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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30 10:01
이쉬타르 문에 새겨진 미확인동물 시루쉬(Sirrush)가 주는 교훈은?(조덕영의 창조 신학)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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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쉬타르 문(독일 베를린 페라가몬 박물관 내)

 
 

이쉬타르 문에 새겨진 미확인동물 시루쉬(Sirrush)가 주는 교훈은?

   

신기한 동물 “시루쉬”

하와를 유혹한 뱀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독일 베를린 페라가몬 박물관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푸른 광택으로 빛나는 바벨론의 전설적인 이쉬타르 성문을 접하게 된다. 이 성벽에는 앞발은 사자발 같고 뒷발은 독수리발 같은 신기한 동물을 마주하게 된다.
 

“시루쉬”가 새겨진 이쉬타르 성벽

주전 586년 경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바벨론의 수도는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8킬로미터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가에 위치해 있다. 바벨론 성은 성경에서 시날 땅(창 10: 10)으로 불려 진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생지, 바로 그 영역에 있었다. 바벨론 수도의 8개 성문 가운데 하나인 이쉬타르(Ishtar) 문이 세워진 것은 주전 575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성문에는 높이 12미터에 유약을 입힌 벽돌로 만든 “시루쉬”와 어린 사자의 부조가 층을 이루면서 장식되어 있다. 13줄로 배치된 그 숫자는 대략 575점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어로 이난나(Inanna)로 불린 이쉬타르는 전쟁과 다산(多産)과 사랑의 여신이다. 수메르에는 수천의 잡신들이 있었다. 애굽과 가나안처럼 메소포타미아 지역도 우상 숭배가 만연해 있었다는 증거다. 독일 건축학자이자 고고학자였던 로베르트 콜데베이(Robert Koldewey) 교수가 이 유적지를 본격 발굴한 것은 1887년 발견 후 2년이 지난 1889년 3월부터였다. 이 발굴은 1917년 까지 18년간 지속되었다.


“시루쉬”에 대한 전설

구약 외경에 의하면 느브갓네살 왕은 백성들에게 시루쉬를 숭배할 것을 명하였고 다니엘은 시루쉬 숭배가 우상숭배라고 거부한다. 왕은 다니엘을 징계하려고 시루쉬를 보냈으나 오히려 다니엘의 손에 죽고 만다. 전설과 부조에 등장하는 이 시루쉬가 과연 실존했던 동물인지 상상 속 인물인지 아니면 공룡의 일종이었는지 지금도 학자들은 이 동물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새의 발을 가진 공룡’ 모습을 한 이 동물은 표본이 될 만한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관련 학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다. 토라에 기술된 하와를 유혹한 뱀에 대한 이야기는 중동 지역에 널리 전해졌을 것이다. 전설의 동물들은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구전 되면서 각색되기 마련이다.


유대민족의 절망을 상징하는 바벨론 성

예루살렘성만이 이 세상 최고인줄 알았던 유대민족의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 광야를 걸어와 유프라테스 강 양변으로 푸른 광택을 하려하게 뽐내는 이 엄청난 성곽과 성문을 마주 대했을 때 느꼈을 심리적 충격과 절망을 조금은 짐작이 간다. 그 절망적 풍경은 시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절). 안식 절기를 소홀히 여기고 참 선지자 예레미야를 따르지 않던 유대 민족은 바벨론 성벽을 보며 역설적 참담함을 느꼈을 듯하다.

 
절망을 소망으로

 하지만 그 절망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70년이었다.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은 벨사살이었다. 나보니두스 왕의 아들이었던 벨사살은 아버지와 함께 공동 섭정(주전 553-539)을 한다(단 5: 7, 8, 16). 이때 다니엘이 바로 제 3의 치리자였다. 다니엘( 5장)은 벨사살이 그의 통치 마지막 날 밤에 열었던 대연회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왕은 귀빈 1천명을 초청하여 자기 아버지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 온 금은으로 된 그릇들을 가져오라 명령한다. 그 성전 금은 기구들을 가지고 왕과 귀빈들과 왕의 아내와 첩들은 술을 따라 마시고 금과 은과 구리와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우상)들을 찬양하였다.


그때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의 촛대 맞은 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 왕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무서워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점장이와 마법사와 점성가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그 박사들 가운데 그 글자를 읽거나 해석하는 자는 없었다. 벽에 쓰인 그 글자를 해석한 이는 벨드사살이라 불렸던 박사장 다니엘이었다. 벨사살 어머니의 소개로 왕 앞에 불려온 다니엘은 그 기록된 글자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며 그 뜻은 ‘왕이 통치하는 날 수를 하나님이 세어서 이미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예언대로 그날 밤 벨사살 왕은 죽임을 당하였고 다니엘은 벨사살 왕의 조서에 따라 바벨론의 제 3인자가 되었다.
 

이쉬타르 우상신도 이쉬타르 성벽을 장식한 전설의 “시루쉬”도 바벨론 대제국 벨사살 왕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은 유대 민족의 귀환 약속 성취를 위한 작업을 조용히 준비하기 시작하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다음에 올 바사왕 고레스가 그 일을 주관할 인물이라고 고레스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그 실명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다(사 45장). 그리고 벨사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시루쉬를 호위무사처럼 새겨놓은 이쉬타르 우상의 웅장한 성벽은 21세기 박물관의 유물로 말없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전하고 있다. 벨사살 왕의 교훈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평양에서 기독교인의 후손으로 태어나 교회를 철저하게 탄압하고 지금은 방부제 포르말린을 뒤집어쓰고 푸르둥둥한 사체로 음산하게 진열되어 있는 북녘 지도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