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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5 20:58
이단대처와 성경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5]성경의 바른 진리를 드러내는, 다른 번역본 사용하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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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서 1장의 '시험'에 대한 말씀


이단대처와 성경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5]성경의 바른 진리를 드러내는, 다른 번역본 사용하기

장운철 목사  |  Kofkings@naver.com

 
   
 

 
출처: 기독교포털뉴스 카카오톡 아이디: kportalnews

5번째 연재 글입니다. 이제 ‘관주 사용하기’에 이어서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를 시작합니다. 한국어든 영어든 다른 번역 성경이 우리에게 많이 주어졌습니다. 정말 기쁜 일입니다. 그 여러 성경을 참고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이단 대처는 물론 성경 공부를 위해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필자 주>

목차
1. 관주 사용하기
1-1 모세 이야기
1-2 니고데모 이야기
1-3 가인과 아벨 이야기
1-4 유월절 이야기
1-5 마태복음 이야기
1-6 홍길동 씨 이야기 1
 1-7 성구사전 사용하기
1-8 관주의 한계

2. 다른 번역서 사용하기
2-1. ‘시험’에 대해서
3. 문맥 따라 성경읽기
4. 참고서 활용하기

2.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

이단 대처와 개인 성경 연구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두 번째는 바로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다. 이런 수고를 하는 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냥 참고서, 즉 주석서를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으리라 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견해, 주석서를 참고하는 것은 우리의 부족한 성경 이해를 돕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을 스스로 조금씩 깊이 있게 연구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쁨이요, 또 은혜다. 자신이 연구해서 찾은 결과가 주석서와 비교해서 동일할 때 갖는 그 기쁨과 영광은 해 본 사람만이 맛 볼 수 있는 일이다. 사실은 전문가들도 이와 같은 방법을 기초로 하여 연구하고 있다. 우리도 그 길을 조금씩 배워나가는 중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첫 번째 ‘관주 사용하기’와 두 번째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 등은 나 자신 스스로 성경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전문가들처럼 말이다. 이 능력이 높아질수록 주석서를 참고하는 안목도 커진다. 어떤 주석서를 보아야 할지, 어떤 부분을 좀더 참고해야 할지에 대해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나 자신이 스스로 주석(주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 기쁨의 말씀 연구 작업이다.

대부분 한국교회 성도들은 개역한글성경 또는 개역개정판성경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또는 공부하다가 종종 ‘이 구절은 무슨 뜻일까?’라는 궁금함이 들곤 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그 구절의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를 함께 알고 싶은 것이다. 성경이 쓰일 당시 백성들(1차 독자)은 어떻게 그 구절을 이해했으며, 오늘 우리(2차 독자)에게 그 구절은 어떠한 의미로 주어졌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 곧 성경 연구의 맥이다.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 말이다. 이단 대처를 위한 성경 연구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 뜻일까?’의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성경 구절의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를 함께 살펴봄으로 올바른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다. 지금 우리가 시도해 보려는 방법이다. 우리 모두 성경 언어인 헬라어(신약)와 히브리어(구약)에 능통하면 참 좋을 일이다. 각 성경 구절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의 문화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성도들은 성경 언어를 배운 바가 없다. 그래서 알 수 없다. 그러면 이 부분에서 성경 연구를 못하다는 말인가. 이단 대처를 위한 일도 축소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성경 말씀의 참된 의미를 찾는 일을 중단할 수는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다양한 다른 언어의 번역 성경이 주어졌다. 비록 간접적이지만 우리는 이 다양한 번역 성경을 통해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성경 연구 방법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각 개인의 성경 연구는 물론이고 또 이단 대처를 위한 성경 연구도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번역 성경은 주로 한국어로 된 것과 영어로 번역된 것들을 살펴 볼 것이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 영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주된 초점이다. 직접 그 예를 따라가 보자.

2-1. ‘시험’에 대해서
 야고보서 1장 1-18절까지를 살펴보자. 아래 본문을 읽고 ‘시험’이라는 단어가 몇 개 나타나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펜을 상용하여 그 단어에 표시해 놓으면 더욱 좋다.

