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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21 23:56
회복해야 할 신혼의 사랑(엡 5:22, 25)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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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교수


회복해야 할 신혼의 사랑(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2, 25)


 
인간이 하나님과 최초로 차린 신혼 살림집은 에덴동산이었다. 그곳은 네 개 강 근원을 이루는 물가로서 각종 나무가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비옥한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직접 창설하시고 그곳에서 사람이 살게 하셨다.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도록 마련된 에덴은 자연 속의 열린 정원이었다.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창조하셨다. 아담은 그 여자를 보자마자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하면서 '한 몸'을 이룬 부부간의 사랑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첫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벌거벗고 있었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서로가 사랑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기에 감추거나 부담스러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것이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사랑 안에서 한 몸을 이루며 시작한 신혼의 꿈과 같이 달콤한 삶이었다.

 
그런 신혼의 아름다움을 깨뜨린 것은 뱀의 유혹이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는 뱀의 유혹에 빠져 아담의 아내가 하나님의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범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인간에게 찾아온 결과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핑계였다.


 


범죄로 눈이 밝아진 인간은 하나님이 두려워 떨면서 나무 사이에 숨어버렸다. 더 이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산에서의 산책을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서로 마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벌거벗음 알게 되었고, 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두 사람은 돕는 배필의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그런 죄를 지었냐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아담은 그 책임을 하나님과 아내에게 떠넘기게 여념이 없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그것은 더 이상 아내를 보호하고 돌보는 배우자로서의 자세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피해보려고 애쓰는 가련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담은 근본적인 원인제공이 여자를 창조하여 주신 하나님께 있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감사와 사랑의 고백은 실종되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법정 공방만 있을 뿐이었다.

 
죄를 범한 인간이 보여준 두 가지 결과는 역으로 신혼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곧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없는 것과 함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순수한 첫 사랑의 모습이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고 서로에게 부담이 없음을 의미한다. 온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순수함을 말하고, 그런 순수함은 어린아이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천국의 주인공이면서 또한 천국에서 큰 자로 평가되기도 한다(마 18:4).

 
사랑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애 곧 '헤세드'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헤세드'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우리의 책임을 직접 몸으로 받아내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우리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직접 그 책임을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신혼의 순수한 사랑은 다음 두 가지 점검표로 확인할 수가 있다.

 
첫째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사랑이다. 신혼의 사랑은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도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장점과 함께 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단점을 구차하게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 신혼의 순수한 사랑이다. 그것은 상대방이 모든 단점은 사랑으로 받아주고 감싸줄 뿐 아니라 장점은 적극적인 칭찬으로 높이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완전해서가 아니고 서로의 부족을 감싸고 덮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배려가 있어서이다.

 
둘째로, 모든 책임은 상대방인 아닌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사랑이다. 실제로 여자가 뱀의 유혹에 빠진 것은 아담이 아내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다. 아담은 그런 점을 고려했다면,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당연히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아담은 가장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망각한 셈이다.

 
순수한 신혼의 사랑을 규정하고 있는 위의 두 가지는 바울이 강조한 남편의 아내 사랑과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을 설명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바울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하였다. 여기에서 남편의 아내 사랑은 곧 아내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는 신체적으로 약하면서 정서적으로는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아내는 남편의 보호와 책임을 필요로 하는 약자이다. 아내는 남편의 책임감 있는 사랑이 무엇보다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남편의 아내 사랑은 자연스러운 권면이다.

 
바울은 아내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였다. 여기에서 복종이란 아내의 남편에 대한 겸손한 배려를 의미한다. 남자로서 남편은 자존심이 강하고 기질도 활동적이어서 일 하면서 곧잘 실수를 저지르기가 쉽다. 그럴 때에 아내의 소리 없는 배려와 따뜻한 감싸줌이 남편의 마음을 흔들리지 않도록 받쳐준다. 그런 가운데에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부부의 서로 다른 성향과 기질을 조화롭게 활용할 것을 권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의 아내 사랑과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은 누가 먼저이냐는 우선순위 싸움도 아니고 누가 더 우월하냐의 주도권 싸움도 아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충실을 지적한 것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권 교수님은 제 학교 동문 선배이시고 고향 충주 선배이시며 고향 친구인 권우석 목사(현 창원순복음교회 담임 목사)의 형님이기도 합니다! 귀한 글, 게재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조덕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