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6-11-18 12:00
첫 사랑의 회복(계 2:4-5)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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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해야 할 신혼의 사랑(6)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4-5)

 

에베소교회는 칭찬과 함께 책망을 받은 교회이다. 에베소교회가 칭찬받은 것은 이내로 신앙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에베소교회는 아시아의 7대교회 중에서 가장 세속적이면서도 우상숭배와 향락에 빠져있던 영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었던 교회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에베소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한 교회였다.


비록 아시아 지방의 행정 수도는 버가모이었지만, 에베소는 그 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로서 '아시아의 빛'이라고 명성을 얻고 있었다. 요한 당시 에베소는 아시아의 관문 역할을 하였던 가장 큰 항구 도시였다. 그래서 바빌론 지역을 포함하여 모든 지역의 도로는 에베소로 이어졌다. 그런 지리적 환경 속에서 에베소는 자연스럽게 모든 지역의 부가 집결하는 풍요의 도시이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에베소는 정치적으로 로마제국 안에서 몇 개가 되지 않는 자유도시라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만큼 이 도시는 로마제국에 충성과 봉사가 인정되고 있었다. 자유도시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자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서 로마군대의 주둔도 없을 뿐 아니라 지방장관이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재판을 실시하는 곳이었다.


당시 에베소는 이방신 숭배와 황제숭배의 중심지였다. 특히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 숭배의 중심지로 유명하였다. 특히 이곳에 세워진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이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데미 신전의 길이는 130m이고 너비는 67m였으며 120개의 둥근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높이가 18m인 모든 기둥은 여러 나라 왕들이 헌납하여 만든 것들이었다. 아데미 신전 이외에도 에베소에는 황제 크라디우스의 상을 모신 신전이 있었고, 후에는 하드리아누스와 세베루스의 황제 상이 더해지기도 했다. 이렇듯이 에베소는 이교 숭배가 성행하였던 곳이다. 그러다보니 에베소에는 미신이 만연하였던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특히 '에베소 문서'로 불리는 부적은 만병통치의 효능과 인간만사를 해결해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적 구매를 위하여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에베소교회는 복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믿음과 사랑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었다. 바울은 이곳 에베소에서 삼년동안 머물면서 정착 목회를 실시하기도 하였다(행 20:31). 바울의 뒤를 이어 디모데가 에베소교회를 맡으면서 에베소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딤전 1:3).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특별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에베소를 지나쳤지만, 밀레도로 장로들을 초청하여 작별인사를 나누었다(행 20:17-38). 만년에 요한은 에베소교회를 맡아 목회하기도 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한을 따라 에베소로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책망할 것이 있었다. 여기에서 '책망할 것'로 번역된 '카타 수'는 '너의 거슬리는 점'을 의미한다. 에베소교회가 책망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에베소교회가 버린 처음 사랑은 무엇일까? 처음의 뜨거운 열심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교제와 형제사랑이라는 처음 감격을 상실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일 것이다. 초창기 에베소교회는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단결하였다. 그때에는 다툼도 없고 오르지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를 돕는 아름다운 관계였다.


그러던 그들이 교회에 파고든 이단자들과 대항하며 그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교회 내의 갈등이 확산되었다. 그들의 비판적인 자세는 급기야 그들 자신들의 뜨거운 신앙마저 차가운 자세로 바꾸어놓았다. 정통신앙을 지켜내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지만, 그런 결실 뒤에 뜻하지 않는 신앙적 그늘이 생겼다. 이단과 대처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영적 상처라는 대가를 치룬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이 늘 조심하며 자신을 지켜야할 이유이다.


에베소교회가 상실한 첫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생각하라'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므네모뉴오'는 '기억하다' '상기하다' '마음에 두다'를 뜻한다. 이에 대한 히브리어 '자카르' 역시 '기억하다'를 의미한다.


책망의 대상이었던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했던 신앙인들이다. 그러므로 그들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사랑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것이 회복의 첫 단계이다. 그런 점은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심으로 낙심하여 옛 직업으로 되돌아간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첫 사랑은 과거의 추억 속에 그냥 묻어두지 말고 오늘로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의 의미이다.


둘째는 '회개하라'이다. 여기에서 '회개하다'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메타노에오'인데, 마음과 감정의 구조를 바꾸는 '메타노이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원리와 실제 모두를 변화시키는 전인적인 개혁을 뜻한다. 이에 대한 히브리어 '테슈바' 역시 방향을 바꿈으로 되돌아옴을 의미한다. 회개는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마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집 나간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과감하게 돌아오는 것처럼, 삶의 전체 방향을 하나님께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처음 행위를 되찾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억과 회개의 결과이기도 하다. 올바른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변화된 삶은 회개의 명백한 증거이다. 내면의 변화가 외적 변화라는 실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회개를 통한 회복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

 

<*권 교수님은 제 학교 동문 선배이시고 고향 충주 선배이시며 고향 친구인 권우석 목사(현 창원순복음교회 담임 목사)의 형님이기도 합니다! 귀한 글, 게재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조덕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