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2-02-02 15:14
‘사랑 학교’제4부 사랑의 최종결론-성숙=사랑이 전부다 13. 사랑의 연단은 왜 오는가(아 5:1-9)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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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학교’ 제 4부 사랑의 최종 결론- 성숙


“하나님의 ‘사랑 학교’의 최종 열매, 사랑의 성숙!”


13. 사랑의 연단은 왜 오는가(아 5:1-9)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사랑하면 다가오는 불청객이 하나있다. 사랑하여 결혼해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연단(갈등과 시련)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결혼은 단순하지가 않다. 결혼하면 새로운 문제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른 성, 다른 환경, 다른 성격, 다른 체질, 다른 가정, 다른 지역, 다른 식성, 다른 취미를 가졌다는 것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반드시 시련과 갈등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또한 결혼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되고 익숙하게 되면서 서로 신비스럽기도 하고 몰라서 뜨거웠던 설레임과 열정은 조금 식기도 하고 무덤덤해지기 시작한다. 그때 시련과 갈등이 시작된다.

  신앙의 연단도 이와 유사하다. 신앙의 첫사랑은 무덤덤해지고 신앙의 뜨거움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때 하나님은 연단(시련과 갈등)을 통해 사람들을 훈련시킨다.


1) 사랑은 함께 누리는 것(1절)

  결혼하면 신랑은 동산(신부를 말함)을 누린다. 몰약과 향재료(아름다운 덕행을 말함)를 누리고 꿀송이와 꿀과 포도주와 젖을 누린다. 이것들은 감미로움과 아름다음과 삶의 윤활유와 위로와 격려와 맛을 상징한다. 하나님 나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결혼하면 혼인 잔치를 누린다. 결혼 하객으로 참여한 모두가 사랑 안에서 즐겁고 기쁘다. 천국 잔치에 참여한 자들도 사랑의 하나님 안에서 누구나 복 되고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런데 바로 함께 한다는 사실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어떤 파장이 생기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2) 사랑을 함께 누리되 갈등과 시련도 함께 시작되는 사랑의 연단 과정(2-7절)

  결혼하면 드디어 사랑하는 이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2절)가 들린다. 문을 열러달라고 하소연한다. 사랑하는 이는 늘 누이요, 사랑하는 자요, 비둘기 같고, 모든 게 완전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랑에는 찬란한 햇빛만 있는 게 아니다. 머리는 이슬에 젖고 머리털은 밤안개에 젖으며 상대방이 애절하게 문을 열어달라고 신음하는 아픔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한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부르고 자녀가 부모를 부르듯 하나님도 때로는 사랑하는 자를 문 밖에 서서 부르며,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을 애절하게 부를 때가 있다.

  결혼하면 놀랍게도 사람은 조금 변한다. 사랑하는 이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듣고도 가끔 외면하는 경우가 생긴다(3절). 사랑이 무덤덤해질 때 이런 시련이 찾아온다. 자면서 깨어있어 사랑하는 이의 간절한 소리를 들었으나 잠을 좀 더 자고 싶고, 옷을 다시 입기가 귀찮고, 씻은 발이 더러워지는 것이 귀찮다. 문을 열수 없다고 핑계를 대며 게으름으로 우물쭈물하는 신부의 모습을 보라. 마치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은 엉터리로 신앙생활을 하며 이리저리 핑계거리를 찾고 우물쭈물하는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유사한가!

  이런 사랑의 무덤덤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유가 한 가지가 아니다. 아주 다양하다. 게으름, 따분함, 지루함, 갱년기, 무관심, 냉담, 무사안일, 나태, 신앙의 식음, 이기심, 자신의 안락과 편안함 추구 등등 다양하다.

  사랑의 나태함은 결국 사랑의 분열을 초래한다. 사랑은 문을 열고 박차고 나갔다. 게으름을 피우다 뒤늦게 문을 열어도 소용없다("때는 늦으리"). 사랑하는 이가 절대 떠나가는 지경에 까지 이르도록 환경을 만들지 말라! 너무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우다 신앙의 때를 놓치는 신자들이 있음을 기억하라.

  사랑이 떠나가면 어떤 결과가 올까? 사랑이 떠나면 당연히 시련이 찾아온다. 사랑은 떠나고 시련은 밀려 온다. 때로는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른다. 본문의 주인공은 낯선 야경군들과 경비병들에게 봉변을 당하였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신자는 세상과 지옥 마귀의 밥이 되는 것이다.



3) 사랑의 회복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

  사랑은 반드시 회복 되어야 한다. 세상의 밥, 마귀의 밥, 지옥 자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연단과 회복 과정이 필요하다. 사랑은 잃으면 사랑을 되찾기 위한 사랑의 갈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고난과 시련 가운데도 놀라운 역설적 은혜가 있다. 때론 시련과 징계도 은혜가 된다.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고통을 겪어 본 사람 치고 그 고통을 다시 겪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고통과 고난이 무의미 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또한 없다.

  회복을 위한 갈망이 사랑을 되찾게 만든다.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사랑 회복의 계기가 된다.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자들을 붙들고 자신의 신랑 솔로몬을 만나면 내가 사랑 때문에 병이 났다고 전해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다. 신자가 당하는 고난과 시련은 하나님께 애절하게 매달리는 계기가 된다.
 
 시련을 극복하면 사랑은 더 단단해 진다.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하게 굳어지듯 사랑은 더욱 견고해진다. 이 사랑의 회복의 비말 또한 누구도 막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둘만의 은밀한 비밀이요 사랑의 관계이다. 세상은 사랑하는 두 사람만의 은밀한 사랑을 잘 모른다. 세상은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의 그 은밀한 사랑을 잘 모른다.


  사랑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효도가 무엇인지 조금 깨달을 즈음 부모님과 그만 작별하는 것과 유사하다.

  신앙적 연단의 유익도 유사하다. 신앙적 시련을 통과할 때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게 되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절절히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롬 5:4; 히 5:14).



조덕영ki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