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6-04-03 15:15
실연상처 오래 품을수록 결혼이 더뎌진다(교제 실패 결혼 장애물과 지혜로운 극복법)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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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셉 목사(시인/소설가/결혼사역자/반동성애운동가,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www.hesedwem.net,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www.antihomo.net).



실연상처 오래 품을수록 결혼이 더뎌진다

 





오늘날처럼 이성 간 연애가 자유로운 시대엔 교제실패로 인한 후유증이 적을 것 같지만, 실제로 미혼청년들과 상담해보면 그렇지 않은 걸 발견한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속 러브스토리는 사랑이 결코 쉽지만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데, 특별히 애틋한 사랑을 하다가 깨졌을 경우엔 더욱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더욱이 결혼까지 생각하며 깊은 교제를 하다가 헤어졌을 경우엔 그 후유증이 오래가고 어떤 경우엔 일평생 지속하는 걸 본다. 이러한 아픔이 결혼의 걸림돌로 작용해 앞길을 가로막고 있음에도 그것을 떨치지 못하는 건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 집착 때문이다.

 
세 번째로 살펴볼 결혼장애요소는 교제실패 장애물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이외로 많고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결혼은 신기루 또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결혼을 눈앞의 현실처럼 여기다가 수포로 돌아가고 난 뒤 느끼는 허탈감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당사자의 심적 아픔을 대수롭잖게 여기며 얼른 잊고 새사람을 만나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행동이다. 아픈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그 상처를 잊기 위해 얼른 다른 이성을 만나야 한다고 재촉하는 건 오히려 반발을 일으키고 역효과를 초래하는 지혜롭지 못한 처신이다.

 
과거 이성교제 실패의 충격에서 오랜 시간 헤어나지 못하고 후유증을 앓는 건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얼마 안 걸려 쉽게 극복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객관적으로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긴 시간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느냐보다 얼마나 스스로 빨리 과거의 추억과 결별하느냐, 과거실패를 실제현실과 구별하느냐에 좌우된다. 아무리 주위 성화에 시달려도 마음속에서 정리하지 못한 과거의 애인(愛人)이 마음속에 머무는 한 새 출발은 요원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새로운 이성을 만나도록 주선해도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물러서거나 내쫓고, 아예 그런 기회마저 봉쇄해버린다. 그로 인해 미혼인 그(그녀)는 점점 주변으로부터 고립돼버린다.


 


지금껏 이별한 애인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미혼자들을 만나 결혼상담을 해봤기에, 명쾌한 결론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필자 또한 10년 이상 결혼이 늦어진 원인이 그러한 요소에 기인했었기에 그들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과 이미 떠나 버린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새로운 출발을 고대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교제했던(또는 짝사랑했던) 옛 애인에 대해 미련을 둬왔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치 못하는 것이다. 아니 막상 마음을 정리하고 새 출발하려고 하지만, 막상 이성을 만나 교제할라치면 이미 헤어진 옛 애인의 얼굴이 떠올라 집중을 흩트리고, 교제진전을 방해하고, 얼마 못 가 회의에 빠지도록 부추기곤 했던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안타까우면서도 불행한 모습이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일 경우라 할지라도, 훗날 이렇게 결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면 당사자에게 비극이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애절하고 드라마틱할 경우 그 운명론적 미학(美學)은 더욱 증폭되지만,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결말이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결과가 된다. 오늘날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 중에 이처럼 실패한 사랑에 대한 미(未)정리와 실연의 상처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결혼이 지연됨은 물론, 새로운 환경이 자신에게 안겨줄 행복을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이는 한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자신의 연인(戀人)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며, 비록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사람은 아니지만, 막상 새로운 연인을 맞아들이려 할 때 아직 마음속에서 정리치 못한 옛사랑의 추억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 지겹고 괴로운 미련과 추억을 쫓아내려 하지만, 이젠 오히려 그 미련과 추억이 그 사람 안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못 나가겠다고 버티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거의 절망적인 상황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한 사람일수록,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일수록, 관계가 깊었을수록 그 증세가 심한 특징을 보여준다. 아직 결혼 안 한 자신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믿으며, 남들이 모르는 그럴 만한 분명한 이유가 많다고 강변하며, 스스로 그렇게 고통을 겪어 마땅하다고 자학하며 점점 과거 악몽의 늪에서 허우적이기까지 한다. 그런 사람들은 쉽사리 과거 실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과거 악몽의 노예로 전락하기 쉽다. 오늘날 안타깝게도 일부 미혼청년들 또는 사별·이혼자들 중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발견되며, 이는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미래 배우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불치병과 같은 수렁에서 벗어나는 길은 망각인데, 정상인에게 있어 의지의 선행 없이는 이 또한 불가능하다. 이미 움키고 있던 것을 과감히 포기해야 새로운 축복을 움켜쥘 수 있듯, 과거의 추억을 훌훌 털어버려야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다가오며 결혼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결혼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날 아름다웠던 추억이든 슬펐던 추억이든, 하루빨리 잊고 그 미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게 결단하기까지 긴긴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야겠지만, 그래도 일단 그렇게 결단을 하고 나면 놀랍게 변화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다. 실연(失戀)과 망상의 병상(病床)을 떨치고 일어나야겠다는 결단만 굳게 서면 곧 찬란한 햇살을 온 영혼으로 맞아들일 수 있으며, 더 이상 음습하고 우울하고 비통스럽고 슬픈 과거 악몽의 터널 속에서 헤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광명의 새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선 지난날의 잘못된 관계에 대한 회개 또한 병행돼야 한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운 잘못,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앞세운 교만의 죄, 하나님의 길보다 자신의 길이 옳다고 우기며 버텨온 자기 의(自己義)의 죄,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치 못하고 깨진 관계와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속의 애욕(愛慾)을 떨쳐내지 못한 잘못 등을 낱낱이 회개해야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스올과 같은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기에 주변에선 인내심을 갖고 말없이 지켜보며 기도해주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덧붙여 이성교제 실패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은 10단계로 세분화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단계: '각성'(집착에 대한 자각)의 단계이다. 이는 불신자가 크리스천이 되는 과정처럼, 우리가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먼저 그 구속됨의 상태를 자각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는 또한 자신의 근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첫 출발점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실마리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아직도 자신이 집착돼 있음을 자각치 못하거나 과거의 그 사람을 붙든 채 과거에 머물기만을 고집 부린다면, 그는 결코 주님께로부터 오는 새로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다. 그러기에 과거 이성교제의 실패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더 이상 그 상태에 머물려 하지 말고, 신속히 그 얽매임과 집착의 사슬로부터 해방받아야 한다.

