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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19 22:02
헨리 M. 모리스의 종말론을 중심으로 본 창조과학과 종말론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428  
영역: 신학/성경
키워드: 헨리 모리스, 세대주의 종말론, 안식교


헨리 M. 모리스의 종말론을 중심으로 본 창조과학과 종말론
Creation Science and Eschatology with the Emphasis of H.M. Morris’ View


김준석
Junseog KIM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E-Mail: palmtree76@gmail.com


(Received on February 3, 2017,
Revised and Accepted on March 1, 2017)


This essay tries to trace the eschatological positions of creation scientists. In particular, the author focuses on Henry M. Morris, the father of modern creation science. In the first part, the author surveys some major figures who influenced on Morris’ eschatology. Three of them were the early Seventh-Day Adventists(SDA) leaders, including William Miller, Ellen G. White and George M. Price. The essay shows that Morris’ dispensational pre-millenialism was heavily influenced from them. In the second part, the author investigates the biblical and scientific aspects of Morris’ eschatology. In fact, Morris’ eschatology is not much deviated from that of early SDA leaders. And finally, the author checks into the eschatology of the second generation of creation scientists. They were also in the same orientation as Morris’ eschatology. But most of creation science leaders in Korea do not show any explicit evidence for dispensational pre-millenialism even though Young Gil Kim was converted from reading the book by Hal Lindsey, strong supporter of pre-millenialism. It seems that major leaders of creation scientists in Korea were not much interested in theological arguments.


I. 서론
II. 모리스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
1. 윌리엄 밀러
2. 엘렌 G. 화이트
3. 조지 맥크레디 프라이스
4. 스코필드 관주성경
III. 헨리 모리스
1. 모리스의 배경
2. 모리스의 성경해석 방법론
3. 모리스의 성경적 종말론
4. 모리스의 과학적 종말론
5. 모리스의 종말론의 특징
IV. 모리스의 영향을 받은 자들의 종말론
1. 케네스 A. 햄
2. 할 린제이
3. 한국창조과학회
V. 창조과학자들의 종말론에 대한 평가
VI. 결론
참고문헌


I. 서론

오늘날 기독교세계관 연구에서는 창조, 타락, 구속의 세 기둥 중에서 창조에 대한 관심을 다시 기울이고 있다. 창조에 대한 관심은 구속의 완성으로서 창조의 회복을 말하는데, 타락 이전의 창조 세계는 전적으로 명백히 선하다는 것에 기인한다. 알버트 월터스(Albert M. Wolters)는 타락을 구조가 아닌 방향의 왜곡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구속은 새로운 것의 출현이 아닌 원래 창조의 선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은 구속사적 종말을 사는 삶이다. 그래서 종말을 내다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상태의 창조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고, 창조와 종말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창조와 종말의 관계는 과학에서도 동일하게 밀접하다. 과학은 주로 현재를 관찰함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관찰에는 기원에 대한 문제를 제외할 수 없고, 창조에 대한 우주적 기원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창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위해 창조론자들 내에서도 신학적, 과학적 연구들이 되고 있다. 창조와 종말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창조에 대한 연구는 우주적 종말에 대한 예측을 하게 하기 때문에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창조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우리의 종말론적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살피는 것으로, 창조론자들의 종말론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한국창조과학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헨리 M.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를 중점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리스가 공학도로서 어떻게 창조신앙에 대한 성경 해석적 관점을 갖게 되었는지와 그의 영향이 어떻게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살필 것이다. 특히 그가 가진 성경 해석 관점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그 영향이 과학적 학문 방법에도 상당한 관계가 있음을 살필 것이다. 이는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또한 어떤 종말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창조에 대한 과학적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연관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말론적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모리스의 창조론과 종말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신학의 형성 과정을 살펴야 한다. 그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로서 구약학자인 존 C. 휘트컴(John C. Whitcomb, Jr.)과 함께 출간한 <창세기 대홍수>에서 과학적 설명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책을 출간하며 그가 가지게 된 성경 신학적 입장은 과학자로의 견해를 넘어 성경 신학자로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비록 그 책에서 자신의 역할이 과학적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는 이 후 출간하는 책들을 통해 과학자로서 입장 보다는 신학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책들에는 <창세기 대홍수>의 해석학적 내용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보면 그가 휘트컴의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성경 해석에는 중요한 영향을 준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이후 안식교)이다.

모리스가 어떻게 안식교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그의 성경 해석과 안식교의 성경 해석이 어떻게 유사한지를 살펴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모리스가 가진 종말론을 해석하는데 자주 사용하는 본문의 특징을 살핌으로 그의 종말론적 신학이 어떻게 안식교의 해석과 유사한지, 세대주의 해석을 따르는지를 살필 것이다. 특정 본문에 있어 그의 해석적 특징이 갖는 세대주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해석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핌으로, 그것이 그 이후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특히 젊은 지구 연대를 주장하는 자들의 관점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살필 것이다.

모리스의 창조와 종말에 대한 성경 해석과 과학적 관점은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창조에 대한 과학적 주장이 그대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은 모리스는 종말론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한국 교회 안에서 젊은 지구 연대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의 종말론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스의 성경 해석에 있어 창조와 종말을 동시에 다루는 본문들에 대해 한국의 창조론자들 중에도 해석을 내놓고 있는 자들이 있다. 더불어 조금이나마 종말에 대한 성경적 또는 과학적 입장을 내고 있는 학자들의 특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최근의 한국 교회 내에서 창조론과 관련된 여러 사건에서 그것을 정치적 해석으로까지 확대하여 번지게 된 배경에 창조과학의 논쟁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다.


II. 모리스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

1. 윌리엄 밀러

현대 창조과학의 기초를 놓은 것은 안식교이다. 안식교의 창립자인 엘렌 G.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15)가 계시를 받았다는 내용인 노아의 홍수와 지질학의 관계를 연결지으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화이트 또한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이다. 그러니까 창조과학의 뿌리는 안식교이고, 안식교의 뿌리는 시한부 종말론의 창시자 밀러인 셈이다.

