을 적극 지지하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교회에서 강의와 후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기독 학자들 가운데 젊은 지구연대에 대한 입장의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 한국교회 내에서는 문자주의적 창조론을 지켜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창조과학회의 문자적 성경해석이나 젊은 지구론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연 것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인 양승훈 교수였다. 그 역시 처음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창조과학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많은 강연과 저술활동을 했지만 성경과 과학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면서 점점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양승훈은 자신의 학문적 변화에 대해 창조과학의 핵심적 주장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지구연대와 단일격변설에서만 돌아선 것이 아니라, 성경 해석에 대한 입장의 변화였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진화론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염려한다. 그러나 진화론을 과학적 상대로서가 아닌 이데올로기적 반응으로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염려하고 주의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는 진화론적 세계관이 가지는 유토피아가 창조론적 세계관이 갖는 하나님 나라와는 분명 다르다고 지적한다. 진화론이 가지는 메커니즘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모리스나 세대주의적 창조론자들이 주장한 것과 같이 진화론의 어떤 사건들을 현대의 사건과 대입함으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이나 진화를 위한 전쟁 또는 전염병의 확산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최근 한국교회 내에서는 유신진화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며 다시 창조과학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고 있다. 서울대 천문학과의 우종학 교수는 오랜 우주연대와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과학에 대한 입장에 대해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처음 한국교회 내에 창조과학이 소개될 때에는 지성인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점차 문자주의적 해석이 과학적 사실과 부딪히는 현상들에 대해 설명하지 못함으로 인해 수많은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젊은 학자들로 인해 창조과학에 대한 새로운 논의들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교회는 기존의 해석을 벗어난 학자들에 대해 진화론자, 무신론자, 공산주의자라는 비판한다.

 

그렇다면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젊은 지구연대와 단일격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한국창조과학회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아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명현 박사와 이재만의 창조와 종말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창조과학회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종말에 대한 입장을 거의 밝히고 있지 않다. 특히 이들 중에는 신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종말에 대한 성경신학적 입장을 가지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과 다른 나라의 경우와 같이 과학과 신학을 병행하여 연구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창조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종말론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재만의 성경 해석적 입장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는 성경 해석에 있어 일치주의(성경은 과학적으로도 정확하다는), 문자주의, 근본주의적 입장을 따른다. 그가 직접적으로 종말에 대한 해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대주의적 해석을 찾기는 어렵지만, 기본적 성경 해석 입장을 따른다면 세대주의적 성경해석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성경해석에는 문자주의적인 요소도 있지만, 신비주의적인 것도 있다. 그는 자신의 지도교수가 했던 질문을 인용하며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절 중에 한가운데 쓰인 구절이 시편 118편 8절로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걱정 말라는 약속으로 주신 기막힌 방법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재만 역시 진화론을 인본주의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진화론은 진화에 대한 과학 이론까지 포함한 것으로 과학 또한 인본주의적인 학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모리스의 전제와 비슷하다. 그가 말하는 인본주의는 무엇인가? 그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근원을 알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본주의와 진화론과 과학은 인간이 동물 중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진화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진화론과 진화 이론을 구별하지 않는다. 진화 이론에서 말하는 과학적 접근법, 그 이론들을 이야기 하다가도 갑자기 진화는 사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진화 사상은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화론을 대할 때 신앙적 접근을 해야 하고, 믿음을 선택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한국 교회 내에서는 이재만 보다 김명현 박사가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KAIS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동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한국창조과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역사과학교육원(Scientific History Education)을 설립하여 창조론 강의와 동영상 보급을 하고 있다. 그의 창조론에 대한 13편의 동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한국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해졌으며 창조과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학술적인 글이나 논문 등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과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찾아보기가 힘들고, 특히 종말론에 대한 과학적, 성경적 입장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동영상을 중심으로 살펴본 김명현의 과학적 입장은 성경이 과학책은 아니지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분하여 신념적 주장과 세계관적 확신으로서 과학주의를 경계한다. 그는 과학의 한계성에 대해 인식해야 하고, 그 한계성이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과학으로 창조를 설명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의 동영상에서 그는 성경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한계성을 말하며 창조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버린다. 그러나 동영상 11번 ‘창세기 1장 1절의 비밀’에서는 수학으로 창조가 완전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가 기록될 당시의 사람들에게 숫자의 상징적 의미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하며 그 숫자의 상징성을 가지고 창조의 놀라운 비밀을 말한다.

 

김명현은 기본적으로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있어서 이편 저편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능하다는 것과 한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수학적 상징까지 사용하여 창조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설명은 청중으로 하여금 깜짝 놀란 반응을 통해 창조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입장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창조를 과학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믿음의 대상으로만 강의한다. 그 이유는 창조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찰과 연구, 증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13편의 동영상에서 과학의 방법론, 수학, 한자, 성경을 방대하게 인용한다. 그의 논리는 청중으로 하여금 창조에 대한 깜짝 놀란 반응을 기대하는 정도이지,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창조를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과학적 방법론이 이렇기 때문에 우주적 종말에 대한 과학적, 성경적 입장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창조론자들의 종말론에서 중요한 본문인 베드로후서 3장의 ‘기롱하는 자들’은 진화론자들이라고 일축하고 넘어가 버린다. 말세에 진화론자들이 노아 홍수에 대한 전지구적 사건이었음을 부정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해석을 한다. 그것은 모리스의 해석과 동일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더 이상의 해석은 없다.

