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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1-30 09:26
성(性)! 그 은밀성에 대해-<하나되는 기쁨> 서평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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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그 은밀성에 대해-<하나되는 기쁨> 서평




성(性)은 죄악도 아니면서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참으로 어려운 난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의 중요성은 말해져야 한다. 기독교는 육체를 긍정하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칼 바르트(K. Barth)는 인간의 성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근거하고 있음을 최초로 논증한 신학자였다. 국내에서도 성(性 ) 문제에 담긴 깊은 영성을 깨닫고 이 사역에 뛰어든 탁월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목회자로는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가 있고, 가정 사역자 가운데서는 신앙적 결혼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주요셉 목사(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성의 미묘한 부분들을 신학적으로 깊게 다룬 송인규 교수(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등은 대표적 복음주의 사역자들이다.

결혼은 다른 인간 관계와 달리 육체적 결합(physical oneness)을 통해 부부가 독특한 통일체를 이룬다(엡 5:31-33). 이 결합 아래서 부부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섭리 아래 자녀를 생산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다. 부부는 대단히 신비롭고 귀중한 관계로 성경에서 묘사된다. 인류 최초 결혼의 중매자와 주례자가 바로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신비롭고 은밀한 남녀 간의 관계 가운데 영적, 육적 기쁨과 쾌락을 선물하였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사 54:5; 렘 3:14; 계 12:2), 신부(사 62:5; 계 21:2; 21:9), 아버지(마 5:16), 자녀(요 1:12; 11:52) 등으로 묘사한다. 이런 유비(analogy)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미숙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생각된다. 그래서 조직신학자인 웨인 그루뎀도 가정과 하나님의 삼위일체 사이가 탁월한 유비는 아니드라도 분명 하나님은 가정과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자신을 증거하는 비유적 요소를 심어놓았다고 논증한다. 인간은 이 신앙과 육체적, 정신적 결합 가운데 이루어지는 가정 사이의 심오한 유비 관계를 통해 신앙적 삶의 역동성과 강렬함과 은밀함과 성숙과 절제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최근 논란이 된 <하나 되는 기쁨>도 바로 이와 같은 성의 은밀성과 강렬함에 담긴 영성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 책의 논점에 대해 크게 다음 두 부분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이 책이 정말 가정 파괴적 책인가?

즉 이 책이 외설과 음란과 그릇된 성을 조장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책의 저자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고 있다. 물론 어떤 책이든 책의 나무(일부분)만 보고 숲(전체)을 보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필자가 볼 때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올바른 인식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성의 음란이나 외설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성의 영성, 성의 거룩성, 성의 순결성, 부부 안에서의 성의 아름다움과 축복을 강조하고 있다.

이동원 목사는 “성경(聖經)이야말로 최고의 완벽한 성경(性經)”이요 “성 결합은 영적 교통의 상징”, “천국에도 이 세상처럼 성의 즐거움이 있으면 좋겠다”, “성교를 예배에 비유”하는 위험한 모험(?)까지 감수했다. 그 역시 부부 간 성적 즐거움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아가서를 인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위(?)가 대단히 높은 그의 표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책에 대해서만 유별나게 시비를 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누구의 책이든 책의 부분만 보고 전체 숲을 보지 못할 때 분명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이 책이 청소년을 겨냥하거나 외설을 조장했다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의도의 책이 전혀 아니다. 이 책은 책의 독자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엄격한 분별 아래 통제된 상태에서 성을 터부시하는 왜곡된, 반성경적 사고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부부들을 위해 저술된 것이다. 올바른 성경적 부부관이 필요한 그런 부부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본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이 책을 집착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성을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려는 잠재의식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더 큰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결혼 안의 성은 소중하고 거룩하고 축복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둘째 이 책이 성경 해석의 실수를 범했는가?

이 책이 솔로몬의 아가서를 단지 성적 교훈만을 위한 책이라고 보았다면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하지만 성경은 다중적인 책이다. 창조(일반 은총)와 구속(특수 은총)을 다루는 책이다. 두 은총이 서로 질적으로 다르기는 하나 창조와 구속은 전혀 별개의 은총이 아니라 실은 서로 보완적이고 병행적이다. 성경은 자연 은총(책, 역사, 음성, 언어, 사람, 부부, 가정, 공동체, 은유, 유비 등등)을 통해 인류의 구속 은총으로 들어간다. 심지어 웨슬리안알미니안주의(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일부 침례교)에서는 두 은총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질적 차이는 없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아가서도 당연히 ‘창조’와 ‘구속’의 틀 안에서 자연적 은총과 영적 은총의 다중적 은총을 반영한다. 다만 질적 차이는 분명 있는 것이다. 저자는 조금도 이런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정, 혹은 간과하지 않는다.

요컨대 양박사의 책이 아가서를 인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중 은총 가운데 창조 은총(자연 은총)에 집중한 책이요(아가서의 기독론적 관점에 시비를 거는 게 아님) 본 필자의 강해(본 홈피의 창조 신앙- 창조와 사랑 아가서 강해를 볼 것)는 반대로 아가서의 기독론적 사랑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차이 뿐이다. 서로 다른 관점(자연 은총과 특별 은총)에 집중한 것을 가지고 다른 잣대를 들이대어 인격적 비난에 나서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옳지 않다.

이 두 은총의 구분은 교회가 신앙의 길에 들어선 초신자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가장 기초적 내용 아닌가?


저자는 분명 아가서의 유비적 의미를 배격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의 의도는 이동원 목사처럼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성(性)적 즐거움을 다루기 때문에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동원 목사도 가정 사역이 아닌 구속사적 대중 설교였다면 아가서를 그런 식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가 볼 때 이 책은 일부 은밀한 성적 즐거움에 대해 적나라한 표현이 많기는 하나 이동원 목사의 책과 같이 확고한 복음주의 입장에 서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책을 접해보지 못했거나, 부분적으로만 읽고 오해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오해를 풀기를 바란다. 이 책은 결혼 밖의 사람들의 유희를 위한 책이 전혀 아니다. 단지 이 책이 필요한 부부들에게 제공하고자 기획된, 그들에게 아주 요긴한 책일 뿐이다.

이 책은 2006년 출간된 책이다. 지금까지 조용하다가 갑자기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책을 출간한 저자의 진정성은 왜곡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필요로 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명백한 의도이다.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온통 소동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저자가 익명을 사용한 것도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저자가 스스로 고백했듯이 이 책 안에 일부 지나친 성경 해석이나 적용, 과한 표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가 아가서의 영적 측면을 좀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성의 절제와 성숙은 성의 즐거움과 쾌락 못지않게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살만한 지나침이 있었음을 적절히 해명하였으므로 그저 아쉬움으로 남긴다.

다시 말하지만 성은 그 본성이 대단히 강렬하면서도 은밀하다. 누구나 느낄 정도의 뜨거운 불길로 변해버리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 은밀함이 드러나서 무작위로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더더구나 그것이 본의 아니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성경 해석이나 교리적 시비로까지 번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성은 심지어 부부 사이일지라도 감추어진 신비요 내밀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제 이 책의 문제에 대해 온 세상을 향하여 나팔을 부는 게 아니라 서로 간의 오해를 풀고 서로 절제와 겸손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신앙적 덕스러움의 길일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저자나 이 책을 대하는 모든 신앙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선한 의도라 필자는 믿는다.





조 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www.kictnet.net,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