밀러는 침례교 출신의 가정에서 자랐다. 기독교 가정의 신앙 교육을 받아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는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독학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다니엘 8장 14절의 “이천삼백 주야”를 해석함에 있어 그 날의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언의 때로부터 2,300년이 지나는 1844년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시한부 종말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방법과 임박한 종말에 대한 교리는 화이트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2. 엘렌 G. 화이트

안식교의 창시자 화이트는 1827년 감리교회에 속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화이트가 신앙적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1840년 밀러의 집회에 참석하면서이다. 그녀는 밀러의 예언이 정확했고, 청중들의 마음에 확신을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밀러의 임박한 종말에 대한 경고의 설교를 듣고 깊은 회심을 하게 된다. 이 후 그녀는 밀러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하지만 1844년 밀러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불발로 끝나자, 그녀는 자신이 계시를 받았음을 자처하며 밀러의 계승자가 된다. 그녀는 첫 환상을 통해 임박한 재림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1847년 4월 3일 화이트는 하늘 성소에 관한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 성소에서 법궤와 십계명을 보았는데, 그 중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이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안식교는 제 칠일을 안식일로 규정하여 지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 교리에서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지켜야함을 교리로 삼게 되었고, 창조 주간의 ‘하루’에 대해서도 24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구의 창조 연대에 대해 젊은 지구연대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당시에 지질학자들이 모세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오랜 연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지질학은 성경을 떠나 어떤 증명도 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그녀는 과학이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잘못 사용하여 저줏거리로 만든다고 하였다. 그래서 기존의 지질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영감과 해석 아래 다시 복종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이 영감 받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통해 지구는 육 천년의 짧은 연대를 통해 창조되었고, 단 한 번의 대홍수를 통해 지금과 같은 지구의 지층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종말에 관한 화이트의 예언은 밀러가 예언한 1844년 10월에 그대로 멈추어 있다. 단,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부연설명을 덧붙임으로 지금은 심판이 진행 중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1844년에 대한 예언에 대해 다니엘 8장 14절에 대한 분명한 문자적 해석을 믿고 확신하고 있다. 그녀는 평생 이 천 번 정도의 계시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계시들을 통해 자신의 생애에 반드시 재림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고, 임박한 종말에 대한 삶을 강조하였다.

3. 조지 맥크레디 프라이스

화이트의 이런 주장은 안식교 신자였던 조지 맥크레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지지를 받게 된다. <창조론자들>의 저자 로널드 L. 넘버스(Ronald L. Numbers)는 프라이스가 어떻게 안식교의 창조 교리에 있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게 됐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원래 그는 캐나다 어느 지방의 고등학교 과학 교사였다. 그런데 과학 교사로 접하게 되는 진화론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진화는 단지 이론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고뇌와 기도 끝에 안식교의 교리에서 창조와 노아의 홍수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그는 오랜 연구를 통해 진화론적 지질학에 대한 비판을 담은 <신지질학>(The New Geology)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 책의 내용은 화이트가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했던 내용과 동일함을 알 수 있는데, 창세기는 문자적으로 해석해야하고 그렇게 해석할 때 6일 창조와 노아 홍수가 전지구적이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오늘날 젊은 지구 연대를 이야기하는 진영의 해석과 동일하다.

프라이스는 당시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많은 부분 지질학에 근거한 것을 염두에 두고 지질학적 반박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다. 그러던 중 노아의 홍수야말로 당시 진화론이 주장하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진화의 증거로 사용되는 화석들이 노아의 홍수 때에 모두 생성된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노아 홍수로만 지질학이 설명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화이트의 영감을 뒷받침하는 해석을 제시하게 되었고, 이 후 안식교는 창조과학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프라이스가 진화를 반박했던 또 다른 이유는 진화가 과학적으로도 건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넘버스에 의하면 그는 진화가 철학적이고도 도덕적으로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낳고,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화가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그래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다윈의 진화론을 사용해 무자비한 윤리적 행위를 했다고 봤다. 그리고 프라이스는 진화가 성경적 종말론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봤다. 창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듯이 종말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성경의 첫 장들에 대해 기록된 역사를 믿지 못한다면, 성경의 마지막 장들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난 부분이 베드로후서 3:3-7절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이다. 그는 이 본문에서 “말세”에 대한 해석을 할때, 본문이 노아의 홍수와 연결되어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때에도 그와 유사한 실제적 사건들이 있게 될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는 노아의 때와 같은 실제적 사건들에 대해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과학적 상황에 대한 묘사이다”라고 해석했다. 이것은 과학의 종말론적 타락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진화를 주장하는 과학이 건전하지 못하다고 말한 부분을 가리킨다. 그는 안식교를 변호하지 않는다고 했지만그는 지구의 종말에 대해 안식교의 해석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과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통한 창조와 종말에 대한 해석은 그의 배경과 사상이 안식교 종말론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종말론의 특징은 세대주의적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4. 스코필드 관주성경

창조과학의 종말론의 근거가 된 세대주의는 19세기 아일랜드 성공회 목사 다비(J.N. Darby)에 의해 구체화되고, 스코필드(C.I. Scofield)가 역사를 인간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구성된 일곱 세대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스코필드관주성경(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에 삽입하여 출판함으로 널리퍼졌다. 칼빈주의 신학자이자 칼빈신학교 교수였던 후크마(Anthony Andrew Hoekema, 1913-1988)는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의 축어적 영감설과 무오성을 받아들이고, 간절한 미래적 심판과 재림을 소망하는 것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성경해석에 있어 구약과 신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미래의 연속적인 사건에 직접적으로 대입하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의 성경해석은 종말론에만 국한되지 않고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데 영향을 준다. 특히 창조의 세대(이들은 무죄세대라고 하는데)를 해석하는 데에도 동일한 해석 방법을 적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대주의 종말론이 가진 성경 해석의 특징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창조를 설명하는 과정에도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세대주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이들의 문자적 해석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철저히 구분 짓는 데 적용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은 신약 교회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두 번째 재림 후 천년왕국을 통해 온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세대주의자들은 전천년설을 신봉하고, 환난 이전의 교회의 휴거를 믿는다. 모리스도 동일한 종말론적 관점을 가졌다. 이러한 성경 해석은 성경 역사를 크게 일곱 세대로 나누는 두번째 특징을 갖게 한다.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각 세대는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인간을 다스리신다. 각 세대는 분리되어 있어서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분리해서 이해를 한다. 각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다른 방식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다른 방식의 역사적인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셋째, 세대의 구분은 그 관심이 남은 세대인 환난과 천년왕국의 세대에만 집중되어 있다. 전천년론적 성경해석은 현재와 과거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 세상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될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썩어 없어질 것이라는 물질관을 가지고 있다. 침례교 신학자인 스탠리 그렌츠(Stanley J. Grenz, 1950-2005)는 세대주의 신학은 현재 질서와 하나님 나라 사이의 불연속성 또는 더 나아가서 모순을 강조하며 신성한 미래를 악한 현재와 대비하여 부각시킨다고 했다. 역사에 대한 불연속성은 현재에 대한 비관적 인식을 가져오는데, 이는 잘못된 미래에 대한 종말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넷째, 이들의 성경해석이 문자적이라는 것에서 계시록의 예언은 휴거와 환난 등 급진적인 종말에 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의 종말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분리하여 현실을 등한시하고 환상적인 미래의 이상에만 몰두하도록 한다. 이들의 종말론에서 나타나듯 종말에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세대주의의 핵심 이론인 세대 구분은 스코필드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가 구분한 세대의 기준은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가 제시한 구약의 연대를 계산하는 방법에서 창조의 시점을 밝힌 것과 연관이 있다. 윤철민은 어셔의 구약 연대기가 스코필드관주성경을 통해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는 사실이 젊은 지구 창조론과 세대주의가 밀월의 관계를 가졌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세대주의는 무죄시대에 이뤄진 인간의 심판과 지금의 심판은 분명히 다르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창조에 대한 해석을 그 시대의 것으로만 분리하여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우주의 역사로 보기보다는 짧은 지구의 역사로 보는 것이 세대를 구분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젊은 지구 연대에 대한 주장은 세대주의의 세대를 구분하기 위한 유리한 구도 속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III. 헨리 모리스