 

한국 교회 내에서 종말론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서도 종말과 관련된 성경 해석 또는 과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거의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오로지 창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매달린 나머지 창조에서 구속까지의 성경 전체의 이야기에서 담아야할 중요한 한 부분인 종말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다. 이것은 우주적 종말에 대한 해석학적 연구가 부진하기도 했지만 창조과학 연구자들이 가진 지나친 폐쇄적인 학문성 때문이기도 하다. 문자적 해석과 세대주의적 해석의 한계로 인해 종말에 대한 성경적 해석에 있어서도 임박한 우주적 종말을 상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V. 창조과학자들의 종말론에 대한 평가

 

지금까지 모리스를 중심으로, 젊은 지구연대와 노아 홍수의 단일격변을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의 종말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주장 안에는 성경 해석의 문제,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공통된 입장이 있었다.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는다.

 

첫째, 창조과학은 성경해석에 있어 근본주의적이며, 세대주의적이어서 ‘유사종교’의 특성을 가진다. 창조과학의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 학자들은 창조에 대한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해석에 거의 맞춰져 왔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근본주의가 가진 반계몽적이며 반지성적, 반문화적인 특징에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이었다.

 

근본주의란 20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기 위해 복음주의 안에서 생겨난 용어이다. 특히 성경해석에 있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기 위해서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과 문자주의 해석에 집중하게 되었다. 존 스토트는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답하다>(Essentials: A Liberal-Evangelical Dialogue)에서 근본주의자들의 사고방식들을 소개한다. 그 중 성경의 기계적인 영감설,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 전천년설적 종말론 등은 근본주의자들과 젊은 지구연대를 주장하는 자들의 생각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근본주의가 가진 문자적 해석은 세대주의자들의 해석과도 연결된다. 특히 많은 종말론적 이단들이 종말에 대해 가진 문자적이고 세대주의적인 해석이 젊은 지구연대 창조론자들에게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모리스 자신은 부인하지만 그의 성경 해석이 안식교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리스의 성경 해석은 그에게 영향을 받은 젊은 지구연대 창조론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근본주의적이며, 세대주의적인 성경 해석은 창조과학자들이 내놓은 종말에 대한 성경적, 과학적 해석에서 유사종교와 동일한 특징을 나타난다. 하지만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은 그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명시적으로 채택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주요 창조과학 지도자들이 과학자들이어서 신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종말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둘째, 근본주의가 가진 특성으로 인해 세계관에 있어서 폐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존 스토트의 분석과 같이 그들은 학문과 과학에 대해 전체적인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 함축된 사회적인 의미들을 부인하며, 문화적인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과학과 학문을 진화의 산물로 본다는 점이다. 이들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해서 해석하는데, 또한 그것은 문자주의적 성경해석과 맞물려 세대주의 종말론을 더욱 가중시켰다.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시작하였고, 그 이론은 사회주의 사상에 강력한 근간이 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는 단순히 과학적 견해의 충돌이 아니라, 사상과 이념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의 논쟁이 된다고 본다. 젊은 지구연대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은 일반적인 지식과 학문을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산물로 본다. 그래서 지식과 학문을 통한 인간 세상의 진보는 진화를 근거로 삼는다고 생각한다. 즉, 지식의 축적과 과학 기술의 발달 그 자체를 성경의 진리와 신앙의 유지에 대한 위험 요소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창조과학자들은 창조에 대한 논쟁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창조과학자들의 지식관은 종말론 분야에서도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도 어렵다. 이것은 창조와 종말에 대한 성경 해석의 근본주의적 성향이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다른 견해와의 대화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창조과학자들, 즉 젊은 지구론자들은 과학이든 성경해석이든 다른 견해를 가진 자들과의 대화에서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

 

