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7-03-06 17:36
<‘지질계통표’ 탄생과 영향>에 대한 논평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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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 D.)
 
 

이재만 선교사의 <‘지질계통표’ 탄생과 영향>에 대한 논평





1. 초월의 창조주 하나님과 내재의 세상(일반 계시의 세상)에 대해

​기독교는 초월(超越)과 내재(內在)가 역동적으로 소통하는 종교다. 성경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 세상에 대한 초월의 창조주이심을 선포한다(창 1:1). 반면에 창조과학은 주로 내재의 재료를 가지고 초월의 창조와 성경을 문자적으로 증거 하려는 과학도 중심의 신앙 학문이다. 창조과학은 과학 기술이 국내 산업화를 주도하며, 과학을 등에 업은 우연론적 자연주의진화론이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던 시대에 보수 기독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창조 신앙을 수호하며 기독교를 옹호하는 험증(驗證)적 운동의 상징적 위치를 확보한 면이 있다. 필자는 그런 창조과학 전성기(?)에 창조과학회에서 대표간사로 사역했던(1984-1997) 사람으로 지난 여름 온누리교회에서 있었던 <창조냐 진화냐>에 대해 기독교학술원 월례 세미나 모임에 신학자로 논찬에 참여한 이후 다시 한 번 본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본 논문에 대해서도 보다 신앙과 신학의 근원적인 부분에 대해 논평하고 권면하고자 한다.

2. 논문의 내용

본 논문은 근대 지질학과 지질계통표의 탄생과 그 영향에 대해 대격변 중심의 성경 창세기에 소개된 홍수지질학 즉, 지질학의 창조과학적 관점에서 잘 기술한 글이다. 논문의 저자는 근대 지질학의 태동기 이전인 17-8 세기 해부학자, 신학자, 내과의사, 수학자, 광산광물학자 등 지질학의 딜레탕트들이 대홍수 지질학의 관점에서 지층을 관찰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성경을 믿던 사람들이었음에도 계몽주의 영향 아래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의 해석을 성경보다 우선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18세기 중반(1750년) 이후 계몽주의적 사고로 인해 유럽에서 오랜 지구 이론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태동하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중심인물로 프랑스의 뷰퐁(지질학), 성운설의 라플라스(천문학), 용불용설의 라마르크를 통해 동일과정설, 대폭발설, 생물진화론 탄생의 길이 열리게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에서도 현대 지질학이 태동하게 되는 데 아브라함 베너(1749-1817)와 동일과정설의 기반을 제공한 제임스 허튼(1726-1797)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반해 격변론의 대표자로는 초등학력의 배수전문가였던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와 층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스미스(1769-1839)와 프랑스의 비교해부학자요 고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퀴비에(1768-1832)를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공회 성직자였던 버클랜드와 세드윅같은 격변론자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날 대홍수격변론(창조과학적 격변론)보다는 여러 번의 격변이 있었음을 주장하여 양승훈 박사의 다중 격변론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특히 퀴비에).

이후 버클랜드의 제자이며 변호사였던 찰스 라이엘(1797-1875)의 『지질학의 원리』가 출판되면서 지질계통표와 동일과정설이 득세하게 되었음을 잘 서술한다. 반면 동일과정설에 대한 두 가지 저항으로 목회자 윗트컴과 창조과학의 원조 헨리 모리스가 공저로 낸 『창세기 대홍수』(1961)와 1800년대 초반 격변론자들의 생각으로 돌아간 신격변론자(neo-catastrophists)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논문의 저자는 남침례교 출신 수력공학자였던 헨리 모리스의 견해만이 오직 성경과 과학적 근거를 지닌 참 된 기원과 홍수 심판을 변론했다고 소개하고 창조론자들이 이 이론을 잘 다듬어 기존의 동일과정설, 진화론, 지질계통표, 연대측정법의 불가능성과 문제점들을 집요하게 지적하기 시작한 반면, 지질계통표를 사실로 전제한 타협 이론들은 성경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고 역설하고 있다.