1. 모리스의 배경

창조에 대한 과학적 논의를 시작한 것이 프라이스라면, 이것을 하나의 운동으로 이끈 사람은 헨리 모리스였다. 그가 1974년 크리스천 고등학교의 교사들을 위해 발행한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은 창조과학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이 되었고, 그가 세운 창조과학연구소(ICR, Institue for Creation Research)는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모리스는 프라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라이스처럼 이단적 교리에 기초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창조가 문자 그대로 6일에 걸쳐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과학적 지식과 상충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개인적인 연구와 관심을 통해 창조와 홍수의 문자적 해석이라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그 때 그의 연구에 프라이스의 책은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모리스가 젊은 지구 연대의 대표적인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홍수에 대한 프라이스의 책 <신지질학>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그는 창조에 대해 6일의 문자적 ‘날’을 받아들이고, 전지구적인 노아홍수의 단일격변을 받아들였다. 성경의 무오함을 믿고 있던 그는 창조 이야기에 대해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을 믿는 정도가 아니라, 성경이 어떤 과학적 오류를 담고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모리스가 프라이스와 가까운 관계였다는 것은 서로가 진화 과학자들이 창조과학에 대해 가진 편견으로 인해 힘들 때마다 주고받은 편지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리스는 프라이스의 안식교 배경 때문에 점차 그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홍수지질학을 연구할수록 홍수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라이스와 관계로 인해 오해의 소지가 많아지자 자신의 책에서 프라이스에 대한 부분을 삭제하기도 하였다.

그에게 영향을 준 또 한 사람은 존 C. 휘트컴이다.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 근무할 당시 미국  복음주의 과학자들의 모임인 ASA(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모임에서 처음 휘트컴을 만났다. 두 사람은 함께 <창세기 대홍수>를 집필하게 되는데, 이 책은 원래 휘트컴이 구약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것에 모리스가 과학적 근거를 덧붙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휘트컴의 논문에서 시작했지만 모리스의 방대한 작업으로 인해 그 책은 모리스가 제 1 저자가 되었다. 그가 휘트컴과 함께 저작한 <창세기 대홍수>는 이 후 창조과학 진영의 중심적인 책이 되었다. 이 책은 당시 지질학의 동일과정설에 대해 휘트컴의 신학적 비판과 모리스의 과학적 비판을 담고 있었다. 저술 과정에서 모리스의 과학적 기술은 성경 해석학적 연구를 통해 휘트컴에 비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에는 여전히 프라이스와 안식교의 영향을 받아 인용한 부분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안식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통 기독교 내에서 과학적 논증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점차 거리를 두게 되고, 인용 부분들을 많이 삭제하였다.

2. 모리스의 성경해석 방법론

모리스가 가지는 성경 해석의 관점은 무엇인가? 그의 책 <창세기 대홍수>에서 그는 성경의 축자적 무오성에 대한 믿음을 확신했다. 이것은 성경 기록의 권위, 무오성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오류가 없다고 믿는 무류성을 말한다. 그는 하나님이 성경과 자연의 두 계시를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면서도, 성경은 오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도 성경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모리스는 홍수지질학과 관련하여 프라이스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성경 해석에 있어서는 안식교 교리를 수용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의 성경 해석이 근본주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복음주의자 버나드 램(Bernard Ramm)이 1954년 출간한 <과학과 성경의 대화>를 읽고 크게 반감을 가진 것에서 볼 수 있다. 램이 자연의 증거와 성경의 이해에 있어 좀 더 유연한 성경 접근을 제시 했을 때, 모리스는 자신의 책 옆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과학’ 또는 ‘과학자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 오직 반기독교적이고 진화론적인 과학 철학을 경멸할 뿐인데, 그런 것의 치우침은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야기한다.” 그는 램의 이런 접근에 대해 당장 비난을 하면서, 프라이스에게 편지를 보내 이 책으로 인해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많이 생길 것을 희망했다.

<창조의 본성>(The Nature of Creation)의 저자 마크 해리스(Mark Harris)는 창세기 1-3장에 대한 과학적 접근 방식에 따라 성경과 신학적 해석의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고 본다. 그는 모리스의 성경 해석이 창조의 과정을 문자 그대로 6일로 보는 견해인데 그가 문자적 해석에 대해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신앙고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모리스는 창조의 6일에 대해 성경의 계시가 묘사하고 있는 바가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할 문맥의 기초가 없기 때문에, 이 날들에 대한 이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적이고 이성적인 행위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해리스는 모리스의 문자적 해석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창조 본문이 단지 물리적인 것보다 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다양한 의미들을 분명하게 포함한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해리스는 모리스의 문자주의 해석에 있어 홍수 사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음도 지적했다. 성경에서 모리스가 홍수 기간에 있었던 지질학적, 기상학적 변화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모리스가 그것을 유추해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리스도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것에 있어 일치하지 않는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리스는 <창세기 대홍수>에서 성경은 신성하게 영감을 받은 무오류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수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하기 위해 생기는 간극에 있어서 그는 유추해서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성경 해석은 뒤로 갈수록 세대주의적 관점을 보이게 된다. 특히 그의 종말론적 해설서인 <재림과 휴거>에서는 계시록에 대한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해석이 주를 이룬다. 그가 어떻게 과학도에서 성경신학자로 바뀌게 되었는지와 그의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의 배경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3. 모리스의 성경적 종말론

모리스가 본격적으로 창조과학 활동을 하기 전에 그는 자신이 졸업한 라이스 대학(Ric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들을 위한 전도자로 활동했다. 그 때 그는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창조에 대한 사실을 <당신이 믿어야 할 것들>(That You Might Believe)이라는 책을 통해 제시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특별히 창조와 전지구적 홍수를 변증하였다. 그가 근거로 삼은 자료들은 주로 프라이스의 책이었고, 그의 영향 때문에 책의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하며 전천년설에 대한 증언으로 마쳤다.