약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약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약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모두 7개가 등장한다. 위 본문을 꼼꼼하게 읽어 보신 분은 ‘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느낌을 못 받았다면 잠시 독서를 중지하고 다시 한 번 위 본문을 읽어보기 바란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12절)는 말씀과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한다’(13절)는 말씀이 서로 충돌하지 않은가. 12절에서는 ‘시험’이 마치 복의 통로처럼 여겨지는데 13절에서는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는다고 했다. 뭐 어떻게 이해하라는 말인가. 야고보서 1장에 나타난 ‘시험’은 긍정적인 의미인가 반대로 부정적인 의미인가? 시험이라는 단어 7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2절 - 긍정적,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 함.
12절 - 긍정적,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라 함.
13절 - 부정적, 4번 나옴. 하나님과 관련 없는 시험이라 함.
14절 - 부정적, 시험은 욕심에 의한 것이라 함.

2절과 12절은 긍정적인 의미의 시험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 그 시험을 만나면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또 그럴 수 있다. 잘 참고 견디기만 하면 그 시험이 오히려 큰 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험’인데 13절과 14절로 오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이때의 시험은 악(사탄)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그런 시험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 시험은 우리들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도 했다. 매우 부정적이다. 의미는 이렇게 정반대인데 단어는 동일하게 하나다. 바로 ‘시험’이다.

물론 위 문단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는 시험과 사탄이 주는 시험으로 구분하여 문장을 잘 읽고 이해하면 된다. 성경이 기록될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또한 오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 부분을 접근해 보자. 이것을 통해 우리의 성경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 보자. 풍성한 성경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 영어 성경에 야고보서 1장의 '시험'을 영어성경은 때론 'trials', 때론 'tempt'로 번역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다른 번역 성경이다. 먼저 영어 성경이다. 우리 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가장 많이 읽혀진다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성경이 대표적이다. 약1:2절과 12절 그리고 13절과 14절만 살펴보겠다. 아래와 같다.

약1:2절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and sist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약1:12절 Blessed is the one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having stood the test, that person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the Lor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약1:13절 When tempted, no one should say, “God is tempting me.” For God cannot be tempted by evil, nor does he tempt anyone;
약1:14절 but each person is tempted when they are dragged away by their own evil desire and enticed.

영어 문장을 해석해 보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잘 해석할 수 있다면 제일 좋다. 지금은 적어도 단어의 형태를 구분할 수만 있으면 된다.

영어 성경(NIV)을 보니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한국어 성경에 ‘시험’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영어 성경에는 각각 두 개의 단어로 구분되어 나타난 것이다. NIV는 ‘시험’이라는 하나의 한국어 단어를 각각 ‘트라이얼’(trial)과 ‘템프트’(tempt)로 구분했다. 영어 단어의 문법(현재형, 과거형, 분사 또는 단수 복수 등)에 대해서도 논하는 것은 생략하겠다. 영어 단어의 형태만 살펴보자. 동일한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각각 그 단어들을 ‘점검’과 ‘유혹’ 정도로 해석을 하면 좋을 듯하다. 이때는 영어 사전을 동원하면 된다. 이렇듯 NIV의 도움을 받아 ‘시험’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다시 ‘점검’과 ‘유혹’으로 구분하여 한국어 성경을 다시 읽어보자. 2절과 12절은 긍정적인 개념의 ‘점검’으로 번역하여 읽고, 13절과 14절은 부정적인 ‘유혹’으로 번역하여 읽어볼 수 있다. 오늘의 의미가 보다 확실히 살아나지 않은가.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 게 바로 다른 번역 성경을 활용하는 ‘맛’이다.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자. 심화학습(?)이다. 영어 성경은 방금 사용된 NIV 이외에 NRSV, KJV, NKJV, NLT, RSV, NASB, ESV, NET, GNB 등 종류가 매우 많다. 각 성경마다 성향이 조금씩 다르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본 특강을 계속 읽어가시면 발견하게 된다. 다른 영어 성경도 위 NIV처럼 동일하게 번역을 했을까? 살짝 궁금해진다. 어떻게 할까. 직접 살펴서 비교해 보는 일이 제일 좋겠다. 이 많은 성경을 어떻게 볼 수 있나? 요즘 인터넷에서 대부분의 성경이 공개되어 있다. 그것도 무료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다국어 성경’ 등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여러 개의 인터넷 사이트가 나타난다. 그곳을 통해 다양한 영어 성경은 물론 여러 종료의 한국어 성경도 볼 수 있다. 몇 가지 영어 성경을 살펴보자. 물론 이때도 단어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기 때문에 영어에 대해 그리 크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아래는 NRSV성경이다.

약1:2절 my brothers and sisters, whenever you face trails of any kind conder it nothing but joy
약1:12절 Blessed is anyone who endures temptation.