3. 논평

1) 성경적 창조 신앙인가 창조과학인가(신앙의 <과학>도 결국 신학이다)
초월과 관련한 창조와 창조론 이슈들을 다룬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가 성경의 계시(sola scriptura)에 의존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이다. 반면에 창조과학은 말 그대로 과학에 의존한 신앙 운동이다.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하고자 했던 칼 포퍼(1992-1994)는 과학은 본질적으로 반증(反證) 가능성(falsifiability)을 가진다고 했다. <반증 불가능한 창조>와 <반증 가능한 과학>이라는 단어를 엮어놓은 <창조과학>이라는 용어는 분명 충돌하는 두 단어가 결합한 것처럼 수많은 딜레마를 양산할 수 있다. 이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선동적인 나쁜 과학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포퍼는 거짓임이 드러나도 선동가들은 임시 방편(ad hoc)의 보조 가설을 도입하여 논박을 피한다고 했다. 반박 당하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과학인 반면 점성술이 과학이 아닌 이유는 불리한 증거들이 나오면 반증을 피해버리는 “점쟁이 책략”을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논증은 휘튼대 출신의 역사학자 마크 놀이 잘 전하고 있다. 즉 (진리 계시가 아닌) “원리(과학)로부터 연역(deduction)하고자 하는 창조과학은 성경(초월 계시)과 관련해서는 베이컨주의를 잘못 적용했고, 자연(내재의 일반 은총)과 관련해서는 건전한 베이컨주의를 포기했다는 점이 비극”이라고 했다. 이 뼈아픈 평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앙의 <과학>도 결국 신학이다. “틈새를 메우는 하나님” 논리가 아닌 (반증 가능한) 정통지질학자가 되어 제도권의 지질학을 바꾸든지 성경적 창조 신앙을 다루는 신학자가 될 필요가 있다.

2) 그렇다면 어떤 지질학인가
논문의 저자는 헨리 모리스를 따르는 창조론자들이 그의 이론을 잘 다듬어 기존의 동일과정설, 진화론, 지질계통표, 연대측정법의 불가능성과 문제점들을 집요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고 역설한다. 논문의 저자도 그 반열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 히스토리를 좀 더 소개했다면 논문이 좀 더 완성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논문이 논지나 논증이 미흡한 반면 너무 평이한 지질학 교과서의 introduction을 그대로 옮긴 듯 한 엣세이나 칼럼 같은 논문이다. <동일과정설에 대해 어떤 집요한 지적>을 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홍수지질학도 헨리 모리스가 원조는 아니다. 개혁신학의 성경해석도 다르다. 헨리 모리스가 직접 고백했듯 모리스의 격변론적 대홍수지질학은 자신이 안식교리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세대주의 관점의 긴박한 예수재림운동의 밀러와 선지자 엘렌 G. 화잇을 따르는 안식교 신자인 조지 맥크레디 프라이스의 저작을 원조로 한다. 창조과학이 자주 인용하는 1925년 <스콥스 재판>의 중심에 섰던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자주 등장했던 검사 출신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도 젊은 지구 창조론자가 아니었고, 브라이언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의 이름은 단 두 명만 제시했는데 그중 한명이 바로 안식교의 프라이스였다. 사실 그가 받은 교육은 지방 사범학교 1년의 단기 교육이 전부였다. 미국의 홍수지질학회는 초대 회장 캡틴 알렌부터 안식교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유명한 대홍수지질론자 헤롤드 클락이나 클리포드 버딕 등도 모두 안식교 영향권 아래 있던 인물들이다. 헤롤드 클락은 변절주의자로 안식교에서 배척당했고, 클리포드 버딕은 가짜 학위 문제로 신뢰성을 잃은 인물이었다. 제대로 된 대홍수격변론 지질학자는 20세기에 들어 비로소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호주창조과학협회의 앤드루 스텔링과 펜실베니아 주립대 출신 스티브 오스틴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격변론적 지질학이 탐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논문의 저자가 이런 부분을 좀 더 상세하게 기술해 주었다면 기독교학술원 취지와 부합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3) 창조과학 변증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이 창조신앙의 본질이다
초월 계시인 창조를 아래로부터의 내재적 자료로 증거 한다는 것은 논리적 제한성을 갖는다.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Finitum est non capax infiniti). 성경적 창조사관이 서구의 우연론적 진화론의 직선사관과 결코 공존할 수는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들을 상대로 창조과학으로 계시를 계몽할 수 있다는 생각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 창조사관은 역사의 진정한 주권자인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님 연대(年代)”로 역사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구주 예수 안에서 “통일성과 다양성”(unity in diversity)의 긴장에 대한 절묘한 균형과 조화를 필요로 한다. 지구 연령과 ‘창조의 날’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개혁신학 교단들인 OPC(Orthodox Presbyterian Church)나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가 목사안수와 결부하여 2000년대 초기 발생한 창조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 사이의 치열한 연구와 제언에서 가능한 5가지 창조 이론(“일상적인 하루의 날, 날 세대, 문예적 틀, 유비적 날, 미확정된 기간의 날”)을 모두 복음적 견해로 수용한 것은 “반드시 일치해야 할 것들은 규명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주 예수의 사랑으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인간의 창조 해석은 ‘아디아포라’(adiaphora)인 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엄’(Magnalia Dei)이 본질인 것이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 8:1하). 창조에 대한 전문학자간 서로 다른 이론이 복음주의와 개혁신학 내부에 공존함을 이해하고, 우리 안에 발생 가능한 비방과 분열을 절대적으로 막아 서로를 품어야 한다. 아인시타인이 이미 시간이 초월의 관점에서는 무의미함을 증거 하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4) 창조과학 운동에의 권면
이미 국내 창조과학운동의 초창기 대표간사로 사역한 적이 있었던 필자는 다시 한 번 대홍수지질학의 창조과학 운동에도 권고하고 싶다. 3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세계적 지질학자라 소개되었던 러시아의 드미트리 쿠즈네초프는 국내 창조과학회와 카이스트에서까지 강의를 하고 수 천 만원 선교비를 가져간 사기꾼으로 미국에서 불량수표를 유통시켜 수감생활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국내외 미숙한 신앙의 학문이 파토스적 레토릭에 어이없게 속은 대표적 사례다. 창조과학이 자주 인용하는 소위 <인디언 홍수 동판>은 자신들 계시와 더불어 오직 몰몬교도들이 중요시하는 유물이다. 1890년 미 펜실베니아대 인류학자 모리스 재스트로우는 사진만으로도 만든 사람의 무식함이 드러나는 조잡한 물건이라고 이 노아 홍수 모티브 동판을 비판하였다. 공식 홈피에 검증되지 않았거나 조작된 무분별한 출처 불명의 거인 화석이나 공룡 이미지 전시, 폴킹혼의 친구로 창조론자가 아닌 프레드 호일이나 위클라마 싱의 견해(이들은 정상우주론자들이다)를 아전인수 격으로 창조 논리에 활용하는 등과 같은 수많은 파행은 창조과학 사역의 신앙적 열정과 공헌을 한꺼번에 조소거리로 만들 수 있으므로 사역의 진정성을 위해서도 이제는 학회 안에서 공론화하고 심각한 논의를 거쳐 문제되는 자료들은 삭제하고 바르게 정리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2016. 2, 백주년선교기념교회) 권진혁 교수(영남대)가 창조론오픈포럼에서 논문 발표를 통해 소개한 창조연대에 대한 <창조과학회의 최근 공식 입장>은 6천년설이 퇴각하고 오히려 2007년 양승훈 박사의 견해로 수렴될 정도로 차별성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창조과학회의 놀라운 변화로 여겨진다. 창조신앙 수호운동으로서 열정적이었던 창조과학운동은 한국교회에 일정한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규모를 갖춘 단체가 되었다. 칭찬에는 익숙하나 질타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힘을 가졌을 때이므로 그럴수록 스스로 조심하고 무거운 책임을 느꼈으면 한다. 그리고 신앙의 학회이므로 신학과 늘 소통하고 진정한 연구 성과물을 내야 한다. 이것이 한때 창조과학을 사랑하고 사역해왔던 필자의 진심어린 충고이다.