하지만 모리스는 프라이스에게 과학적 영향은 받았지만 안식교 교리의 영향은 받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정한다. 그가 라이스를 떠나 미네소타 대학(University of Minnesota)에 있을 당시 자신의 대홍수 이론이 안식교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로렌스 컬프(Laurence Kulp)의 비판에 대해 자신은 안식교 영향 때문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적 해석이 분명히 6일 창조와 전지구적 홍수를 말한다고 반박했다. 모리스는 프라이스와의 관계로 인해 자신이 안식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비판에 대해 반복적으로 변명해야 했다. 그가 프라이스와 관계를 멀리하려고 했던 것은 안식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주장들 때문이었다. 창조에 대해서는 6일 창조와 전지구적 홍수를 지지하지만, 그 외의 성경 해석과 특히 종말론 교리에 있어서는 당시 복음주의 교회와의 관계로 인해 안식교 학자였던 프라이스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넘버스에 의하면 모리스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다고 말한다. 그가 연구를 위해 라이스를 떠나 이네소타 대학이 있는 미니애폴리스로 옮긴 후, 그곳에서 유명한 창조론자 아서 브라운(Arthur I. Brown)의 임박한 종말에 대한 설교를 듣고 자신도 과학을 떠나 목회 사역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창조과학에 뛰어들기 전이었지만 그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종말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1991년 <창조와 재림>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 책은 재림에 대한 성경과 계시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해설한 책이다.

<창조와 재림>은 21세기와 밀레니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기말적 사건들에 대해 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고 말한다. 뉴에이지 등장과 세계연합기구들은 분명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이고, 이런 세력들이 이제는 기독교 내부에까지 들어와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대한 예언으로 기록된 계시록을 해석함으로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세기말적 사건들이 창조와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창조 때에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이 세기말의 어떤 사건들을 통해 연결되어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와 종말의 때가 그렇게 멀지 않기 때문에 창조의 목적성이 종말의 어떤 사건들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모리스가 생각하는 재림에 대한 가장 중요한 표적은 진화론적 인본주의 철학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공산주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었고, 그로 인해 세계는 1,2차 대전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는 범신론적 이교사상과 연합되어 뉴에이지(New Age) 사상을 보급시켰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말세에 기독교 안에서도 진화론적 철학이 들어올 것이라고 봤다. 그는 베드로후서 3장 3절의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해석을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욕을 따르는 이유가 인간 중심적이고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진화론적 세계관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종말의 때에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제시한다. 다윈의 진화론적 세계관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으며, 또한 교회도 지배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전 세계에 만연한 도덕적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말세의 표적으로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딤후 3:1-7; 벧후 3:3-4). 진화론이 팽배 할수록, 말세의 현상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와 재림>에서 로마서 1장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여 도덕적 붕괴 현상 19가지를 증거로 제시하며 그 이유들을 설명한다. 그는 도덕적 붕괴의 원인이 진화론에 있다고 확신했다. 이 시대에 나타나는 탐욕의 증가가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오는 진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세 때에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도 “번영과 성공의 복음”으로 포장되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모리스는 현대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번영신학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화론이 주장한 진보와 번영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현상들이 인본주의적일지언정 인과적으로 진화론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 그런 현상이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 나타난 현상들이고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마지막 때에 사회적 불안정이 일어나는 원인도 사회적 다윈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회적 불안정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산업혁명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의 진보로 인해 발생한 산업혁명은 빈부 격차를 발생시켰고, 이는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촉발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야고보 5장 1-8절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봤다. 그는 본문이 말세에 있을 사회 경제적으로 불의한 자들이 많아지고 그로 인한 심판을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적 빈부 격차와 갈등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말세에는 서로 죽이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이 현대에 와서 산업혁명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산업혁명은 과학 기술의 진보는 가져왔지만 사회적 갈등은 더욱 커지게 했고, 결국 그로 인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게 됐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를 다윈과 그의 추종자들이 발전시킨 체제라고 인식했다.

이런 모리스의 주장은 구체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점에서 근래 우종학 교수를 수련회 강사로 초빙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교단 소속의 학생운동단체인 SFC 간사들을 좌파라고 인식하며 징계를 내린 사건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을 인정하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것은 다윈의 진화적 인본주의에 근간한 것이고 이는 공산주의로 발전하기 때문에 진화 이론을 이야기하는 학자의 강의를 듣게 하는 것조차 공산주의, 좌파와 연결하게 되는 것이다.

모리스적 성경관은 창조와 종말에 대해 그가 다루는 본문들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 <창조와 재림>에서 종말에 대한 전조들 속에 과학적 해석의 요소가 나타나는 핵심적인 본문을 5가지로 제시한다(벧후 3:3-7; 딤후 3:1-7; 약 5:1-8; 단 12:4; 눅 21:10-11).

(1) 베드로후서 3장 3-7절

모리스가 종말을 해석하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본문은 베드로후서 3장 3-7절이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개역개정, 벧후 3:3-7)”

이 본문에 대해 모리스는 말세에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생길 전세계적 격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말세에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동일과정설을 주장하는 진화론자들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동일과정설은 창조에도 하나님의 특별하고 짧은 간섭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종말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격변적인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는 균일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 사건에 대한 본문을 지적한다.

첫째는 5절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으로 세상의 창조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창조의 둘째 날과 셋째 날에 대한 것으로 모리스는 6절에 나오는 홍수의 심판의 배경이 5절의 땅과 물에 해당하는 전세계적 영역임을 베드로 사도가 미리 밝히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심판의 도구가 되는 물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도 밝히는 것이라 본다.

둘째는 6절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에서 베드로가 노아 홍수를 예로 든 것은 땅의 심판이 있었던 것과 같이 7절에 나오는 ‘멸망의 날’의 심판에 실제적인 하늘과 땅의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대해 모리스는 댈러스 신학교 구약 교수인 메릴 웅거(Merrill F. Unger)의 해석을 근거로 제시한다: “거짓된 자연주의 학설인 균일설에 반대하여, 사도는 노아의 홍수에 의하여 밝혀졌던 바와 같은 초자연적 격변설의 진리를 주장한다.”