약1:13절 No one, when tempted, should say, "I am being tempted by God"; for God cannot be tempted by evil and he himself tempts no one
약1:14절 But one is tempted by one's own desire

오! 흥미로운 것이 하나 발견되었다. 12절에서 NRSV는 ‘tempt’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앞서 NIV에서는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trial’을 사용했는데 NRSV는 부정적인 단어인 ‘tempt'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앞서 NIV를 살펴보았을 때만 해도 다른 번역 성경을 참고한다는 게 성경 본문 이해를 위해 이렇게 풍성함을 준다며 좋아했는데 이제 다시 혼동되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성경 번역자가 실수를 한 것일까? 그럼 어떤 성경 번역자가 그렇게 한 것일까. NIV일까 NRSV일까. 우리는 실수라고 보기 힘들다. 번역자의 실수나 잘못보다는 다른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다른 영어 성경을 더 살펴보자. 점점 더 깊이 들어간다. 영어성경 중에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KJV을 열어보자.

다른 여러 영어성경 중 KJV을 보자고 한 이유는 그것이 ‘직역’ 성경에 가깝기 때문이다. 직역 성경일수록 원문성경(히브리어, 헬라어)에 가깝다는 의미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다만 ‘직역’ 성경인 KJV은 성경 원문과 가깝게 번역된 성경이라는 점만 기억하자. 계속해서 아래 KJV의 본문을 살펴보자.

약1:2절 My brethren, count it all joy when ye fall into divers temptations; 
약1:12절 Blessed is the man that endureth temptation: for when he is tried, he shall receive the crown of life, which the Lord hath promised to them that love him.

약1:13절 Let no man say when he is tempted, I am tempted of God: for God cannot be tempted with evil, neither tempteth he any man:
약1:14절 But every man is tempted, when he is drawn away of his own lust, and enticed. 

이게 어찌된 일인가. KJV에서는 모든 ‘시험’이라는 단어를 ‘tempt’라고 모두 동일한 단어로 번역을 해 놓았다. 무슨 의미인가. 그렇다. 원문 성경(헬라어)에도 동일한 단어로 기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직접 원문성경을 읽지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껏 살펴본 것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종합해 볼 수 있다. 약1:1-18절 본문에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모두 7개 등장한다. 한국어 성경에서 단어의 형태는 모두 동일하다. 그런데 그 의미는 두 가지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이에 대한 구분은 문맥을 통해 각자가 실행하면 된다. 야고보서 당시 사람들에게 그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은 어느 정도 구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NIV에서는 오늘 독자(2차 독자)인 우리를 위해 확실히 구분하여 번역해 놓았다. 좋은 배려다. 성경 읽는 오늘의 독자들을 위해서다.

우리는 그 당시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하는 궁금함도 생긴다. 이를 위해 KJV을 살펴보았다. KJV에서는 모두 ‘tempt’라는 동일한 단어로 기록되었다. 헬라어 원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KJV은 그것을 위해 ‘직역’으로 번역된 성경이기 때문이다. 굳이 헬라어 원문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아래에 그것을 돕는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해 놓았다. 그것을 참고하면 된다. 참고로 헬라어 원문에서 약1장의 ‘시험’은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ο&#987;)’라는 한 단어로 기록되어 있다. KJV과 역시 같다.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의 사람들도 오늘 한국어 성경을 읽는 우리들과 어쩌면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할 수 있다. ‘시험’이라는 한 단어를 문장의 흐름에 따라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을 구분해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유연한 특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어의 우수함이 조금은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럼 NIV와 NRSV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성경이 약1:12절에서 ‘시험’을 각각 ‘trial’과 ‘tempt’로 다르게 번역을 해놓았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아래와 같다. NIV와 NRSV 그리고 한국어 성경이다.

약1:12절 Blessed is the one who perseveres under trial(NIV)
약1:12절 Blessed is anyone who endures temptation(NRSV)
약1: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개역개정)