셋째, 창조과학은 반지성적, 반과학적 폐쇄성으로 인해 유사과학의 형태를 띤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논의는 과학적 설명과 논의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학문의 현장에서 기초 과학의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그들의 주장들에 대해 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양승훈은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1994)의 말을 빌려 이를 ‘유사 과학적(pseudo-scientific)’이라고 한다. 이는 우주연대에 대한 과학적 논쟁을 이념적, 신앙적, 영적 이슈로 확장하여 논쟁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양승훈은 그 이유로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자들 가운데 실제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임을 든다. 실제로 공학이나 응용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창조의 과학적 논의에 대한 기초과학적 지식의 부재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종말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창조과학의 영역에서는 과학적 논의 자체를 부정하고, 활동이 부재하기 때문에 종말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필자가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확인해 봐도 종말에 대한 과학적 논문은 전무할 뿐 아니라, 성경 해석이나 일반적 해석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미래에 일어날 종말은 과거에 일어난 창조보다 더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계에서는 우주의 종말, 지구의 종말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마크 해리스는 그의 책에서 물리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는 우주의 종말에 대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우주의 대수축을 예상하는 닫힌 우주와 끝없이 팽창할 것이라 보는 열린 우주, 팽창과 중력의 값이 같아질 평행한 우주이다. 마찬가지로 그에 맞는 생명에 대한 과학적 예상들도 하고 있다. 이런 논의는 성경으로 그 증거를 뒷받침 할 수 없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과 비교해서 예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학술적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면 종말에 대한 기독교인 학자들의 역할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직 창조와 종말에 대한 신앙고백적인 입장만 있을 뿐이고, 그 고백도 전투적이고 세대주의적인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VI. 결론

 

지금까지 창조론자들 중에 모리스를 중심으로 그들이 가진 성경과 과학의 관계, 창조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대해 살핌으로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종말론에 영향을 주었고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창조과학의 진원지가 되었던 안식교는 1대 교주 윌리엄 밀러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이것은 모리스나 그 외 창조과학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이들은 창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종말도 문자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신실한 믿음의 행위라고 여겼다. 창조과학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감으로 근본주의적인 성경해석과 함께 맞물려 성경을 수호하는 신앙의 보루라고 여겼다. 창조신앙을 지키는 것이 진화론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지키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창조를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수호라고 생각했으며, 진화를 반대하도록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창조론과 종말론은 분리되어 이해되어 왔다. 창조론에 있어서는 모리스의 관점을 따른 한국창조과학회의 주장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젊은 지구연대와 노아 홍수의 단일격변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창조과학자들은 그것이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더 확실히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이 종말론을 다루지 않는다. 그 이유는 먼저 그들이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한국에서 출간된 창조과학 서적들도 대부분 기존의 창조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과학과 관련된 것들이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경해석과 종말론을 다루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적으로 우주의 종말에 대해서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성경적으로든 과학적으로든 한국의 창조론자들은 종말에 대해 다루지 않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 내에서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이 종말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세대주의 종말론을 취해왔던 모리스 계열의 해석들이 한국교회 내에서는 종말론적 이단들의 성경해석과 맞물리며 쉽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를 지나며 한국교회 내에서도 시한부 종말론이 급부상하였다. 앞에서 소개한 <대유성 지구의 종말>은 한국 사회의 혼란 속에서 당장이라도 휴거와 심판이 일어날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교회는 종말론에 대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해석과 같이 문자주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해석으로 인해 종말론을 다루게 될 때 창조과학까지 이단시비에 휩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를 반대하는 진영, 특히 젊은 지구연대의 반대편에 대한 인식은 모리스의 해석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리스가 진화에 대한 염려 속에 모든 반대 이론들을 진화론으로 매도했던 것과 같이 한국창조과학회는 메카니즘으로 진화의 모든 것을 거부한다. 이런 드러나지 않은 입장이 근래 SFC에서 우종학 교수를 초청한 간사들에 대한 징계에서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석하는 진영을 진화론으로 간주하고, 진화론의 근거가 된 공산주의로까지 넘겨짚어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서 볼 수 있듯 한국교회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논의는 과학을 중심으로만 다루는 것 같지만, 이념적이고 세계관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필자는 창조론에 대한 논쟁의 시작이 잘못된 종말론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자주의 성경 해석의 도움을 받은 것인데, 임박한 종말을 가르치는 자들이 성경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종말관을 전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런 해석 방법이 창조에 대한 해석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현재의 젊은 지구연대와 노아홍수의 단일격변이 생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종말론이 바뀌었다면 창조에 대한 해석도 바뀌었을까? 최소한 종말에 대한 성경 해석을 문자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창조에 대한 인식은 달랐을 것이고, 세상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을 것이다.

 

세계관은 한 사람의 삶의 구조와 방향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바뀌게 된다. 그래서 월터스는 세계관을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 가지는 근본적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 진영 안에서도 성경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계관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성경 해석은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마지막 때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 땅은 없어져야 할 곳이고, 성도는 구원받고 저 멀리 천국을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 땅과 저 하늘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것이고, 선과 악의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땅에 대해서는 대립적 관계로 생각하며 심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계시록은 교회 공동체가 취해야 할 자세가 대립적 자세가 아니라 천상적 존재로 변혁을 이루는 정복자의 자세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단순히 예수님이 하늘로 가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종말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하였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에덴 동산이 회복되고 더 발전되는 곳이다.

 

이런 면에서 종말에 대한 바른 인식은 올바른 창조관을 갖게 하고, 그것은 다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당장에 임할 심판으로 인해 없어질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회복될 세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된다. 다시 창조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이때에 창조와 종말에 대한 열린 과학적, 성경적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과연 창조를 연구하는 것이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지, 창조론이 우리의 종말론적 삶의 근거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다시 한 번 상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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