모리스가 이 본문을 해석하는 기준은 노아 홍수가 전지구적 격변이었다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가 전지구적이 아니었다고 하는 자들은 3절에서 말하는 “기롱하는 자”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동일과정설을 주장하는 진화론자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모리스는 영국의 고생물학자인 머손 데이비스(L. Merson Davies)의 글을 인용하여 이들을 “지독한 편견”, “매우 독특한 철학”이라고 표현한다. 더 나아가 그는 3절에서 “기롱하는 자”들을 후반절에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자들이라고 해석한 것을 두고 이는 자기중심적인 인본주의가 확실하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변절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봤다. 그들이 진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비웃는 이유는 진화론을 신봉하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모리스는 진화론자들의 생각을 “처음에 초자연적인 창조가 없었으므로 말세에도 초자연적인 멸망이란 없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제2차 인본주의 선언>(1973)의 내용 중에서 “어떤 신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주장과 연결지어서 진화론자가 가진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가 예언한 내용이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명백히 성취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 세상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노아의 때와 같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5-6절에서 노아의 때에 세상이 멸망한 것을 무시한 현대의 세상은 이제 곧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심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는 누가복음 17장 26절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를 해석하며 세상 끝 날에도 동일한 전세계적 심판이 있음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전체적으로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과 관련하여 심판의 대상을 진화론적 인본주의라고 확증한다. 진화론에 기초한 철학이 교회 안에도 파고들었으며 이로 인해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도 점차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는 세상을 기대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모리스가 해석하는 “기롱하는 자들”을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라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한가? <개혁주의 종말론>의 저자 안토니 후크마(Anthony A. Hoekema)는 본문의 “기롱하는 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재림을 늦추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자들로 당시 초대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던 것을 비웃었던 것이다. 딕 루카스(Richard Lucas)는 <BST 시리즈, 베드로후서>에서 이들을 가리켜 “냉소적 회의주의자”라고 표현했다. 또한 IVP 주석은 베드로가 이들을 2장에 나오는 거짓 선생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 말이라고 본다. 이는 베드로후서 3장 3절에서 그들의 특징을 “정욕을 좇아 행하며”는 거짓 선생이라 불리는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J. 보컴(Richard J. Bauckham)도 이들에 대해 당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거짓 선생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복음주의 전통에서 기롱하는 자들이란 재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당시의 거짓 선생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과 재림이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판과 재림이 있지 않다는 것은 지금 자신들이 처한 로마의 통치 아래에서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는 의문에서 나온 생각들이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주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기롱하는 자들’에 대한 해석과 모리스가 이야기하는 진화론적 사고로 인해 인간의 진보를 주장하는 자들이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재림이 없다고 하는 주장은 다르다.

후크마는 7절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대해 그 위치는 확정할 수 없지만 현세대의 종말에 일어날 일로 본다. 여기서 “날”에 대한 이해에서는 긴 기간을 의미한다고 보지만 그 기간이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천년이라는 시간으로 묶어둘 수는 없다고 본다. 모리스가 그 심판의 날을 전천년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분명 기간의 차이가 있다. 모리스는 심판과 멸망에 대해 홍수 때와 같이 물질적 멸절과 심판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고신대학원의 유해무 교수는 이것을 ‘폐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늘이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물질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심판의 의미를 ‘갱신’으로 봐야하지 파괴를 뜻하는 ‘폐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완성에는 연속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리스가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없다고 하는 자들에 대해 과학에 대한 경고로 이해한 것에서 한국교회는 고민해야할 내용이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마치 우주가 영원하고, 인류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이 파괴될 때 사단은 교회의 목구멍을 바로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물질 만능주의의 시대에서 교회 안에도 스며든 이런 정신이 심판에 대해 무뎌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디모데후서 3장 1-7절

모리스는 디모데후서 3장 1-7절을 근거로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인해 전 세계는 도덕적 붕괴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개역개정, 딤후 3:1-7)”

모리스는 이 본문에서 바울이 본문을 통해 말세에 있을 자기중심적인 인본주의 철학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봤다. 특히 이 철학은 기독교 국가 안에서 대두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기독교 국가 내의 도덕적 붕괴가 발생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5절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를 그에 해당한 구절이라고 봤다. 구체적인 도덕적 붕괴로는 본문의 내용을 근거로 19가지의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현대의 도덕적 붕괴로 설명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이런 항목들이 로마서 1장 29-31절에 나오는 바울이 말한 경건치 않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이들은 고대 이교도들의 특징과 유사하다고 덧붙인다. 몇 가지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면, 그는 “무정하며”를 동성애의 급증으로 풀이하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는 1962년 미국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이 금지된 것 등을 나타낸다고 봤다. 모리스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기독교 국가들이 진화론적 철학에 기초를 둔 문화를 받아들인 때문이라고 한다.

모리스는 본문에서 나오는 ‘말세’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구체적인 시간을 가리킨다고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붕괴의 현상들을 지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존 스토트(John Stott)와 윌리암 D. 바운스(William D. Bounce)는 모리스와 같이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지만, 바울은 본문에서 미래의 마지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스토트는 신약의 저자들이 말세를 어떻게 이해했느냐를 먼저 살핀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세가 지금 성취된 것으로 보이며, 디모데후서 3장에서 바울도 말세를 미래의 것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 본다고 해석한다. 스토트는 칼빈의 글을 인용하여 “말세는 기독교 교회의 보편적인 상황”이라고 또한 지적한다. 또한 후크마도 “말세”에 대한 해석을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사건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초림과 재림의 사이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나 모리스는 말세에 대한 해석을 세대주의적 해석과 같이 현 세대의 어떤 사건과 연관지으려는 특징을 보여준다.

모리스가 “무정하며”에 대해 동성애로 해석한 것과 달리 윌리암은 이 단어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는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 단 2번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지만, 그 단어가 원래 부모와 자녀들에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스토트도 이 단어에 대해 가정생활에서 나오는 단어라고 본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부모를 대하는 태도를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본 것이다. 모리스가 이 단어를 동성애에 비교하여 말세의 특징을 삼으려고 했지만, 원래 단어의 뜻에서 본다면 무리한 해석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성애의 문제는 현재의 문제일 뿐 아니라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 로마 사회에서도 만연했던 현상이었다. 모리스는 말세에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확장으로 인해 세상의 도덕적 타락이 더 극심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가 말하는 현대의 도덕적 타락에는 분명히 맞는 해석일지 모른다. 하지만 진화론이 현대의 모든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논리가 부족하다.

