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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12 07:59
김성로 사상에 대한 이해(2)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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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 사상에 대한 이해(2)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 기독교진리수호연구협회 신학자문위원)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일까? 김성로의 교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죄를 성령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1권).
둘째, 죄사함, 옛사람의 죽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승리를 거두고 그것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2권).
이 과정에 중요 역할(죄를 깨닫게 함)은 ‘성령’이 한다.
그런데 왜 ‘부활’을 강조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김성로는 자기 교도(敎徒)에게 “부활한 주 예수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fk고 독단적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교도에게 다시 독단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해서 세계정복”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세계정복은 마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성경 사도행전 1:8, 요한복음 14:12을 근거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이라는 말로
결론한다. ‘세계 정복’ 과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은 연관성이 없다.
 ‘마귀를 굴복시키는 것’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아니다.
김성로는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고 2권을 종료한다.
3권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설명을 할런지는 의문이다.

1권과 2권을 살펴보면서 내린 필자의 결론은 “체계적인 자기 도식을 갖고 있지 않는 미숙한 구도”이다. 그러나 각종 작품에서 좋은 것으로 생각된 것을 뽑아 배열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옛것을 전술할 뿐
창작을 하지 않음, 받아쓸 뿐이지 만들지 않음)으로 비판은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재료는 죄와 싸움, 자기 부인(포기)이고, 복음의 요소들을 곳곳에 제시해서 변명의 여지가 충분하다.
‘복음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는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개념이 김성로에게 없는 것이다.
복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단순하게 좋은 소식으로만 인식하고), 복음의 요소들을 난발시키면서,
전체 복음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시리즈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뒤편에 나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 2권에서 복음의 요소들을 난잡하게 배치했기 때문에, 뒤에서 정립될 확률은 없다.

반복된 지적인데, 김성로는 중요한 복음의 체계를 외면하고,
복음 밖의 요소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찾기 어렵다.
복음에는 죄와 싸우는 것이 없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없다.
‘죄와 싸움’ 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복음을 믿는 사람이 하는 행동(부산물)이지
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은 생명인데 생명으로 말미암은 부산물을 제시하면,
부산물을 원인으로 한 행동(부산물)은 필연적으로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신인협력주의로
귀결한다. 김성로 사상에는 보편구원주의까지 있다.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우리는 김성로 사상을 비평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사상을 비평하는 것은 인격 비난이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상가는 자기 사상을 공개하고 타인의 비평을 겸손하게 경청하고,
자기변호와 자기주장으로 만민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과제가 사상을 비평하는 일이기 때문에 좀 더 냉철한 독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비평의 강도를 높이려고 한다.
그것은 독자가 비평적인 내용을 잘 숙지케 하는 방편이다.
김성로 목사가 너그럽게 비평을 경청하길 바라고, 독자들은 좀 더 냉철하게 검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성로의 “복음시리즈”는 1권에 7 과로 구성했다.
앞에서 권 당 주제를 대별했는데, 주제를 보아서 저자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주제가 일목요연한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성로 사상은 교재가 아닌 강연을 통한 것이 주된 것으로 생각했다.
교육 교재는 세미나와 강연에서 주입된 사상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교재가 매우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상을 교육하려면 체계적인 교재 구성을 해야 하는데 교재에는 그런 체계가 보이지 않는다.
김성로는 열정적인 강연으로 매료시킨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강연에 대한 비평은 정이철을 통해서 매우 효과적으로 지적했다.
정이철이 제기한 핵심은 “십자가를 무시하고 폄훼하는 것”이었다.


4. 복음시리즈 1권,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라』 고찰

김성로는 교육 교재를 제작하면서, 한마음 교회가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땅 끝까지 증거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제시했다(복음시리즈1권, 2쪽).
김성로는 십자가가 아닌 부활만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로는 복음과 성령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제시했다(복음시리즈1권, 2쪽).
‘삶의 변화’는 영과 육, 두 가지 영역이 있지만 그리스도인 양육 교재이기 때문에
영적 변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교재 전반에서 삶의 변화는 주인 위치 변경, 죄와 싸워 이김이 전부이다.
‘복음과 성령의 능력’이란 표현은 매우 어설픈 표현이다.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라”이고, 복음으로 부활을 증거하라는 표현은 없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복음,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권능으로
증거 했던 복음, 그리고 부흥의 시기마다 선포되어 수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했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라는 문장은 부활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문맥을 혼잡하게 했다.
“예수가 선포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선포한 복음’ 과 ‘사도가 선포한 복음’의 미묘한 관계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김성로는 사도행전 20:21절을 각색해서 제시했다.
성경본문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다.
그런데 김성로는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할 때, ‘회개와 시인’으로 바꿨다.