4. 나가면서(진정한 전문가로서의 치열한 논문을 써야)
지질학 전문가가 부족한 열악한 상황 가운데 국내에서는 지질학을 공부한 사람 중 거의 유일하게 본격적으로 격변론적대홍수지질학을 고수하는 논문 저자의 치열한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론(理論)이나 설(說)이나 직관(view)과 달리 학(學)문은 정교하다. 그리고 끝없이 정교해지고 있다. 따라서 교양지질학의 서론에 해당되는 동일과정설의 역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격변론에 대한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하되 그것을 검증 가능한 논문을 통해 논증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과학적 진리라 여긴다면 예수 믿는 비전문가인 대중들을 상대로 로고스가 결여된 너무 파토스적이고 에토스적인 호소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에토스와 파토스가 앞서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마치 문제가 많고 잘못된 사람들이라고 공격하는 누를 범 할 수 있다. 과학도는 파토스가 아닌 진정한 전문가로서 권위 있는 관련 저널에 자신의 입장을 치열하게 피력해야 한다. 이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면 오히려 성경으로 지질학을 희화화한다는 조롱거리가 되고 겟토화 되어 버릴 수 있다. 따라서 에세이 수준의 칼럼으로 과학에 무지한 기독교인들만 현혹한다는 비판과 조롱에서 벗어나려면 진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편협하여 반성경적, 무신론자라고 공격하는 것을 지양하고 대화와 토론에 나서야 한다. 예를 들면 최근 신앙의 관점과 학자적 소명의 치열함으로 (다중)격변론을 주장하고 연대 문제에 대한 저술(3월초 발간)을 통해 성경적 창조 신앙을 탐구하는 양승훈 박사 등 창조론자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argue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경의 창조 계시는 우리 인류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깊고 풍성한 은총을 끊임없이 제공하여 왔다. 그리고 우리 인류는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수치의 골고다 십자가를 대신 지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영원한 구속의 하나님이심을 찬양하여 왔다. 내재의 학문인 과학도 결국 하나님의 영역 주권 속에 있기에 참된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하신 일들이 풍성하게 드러나기를 기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