(3) 야고보서 5장 1-8절

모리스는 야고보서 5장 1-8절의 본문을 통해 진화론적 철학으로 인해 도덕적 붕괴 외에도 정치, 사회, 경제의 전 분야에서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개역개정, 약 5:1-8)”

모리스는 이 본문이 예표하는 것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 경제의 큰 변혁인 ‘산업혁명’이라고 해석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본의 착취와 소비주의의 발생으로 인해 인류에 큰 불행이 찾아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더 크게 문제를 삼은 것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산주의 혁명이 촉발됐다고 본 것인데, 산업혁명과 함께 기술의 발달이 부유층을 더욱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게 했고, 그로 인해 노동차층과 부유층의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혁명도 진화론에 뒷받침한 것이지만, 반대로 공산주의도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한다고 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철학적 기초가 진화론에 있다고 보았다. 공산주의의 직접적인 기초가 된 사회적 다윈주의는 독일의 니체, 헤겔을 거쳐 히틀러를 통해 발전되었고, 미국의 경우에도 ‘약탈자 귀족들’이라고 불리는 록펠러, 카네기 등에 의해 강성해졌다고 봤다. 그리고 진화론적 철학은 전세계의 국가 시스템에 스며들고 있고, 더욱 더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런 사회적 혼란과 혁명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야고보에 기록된 것과 같이 “주의 강림”을 바라보는 것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전세계적인 빈부 갈등과 소비주의로 인한 타락과 가난한 자들의 고통은 주의 재림이 가까워 왔음을 알리는 예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모리스가 말하는 마지막 때는 다윈의 진화론으로 시작된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불안으로 전 세계가 전쟁과 파괴로 얼룩진 현대이다. 그는 이런 세상의 시작은 진화론이고,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온 결과는 종말의 시작라고 보았다. 하지만 엄밀하게 볼 때 영국에서 제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 1760년대이고,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해가 1859년임을 생각한다면 마치 진화론이 산업혁명과 연계되었다고 주장하는 모리스의 주장은 시간적 모순을 가진다. 물론 1865-1900년까지 영국 이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일어난 제2차 산업혁명을 의미한다면 산업혁명은 진화론의 확산과 어느 정도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하지만 진화론과 산업혁명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모리스가 진화론과 산업혁명을 연관 지은 것은 선입견으로 보인다.

본문은 인간의 탐욕과 죄성에 대한 야고보의 메시지가 분명하다. 부유한 자들이 물질적 욕망이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BST(Bible Speaks Today)주석 시리즈의 책임 편집을 맡았던 알렉 모티어(Alec Motyer)는 야고보가 말하는 “부한 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고 한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 안의 부유한 자들이 재물의 사용에 있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이것은 탐욕이 가진 속성으로 야고보 뿐만 아니라 바울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는 동일한 입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산업혁명기에도 교회 안에도 부유한 자들이 가진 탐욕은 과거에 비해 동일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 그 자체가 재림의 때를 알리는 특별한 사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리스의 해석대로라면 18세기 중반에 발생한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21세기로 넘어오며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정보의 혁명은 인간을 더욱 타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의 근본 원인에는 다시 진화론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모든 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고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타락의 범위가 구조적으로 무너져서 회복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하는 그 자체가 죄악을 더욱 깊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이 세상을 떠나 살 수밖에 없게 하는데, 이는 기독교회사에서 신앙을 위해 국가로부터 분리해서 살았던 제세례파와는 다른 분리이다. 세상 자체를 부정하고, 심판 때에 완전히 없어져 버릴 곳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완전한 분리를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4) 다니엘 12장 4절

모리스는 구약 다니엘 12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지막 때에 있을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과학을 신봉하려는 우상숭배가 증가할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개역개정, 단 12:4)”

모리스는 본문을 마지막 때에 있을 과학 기술의 발달과 연계하여 해석한다. 그는 마지막 때에 지식의 증가가 있을 것인데, 이 지식이 과학 기술의 발달을 의미한다고 봤다. 20세기에 들어와 그 앞선 2000년의 역사 속에서 과학이 이루지 못한 놀라운 발전이 이 말씀의 성취라고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과학 발달의 원인이 창조과학에 있다고 봤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그것의 과학적 증거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자신들의 연구로 인해 과학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화를 주장하는 천문학, 생물학, 인류학 등은 과학 기술 발달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모리스는 야고보서를 해석하며 과학 기술의 발달의 근간에 진화론이 있다고 했던 자신의 주장과 약간의 모순을 보여준다. 진화론의 과학를 반박하기 위한 자신들의 과학은 오히려 성경대로 과학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행한 과학만이 진정한 과학 학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란 말은 이 시대의 운송 수단을 통한 여행 속도의 증가를 보며,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각 지역을 이동하는 시간이 단축하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니엘 당시에 낙타 또는 말 등을 통해 낼 수 있었던 속도와 이동거리는 현대의 비행기나 자동차를 이용한 속도와 이동거리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리스는 이 말씀은 초자연적 영감이 아니고서는 예언될 수 없는 심오한 진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식이 더하리라”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과학이 발달하리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유를 ‘지식’과 ‘과학’이 같은 어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르네상스 이후 과학의 기초를 놓았던 사람들은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이었다고 봤다. 그러나 진화론의 등장 이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화론적 인본주의 철학에 물든 과학 신봉자들에 의해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과학적 윤리는 더 나은 인류의 번영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기독교적 윤리와 상충하며 타락의 길을 가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사회사상인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적으로 보았는데, 모리스는 이런 세속화된 윤리적 목표가 반성경적이며, 신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리스는 진화론적 철학이 공공교육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교육 철학의 기초를 놓은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경험 중심적 교육 이론을 주장했는데, 그는 인간이 햄함으로써 배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리스는 이것이 진화론적 철학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의 의식 속에 진화를 심어 넣는 교육방법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과학의 발달은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반기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본문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해석은 무엇인가? 본문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실 것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런 위로의 메시지는 4절에서 “이 글을 봉함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봉한다는 뜻은 비밀로 감춘다는 뜻이 아니라, 오류나 부패가 섞이지 않도록 보존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말씀의 봉함 이후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할 것이라고 다니엘은 말한다. 모리스는 이 본문에 대해 과학 지식의 증가로 인한 운송 수단의 발달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송병현은 말세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에 대한 표현이라고 본다. 말세에 대한 지식을 얻기 원하는 사람들은 말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찾고 구하는 자들을 말한다. 즉, 미래에 대해 궁금한 자들이 아니라, 그 때에 그 백성을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고 구하는 자들이다. 본문 어디에도 “지식”을 세상적인 지식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

(5) 누가복음 21장 10-11절

그리고 그는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마지막 때의 결정적인 해석을 한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개역개정, 눅 21:10-11)”

모리스는 9절에서 예수님의 승천 이후 역사 속에 수많은 전쟁이 있어왔으나, 10절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의 예언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성취되었다고 해석한다. 민족들 간의 전쟁은 제 1차 세계 대전이고, 나라들 간의 전쟁은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본다. 1차 세계대전 중, 1918년에 있었던 스페인 독감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3배에 달하는 사망자를 낳았다. 모리스는 11절의 “전염병”을 이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는 UFO 현상 또는 우주 비행선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모리스의 해석은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때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곧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전지구적이며 우주적인 종말이 올 것을 예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임박한 종말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경고를 한다. 그런데 그 경고를 무시하고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앞서 살핀 진화론적 과학과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종말을 대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주의자들의 해석은 어떠한가?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의 반영으로서 시대의 징조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에 대한 징조들을 가르쳐 주셨다. 후크마는 이 본문이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징표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징조들이 엄밀하게 세상 끝의 징조들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그것이 “끝은 아직 아니니라”고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리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진, 전쟁, 기근 등의 현시대적 사건들을 볼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가까왔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것은 끝이 올 것을 “보증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모리스의 종말론적 성경해석과 과학에 대한 입장에 대해 다섯 개의 본문을 통해 살펴봤다. 모리스는 자신의 성경해석에 대해 <재림과 휴거>에서 이를 종합해서 다시 정리하고 있다.

