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7-07-22 22:18
중국은 함족 가나안의 후손인가?(성경 난제 해설-조덕영 목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40  

중국 민족 조상은 함족 가나안의 후손인가?(성경 난제 해설)



다민족이 사는 중국 영역

중국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이다. 면적 만해도 한반도의 50배, 남한의 100배로, 러시아와 캐나다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인구도 세계 인구의 4분지 1에 달하는 민족이다. 이 같은 규모를 자랑하는 오늘날 중국의 한(漢)민족은 당연히 하나의 민족이 아니다. 다민족 국가다. 그래서 중국 민족의 성경적 계보와 흐름을 파악하는 데 난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민족적으로도 중국 전체 면적 가운데 티베트, 위구르, 몽골족의 주요 분포 지역은 한민족 주요 분포지역의 크기를 넘어선다. 인구의 90% 이상은 한족이나 자치구역의 면적으로 보면 넓이가 487만Km2로 중국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한(漢)민족과 전혀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주요 소수 민족만 해도 50여개가 넘는다. 그 중에는 한때 200여 만 명에 달하던 우리 한(韓)민족계의 조선족과 7세기 멸망당한 고구려의 유민일 가능성이 최근 대두되고 있는 묘족(먀오족, 苗族, 인구 7백만 이상, 한민족에 동화를 거부하고 이민 간 묘족들을 포함하면 1천 만 명 안팎에 이름)도 있다. 이 중국 민족 전체를 단순하게 성경에 나오는 함족 가나안의 후손이라 규정하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다.


중국의 고대 신화와 문화

중국은 선사시대를 거치면서 상고(上古) 시대 삼황(三皇), 오제(五帝)가 통치하던 황금시대를 거쳐 삼대(三代; 하, 은, 주) 시대가 나타났다고 한다. 다만 하(夏)왕조의 존재는 공자시대부터 믿어왔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실증되지 않고 있다. 연대로는 주전 5천년 경의 앙소(양사오, 仰韶) 문하, 주전 2천년 경의 용산(룽산, 龍山) 문화, 주전 1600년경의 은(殷)왕조 시대(또는 상왕조 시대), 주전 1050년경의 주(西周) 시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고대 문화를 일군 주도 세력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고 건너온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다. 성경적으로 중국 민족을 규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성경의 신족(Sinites)과 한민족(漢民族)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가나안의 후손 가운데 신족(Sinites)이 있었다. 중국 민족을 함족 가나안의 후손이라고 보려는 시도는 이 “신”이라는 명칭을 성경의 “시님”(사 49:12)과 관련지으려는 경우와 “중국이 고대부터 “시나”(또는 “지나”)로 불리어지는 데 착안하여 “신 족속”을 중국 민족으로 비정하려는 입장을 가진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의 원조 헨리 모리스(H. M. Morris)나 서구 신학자들이 우리 민족을 포함한 극동(極東)의 민족들을 함족으로 보려는 견해에는 바로 이런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견해를 입증할만한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다.

오히려 성경의 “신족”은 다른 가나안의 후손들처럼 주로 팔레스틴 북쪽에 자리 잡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제롬(Jerome)은 아르카(Arka)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이란 이름을 가진 장소가 있음을 알아냈다. 레바논의 산 위에 남아있는 신나(Sinna)라는 성채를 신 족속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1929-1939년 사이에 발굴된 우가릿(Ugarit) 문서들에는 최고의 신 ’엘‘('El')뿐만 아니라 신족(Sinites)에 대한 많은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앗수르의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가 “신”이었음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렇게 “신”이라는 명칭은 가나안 뿐 아니라 고대 페니키아 지역과 수메르-앗수르 지역 곳곳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우르 지방에서 발견된 비문들에는 신격화된 “신”이 사람들 가운데 “법과 정의”를 확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 “진”이나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진 나라들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은 중국 고대 하(夏)·상(商)·주(周) 이후 성경의 “신”과는 전혀 무관한 훨씬 후대의 나라들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따라서 중국 민족을 단순하게 함족 가나안의 후손들이라고 보는 입장은 옳지 않다. 


창조신학연구소
조덕영 박사(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