김성로는 일반 성경 공부 교재와 달리 ‘자기주장’을 제시하고 성경본문을 증거 구절로
제시하는 방식을 취했다.
일반 교재는 ‘성경 내용’을 요약하고 성경 본문을 찾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성경 본문의 순서를 바꾸어 내용을 제시하거나,
없는 내용을 성경 본문에 첨가해서 주장하는 경향이 너무 많다.


1과. 부활-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5-14쪽)(제자훈련시리즈1.2015.5최신)

김성로는 부활이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라고 제시한다(5쪽).
우리는 앞에서 보편구원주의가 있음을 제시했다.
처음 도입에서 보편구원주의에 대한 견해를 ‘부활’ 과 ‘성경’ 사도행전 17:30-31을 근거로 제시했다.
교재 ‘처음 도입’에 ‘부활’을 놓은 것도 독특한데,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부활 도식(보편구원주의)도 독특하다.

김성로는 그림 자료를 잘 활용한다(6쪽).
복음 이해를 위해서 그림 자료를 사용하는 것은 쉽게 설득력을 제공할 것 같지만,
복음을 왜곡하고 축소하는 부작용을 갖는다.
용이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림을 사용하는 것인데, 잘못된 그림은 더 빠르게 부패시킨다.
그림(1)은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다”는 것으로 제시했다.
그것을 부활로 정의한다면 복음 도식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부활’, ‘승천’ 과 ‘천상통치’라고 해야 한다.
1과에서는 오심과 부활에 대해서만 제시하고 있다.
‘오시고 가신 뒤’에 화살표가 사라져야 하는데, 그림에 화살표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필자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현재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것이다.

김성로는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의 표적을 통해서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6쪽).
예수를 믿는 것은 ‘성령의 작용과 능력’인데, 여전히 ‘부활 표적’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성경 본문까지 제시하는 것은 무도한 행동이다.
고린도전서 15:3-4절에서 부활이 성경대로 이루어졌다는 증거이지,
부활 표적으로 예수를 믿도록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2:38-40은 예수께서 표적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에게 보여줄 유일한 표적으로
요나의 표적(부활)을 제시하는 것이다.
부활의 표적을 보고 ‘깨달아서’ 믿는다는 영지주의적 구도이다.
그 표적은 누가 보여줄까?

김성로는 부활이 ‘성경의 예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수의 성육신과 부활을 제시한다.
예수가 자신이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활을 통해서 증명하겠다고 하는데(8쪽),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다.
김성로는 부활의 표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을 위해서
성경 예언이 그런 방식인 것처럼 유도한다(6-8쪽).
성경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고, 오신 메시아의 공생애이고,
교회와 다시 오심에 대한 예언으로 보아야 한다.
믿음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을,
김성로는 ‘누구든지’ 성경의 예언을 통해서 부활을 알 수 있고,
부활의 표적을 통해서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성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후에야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는데(10쪽),
부활한 후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참고 고린도전서 15:6).
김성로는 요한복음 2:22, 20:26-28을 제시했는데(11쪽),
요한복음 2:11, 4:53, 10:42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는 보고가 있다.

김성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다”고 제시한다(11쪽).
김성로는 사도행전 1장, 2장, 3장을 근거로 제시했는데(11쪽), 부활 증거는 초기에 한정되어 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10: 34-42절에서 증거한 “그(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했다”(43절). 믿는 사람들이 받은 죄사함을 증거했다.
부활을 증거의 수단으로 그를 믿어 죄사함을 받도록 증거했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주신 다는 것’이지, 김성로처럼 ‘부활 자체’를 증거한 것이 아니다.
독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것” 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죄사함”의 차이를 분별해야 한다.

제자들이 고난을 받은 이유는“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12쪽),
고난받는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살아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고난의 당위성’을 교재 도입 초기에 제시하는 것은 합리적인 배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성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제시했다(13쪽).
매우 큰 믿음 고백으로 마치는데, 앞의 오류들을 ‘한 묶음’에 해소할 수 있는 문장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는 큰 선언으로 앞의 모든 것을 묶는 것이다.
김성로는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는 “요세푸스와 두산백과사전”을 제시했다(14쪽).
요세푸스는 이해할 수 있는데, 두산백과사전을 신학 사상에서 자기 증거로 제시하는 모습에서
김성로가 신학하는 자세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부활의 당위성을 백과사전으로 전개하는 자세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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