“1.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이르러 교통/통신의 급속한 발전과 과학의 대진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 베드로는 마지막 때에 진화론적 인본주의인 자연주의 철학이 세계를 지배할 것을 강조했다. 3. 바울은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이 인본주의 철학으로 팽배하고 이런 인본주의의 산물로서 극심한 영적, 도덕적 타락이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4. 야고보는 마지막 날에 큰 전쟁과 혁명을 초래할 산업 경제적 갈등을 예언했다.”

지금까지의 모리스의 성경해석을 살펴보면 그가 가진 해석의 특징은 전형적인 세대주의 성경해석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재림과 휴거>에서 심판에 대해 ‘7년 대환란’과 ‘전천년주의’를 신봉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서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이 준비되기 전에 7년의 환란과 천년 동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있을 것이라고도 해석한다. 그가 마지막 때에 대한 자신의 해석들을 종합해서 나타내 보여주는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해석은 성경 본문에 대한 주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진화론에 초점을 맞춰 현 시대의 진화론적 영향이 있다고 보며 성경을 거기에 끼워맞추기 식으로 해석한다. 그가 보여주는 성경의 해석은 성경의 문자 그대로를 믿는다기 보다는 문자를 정확히 주해하고 해석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문자에 담아 놓은 신념을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모리스의 과학적 종말론

모리스의 성경적 종말론에 이어 그가 가지는 과학적 종말론은 어떠한가를 살펴봐야 한다. 그의 성경적 종말론이 심판으로 인한 파괴이기 때문에 그의 과학적 종말에 대한 견해도 전지구와 전우주의 사라짐을 말한다. 그는 과학의 발달을 종말로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을 의미한다. 다니엘 12장 4절에서 마지막 때에 “지식이 더하리라”의 적용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세계는 전쟁과 기근, 고통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전지구적 현상들 속에 종말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소개한다. 수질 오염, 대기 오염, 인구 폭증, 불치병의 증가, 합법화된 낙태와 동성애, 종의 멸절 등은 지구 자체의 멸망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에서 죄에 대한 심판을 말하지 않더라도 지구의 종말을 내다볼 수밖에 없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모리스는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말씀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는 심판을 통해 지구는 거의 모든 것이 처음 창조 때처럼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렇게 변하는 데에는 천년 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영원한 새 땅이 준비되기 전에 먼저 지구상에 7년간의 환난기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통치하는 천년왕국의 시기가 있을 것이다(계 20:1-6)”고 했다. 그는 문자 그대로의 천년을 확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음의 것처럼 될 것인가? 모리스는 베드로후서 3장 10절을 통해 과학적 종말과 새롭게 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에 “물질”을 “원소”로 번역한다. 그래서 타락으로 인한 이 땅에 저주가 내려질 때 저주가 원소들에 스며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말세에도 이 원소들이 불에 타 없어질 때 저주 또한 사라질 것이며, 땅에 있는 모든 화학 물질들이 불에 타서 열, 빛, 소리 에너지로 바뀔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바뀐 에너지들은 다시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로 물질로 전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이다. 그렇게 해서 새 창조는 에덴동산과 같은 조건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본다. 그는 7년 대환란의 때에 어떻게 지구적 심판이 있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요한계시록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계 7:1)”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계 8:7)”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계 16:8-9)”

그는 요한계시록 7장 1절의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서 대기의 흐름을 통제하고 더 이상 바다에서 구름이 육지로 들어가 비를 내지 못하게 할 것이며, 8장 7절에서처럼 땅은 심각한 물 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16장에서 넷째 천사가 뜨거운 열기로 그린란드의 얼음을 녹임으로 해수면이 증가하고 대부분의 도시들이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천년왕국 동안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이 새롭게 마련될 것이라고 본다.

그가 생각한 처음의 에덴동산과 지구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는 타락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지만 홍수 전까지는 그 모습이 동일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의 에덴동산의 모습은 격변 이전의 지구라고 생각해서 사막이나 만년설이 덮인 높은 산은 없었을 것이라 본다. 바다는 육지에 비해 좁고, 땅의 표면은 고루 분배되어 있었을 것이며, 대기는 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은 우주로부터 유해한 것을 막아주는 공기층으로 인해 오래 살 수 있었으며, 땅은 필수적인 영양물을 풍족히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함께 다스리는 천년왕국의 시기에는 인간의 수명이 다시 길어지고, 땅은 비옥해지며, 동물들은 다시 초식동물로 바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천년왕국에서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이 진정한 학문을 통해 유사 이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번영한 과학 기술이 이루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5. 모리스의 종말론의 특징

이제까지 모리스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종말론과 과학적 종말론에 대해 살펴봤다. 이제 그의 성경해석과 과학적 견해가 어떻게 종말론을 형성하고 있는지 그 특징들을 살펴보자.

첫째, 모리스의 성경해석은 본인이 문맥이 중요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축어적 영감설에 입각한 지나친 문자주의적 해석을 따르고 있다. 그는 <창세기 대홍수>에서 문맥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떤 문장을 대할 때, 우리는 그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어휘들을 일단 원의로 보게 되며, 만일 전후 관계와 문맥이 그 어휘의 뜻을 파생적 의미로 지시할 때, 그 당해 문장에서는 그 어휘의 뜻을 파생적 의미로 재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본적인 언어 감각이니, 이러한 언어 감각이 있음으로서만, 일점일획에까지 영감하시는 하나님의 축자 영감이 성립할 수 있다.”

모리스는 문맥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재림과 휴거>에서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겉보기 문자적 해석’을 따를 때가 많다. 그는 <성경과 현대과학>에서 “성경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읽는다면, 창조는 대략 기원전 4천년 경으로 소급될 것이다”고 확언했다. 그는 성경을 과학교과서일 뿐만 아니라 과학교과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지에서 그는 성경에 과학적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성경)이 어떤 과학적 오류를 담고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성경은 그것이 과학의 어떤 측면과 접촉하는 모든 곳에서 항상 과학적으로 정확하거나, 아니면 다른 윤리학 책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순수하게 인간들에 의한 생산물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모리스가 이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성경의 무오성을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성경 무오성에 대한 그의 확신은 과학적 부분까지 무오류하다는 확신을 포함했다. 그는 <창세기 대홍수> 1장을 자신의 성경에 대한 신념을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성경은 그 원본이 축자영감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우리의 확신에 조화시키면서, 일곱 단원의 성경적 쟁점에 따라 대홍수의 세계성을 지지하는 가운데, 대홍수의 지형학적 범위에 관한 우리의 연구를 시작한다.” 모리스는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자연을 연구하며 성경과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 활동에서는 이성과 경험보다는 신학적 진리를 더 추종하였고, 당시 창조과학자들이 가졌던 신념을 더 추종하는 자였다.