정말로 흥미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 두 영어성경 번역자는 한 단어를 왜 다르게 번역했을까 하는 점이다. 각 번역자들의 강조점이 각각 다른 데 있다고 보여 진다. 한국어 성경은 이렇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이다. 이렇게 접근해 보자. 우리는 인생 중에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것을 ‘시험 당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 시험의 출발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사탄으로부터 온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옆 사람의 자리를 뺏어라”나 “이웃을 위로해 주어라”는 등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시험들은 그 출처를 구분하기 정말 어렵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 중에 만나고 싶지 않은 어려운 일은 그냥 ‘시험’일 뿐이다. 대부분의 시험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그 시험을 인내하고 참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말이다. 그 뒤에 생명의 면류관이 있기 때문이다. 약1:12절의 ‘시험’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NIV 번역자는 그 시험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 ‘trial’로 번역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NRSV 번역자는 부정적인 관점까지 포함하여 ‘tempt’로 이해했다고 여겨진다. 사탄으로부터 온 시험도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잘 참으면 그것이 복이 된다는 점이다. 그럴 수 있지 않은가. 각 번역자의 강조점이 다를 뿐이다. 각자의 관점에서 오늘의 독자가 성경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들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다. 바로 원문 성경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신약 헬라어 성경에는 야고보서 1장의 ‘시험’이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점이다. 과연 KJV처럼 모두 동일한 단어로 기록되어 있는지 아니면 NIV나 NRSV에서 보여준 것처럼 두 개(또는 그 이상)로 표현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원문 성경을 읽거나 해석해야 하는 부담을 버릴 수 있다. 그 형태만 잘 따져보면 가능한 일이다. 정말 당행한 것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원문 성경도 이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도해보자.

참고로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www.blueletterbible.org와 www.biblehub.com 등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도 위 사이트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만약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는 상황이 아니라도 큰 문제는 없다. 스마트폰에도 이미 다양한 ‘앱’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는 인터넷 사이트 www.blueletterbible.org에서 제공해 주는 ‘앱’을 스마트폰과 태블린PC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 ‘앱’ 이름은 ‘BLB’다. 안타깝게도 안드로이드 폰에서는 그 앱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애플사 제품에서만 구동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 ‘시험’이라는 단어를 <성구사전>에서 찾아보면 100개가 넘게 발견된다. 그중 맨 처음 나타나는 문장이 창세기 22:1이다. 아래와 같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22:1)

지금까지 야고보서를 통해서 살펴본 것을 바탕으로, 위 ‘시험’을 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의 ‘trial’에 해당이 될까 아니면 부정적인 의미의 ‘tempt’에 해당이 될까? 잠시 중단하고 자신이 먼저 판단해 보자.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직접 시험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즉 시험의 출처가 확실하게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으니 긍정적인 의미의 ‘trial’이나 ‘test’ 등으로 번역되었으리라 본다. 이제 직접 살펴보자. 먼저 NIV성경이다.

“Some time later God tested Abraham. He said to him, ‘Abraham!’ ‘Here I am,’ he replied”(창22:1 NIV)

역시 예상한대로다. NIV는 긍정적인 의미의 영어 단어인 ‘test’로 번역해 놓았다. 그렇다면 다른 영어 성경은 어떠할까? 위에서 참고했던 NRSV와 KJV을 함께 살펴보자.

“After these things God tested Abraham. He said to him 'Abraham' And he said 'Here I am' ”(창22:1 NRSV)

“And it came to pass after these things, that God did tempt Abraham, and said unto him, Abraham: and he said, Behold, here I am.”(창22:1 KJV)

위의 야고보서와 비슷하다. NRSV도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인 ‘test’로 번역을 한 반면, KJV은 ‘tempt’로 번역했다. NRSV는 오늘의 독자를 위해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를 해 주었지만, KJV은 원문 성경에 충실하게 번역을 했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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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철 목사는 월간<현대종교>, 월간<교회와신앙>, 주간<교회와신앙>, 인터넷신문<교회와신앙>에서 이단사이비 문제 전문 취재기자로 20여 년 간 사역을 해 왔다. 신천지, 구원파, 하나님의 교회 등 이단 사이비 문제의 현장을 직접 잠입 취재, 보도했다. 또한 이단 사이비의 핵심 교리들을 분석, 비판하는 다수의 글도 발표했다. 신학교 강의는 물론 각 지역 교회와 연합 기관의 수련회와 집회에서 특강을 해 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B.A.)와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TH.M)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Azusa Pacific Uni., M.A.R)에서 공부를 했다. 두 편의 논문,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최근 이단사상 비판>과 <An Evangelical Christian Perspective on Money>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신천지 포교 전략과 이만희 신격화 교리>(장운철, 진용식, 정윤석 공저, 한국교회문화사, 2007),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을 읽자>(장운철, 솔로몬, 2012),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 이야기>(장운철, 부흥과개혁사, 2013) 등이 있다. 지난 2007년 서울에 만나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이단특강을 원하는 경우 이메일로 연락하면 된다(kofking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