또한 모리스의 성경해석에는 전제주의적(presuppositionalist)인 성향이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사실의 근원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경험과 이성을 통해 발견된 사실들은 진리를 드러내는데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신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의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으로 받기를 거부하든지, 과학적 증거들을 거부하든지이다. 그러나 모리스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신실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성경과 위배되는 모든 과학의 증언들은 거부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그의 성경해석은 근본주의적인 성경관과 유사하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고수하는 근본주의 성경관의 특징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따른다. 그리고 모든 성경 말씀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고수하며, 전천년설 종말론을 주장한다. 그리고 근본주의가 가지는 분리주의적 성향과 반지성적, 반문화적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성경 무오성에 대한 신념과 전제주의적 인식론, 근본주의적 성경 해석은 다음의 특징을 가져오게 된다.

둘째, 그의 문자적인 해석은 종말에 대한 세대주의적 해석을 낳았다. 세대주의의 성경해석은 인간의 역사를 7 세대로 구분한다. 이것은 어셔(James Ussher)의 연대기를 따른 것인데, 모리스도 이 관점을 수용한다. 그는 어셔의 연대기가 영감 받은 기록은 아닐지라도 시대를 구분한 그의 방법이 현 시대의 종말론적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봤다. 어셔의 연대기에서는 지구의 탄생 연도를 주전 4004년 10월 23일로 주장한다. 그 연대기에서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00년이고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의 초림까지가 2,000년이며, 초림부터 재림까지가 2,000년으로 본다. 어셔는 1996년이 재림의 때라고 해석했고, 밀러나 안식교도들도 이와같이 해석하였지만 그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모리스는 어셔의 마지막 때의 날짜에 대한 해석이 이미 틀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시대 구분은 여전히 인정하여 사용했다.

모리스에 의하면 어셔의 연대기에 따라 지금은 교회 시대이고, 부활과 휴거는 언제든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봤다. 계시록의 징조들이 모두 다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지금의 세계적인 상황들은 상당한 징조들이 성취되었다고 해석했다. 모리스는 그의 책을 통해 전천년설과 휴거에 대해 확신한다. 그는 계시록 20장 1-6절에 근거하여 심판으로 인해 지구는 새롭게 정화될 것이라고 봤다. 영원한 새 땅이 준비되기 위해 7년의 환난기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이 통치하는 천년왕국의 시기가 먼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본문에서 문자 그대로 천년 이라는 기간이 여섯 번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한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이라고 본 것이다.

셋째, 그의 종말론적 입장에서 과학은 철저하게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과학자들이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성경의 명백한 증거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과학의 법칙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붕괴하고 사라질 것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그는 시편 102편 25-27절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은 열역학 제 2법칙의 붕괴를 예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니엘의 예언과 같이 마지막 날에 과학과 기술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전 세계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악한 세력은 무너질 것이고, 참된 회복이 일어날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와 발명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사 이래 기술이 극도록 발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모리스는 지금의 과학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천년왕국이 지나면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과학이 다른 모습으로 크게 번영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순전히 모리스의 추측일 뿐 성경적인 근거는 전무하다. 결국 그는 문자주의적 성경해석과 세대주의적 해석에 따라 “초자연적인”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고 본다.

모리스는 <창세기 대홍수>에서 지구의 역사 과정을 과학적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신적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과학은 추론이고, 성경은 확실한 지식이라는 주장한다. 이런 그의 주장을 반대하면 그는 그것은 인본주의 철학 때문이고 그 철학의 기초는 진화의 개념이라고 반박한다. 개발과 성장, 진보에 대한 인간적 욕망을 가진 학문이 진화론이고, 진화론은 고대의 우상숭배에서 시작해서 현대의 실존주의와 공산주의로 연결되는 학문이라고까지 확장하여 반론한다.

모리스는 진화론의 뿌리가 무신론에 있다고 봤다. 신에 대한 개념 또한 인간이 진화되는 가운데 생겨난 것일 뿐으로 본다. 즉, 그는 창조를 부정하는 생각을 무신론에 근거한 진화론으로 단정 짓는다. 그리고 유신 진화론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다윈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는 현대 유전학, 고생물학에서 진화는 진화일 뿐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창조와 함께 묶어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리스의 이런 주장은 과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적 관점에까지 번지게 된다. 그는 진화론이 공산주의적 철학의 골격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과학이 물질주의의 가정으로 출발하고, 인간과 하등 생명체를 억지로 잊는 진화의 계보를 만들어 넣으려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현대의 진화론이 제시하는 주장에 반한 성경의 유력한 증거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고생물학을 수납하던지, 성경을 수납하던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학과 성경의 관계를 적대적 관계를 만들어버린다. 둘 중의 하나는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넷째, 모리스는 과학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에 대한 반지성적 견해를 가진다. 이것은 근본주의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19, 20세기를 지나며 미국에서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분리주의적, 반계몽적, 근본주의적 특성이 모리스의 성경해석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는 성경과 신학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반 학문을 인본주의라고 보고, 인본주의는 진화론에 뿌리를 둔다고 본다.

지금까지 살핀바와 같이 모리스의 종말론은 안식교에서부터 출발한 세대주의적인 성경해석과 그 속에 근본주의적이며, 전제주의적인 입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과학자로 창조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성경 해석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드러냈다. 창조와 종말에 대한 그의 성경해석은 안식교 선구자 윌리엄 밀러로부터 시작된 문자주의적이고, 세대주의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다. 모리스는 안식교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지만, 그래서 창조에 대한 성경 해석에서 그들의 이름은 지웠지만 해석의 방법은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모리스가 과학자로서 글을 쓸 때와 성경해석자로서 글을 쓸 때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성경 해석은 <창세기 대홍수>에 잘 나타나있다. 이 책에서 모리스는 성경에 없는 온갖 얘기를 동원해서 단일격변설을 주장한다. 하지만 <재림과 휴거>에서는 문자주의적이며, 세대주의적인 해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모리스의 성경적 종말론과 과학에서의 종말론의 특징을 살펴봤다. 이제그 그의 해석이 이 후 미국과 다른 나라의 창조과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