 
제2단계: '회개'(잘못된 방향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돌이킴)의 단계이다. 많은 미혼크리스천들이 결혼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을 경우 타인이나 외부환경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느냐고 불평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태도다. 만일 몸에 이상이 있다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야 하듯, 결혼문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마땅히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전문가로부터 결혼상담을 받아야 한다. 회개란 잘못된 방향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돌이킴을 의미한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이제껏 결혼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어도 결혼하지 못한 만혼(晩婚)의 미혼청년 상태, 또는 재혼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을 경우 냉정히 가슴에 손을 얹고 주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이제껏 결혼을 위해 애써온 스스로의 방식과 태도, 결혼관, 배우자상, 장애물 등을 꼼꼼히 점검하며 새롭게 결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껏 결혼에 대해서 적극적이었든 소극적이었든,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든 그렇지 않았든, 아직도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정리하지 않았든 정리했다고 착각하든, 결혼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결혼의 문턱에서 자꾸 막힐 경우 일단 모든 걸 멈추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게 급선무다. 잘못된 방향으로 더 멀리 나가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을 찾아 제 길로 나가는 게 중요하듯, 더 많은 사람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서두르는 것보다 자신의 근본 원인을 발견하기까지 잠시 심호흡을 고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3단계: '전환'(새출발을 향한 의지와 기대감)의 단계이다. 과거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회개의 단계에까지 이를 경우, 그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전환점에 서게 마련이다. 그대로 과거의 수렁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이미 회개했기에, 누구든 이 시점에선 방향을 바꿀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갖기 원한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어떠한 목표를 세워 나가야 한단 말인가? 비록 이제껏 결혼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전환점을 맞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 그리고 이 상태로는 더 이상 결혼문제를 풀 수도 없고, 설령 어느 누구와 결혼한다 하더라도 그 후유증으로 파국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위기감. 그러한 두려움과 미래 불안감이 점증함과 동시에 결혼에 대한 갈망이 증폭될 때, 그 사람은 결국 자신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새 출발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미래에 대한 큰 기대감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렇게 결혼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기를 거부하게 되며, 자신의 발목을 잡는 과거 악몽(惡夢)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기에 이 단계를 결혼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으로의 전환 단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4단계: '질곡(桎梏)'의 단계이다. 이는 다시 말해 깊은 수렁에 빠진 단계를 말한다. 처음 막연히 수렁에 빠졌다고 느꼈던 단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느끼는 단계를 말한다.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자각하는 단계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 단계에 이르면 누구나 무력감에 젖게 마련이다. 막상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뛰어들었음에도,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과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좌절감을 겪게 된다는 말이다. 이 단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결혼문제의 해답을 찾아 새 출발의 기대감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음에도 이전과 별다른 차이점을 못 느끼게 된다. 여전히 현실은 바뀌지 않았으며, 지난날의 기억들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며, 이따금 결별한 과거 그 사람과의 추억들이 아지랑이처럼 되살아나는 고통스러움이 반복되는 괴로운 상황. 이미 각성과 회개와 전환의 단계를 거쳐왔지만, 여전히 변화를 실감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의 반복. 갑작스레 자신의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듯한 막막함. 그래도 돌파구를 찾아겠다 느끼는데도 아무런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듯한 암울한 나날. 어떻게 이 질곡을 벗어나야 할지 몰라 절망감마저 느껴지는 단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자신의 과거모습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심하게 느끼기도 한다. 일단 과거에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했다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그 흔적은 남게 마련이며, 그로 인해 새로운 출발을 주저하게 되고, 심지어 과거의 연인(戀人)은 물론 미래의 연인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지난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선 그를 마음으로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고 떠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고, 앞으로 만날 사람에 대해선 그 사람 앞에 순결한 연인으로 다가갈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 이는 사람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과거의 수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에 정비례해서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의 강도가 세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날의 사랑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쉽게 결혼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운 회한과 더불어, 앞으로 새롭게 맞닥뜨려야할 연인을 어떻게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당혹감과 낯설음은 이 단계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셋째, 누구든 오랜 은둔생활이나 칩거생활을 했을 경우, 그 환경으로부터의 탈출은 희망과 설레임이기 이전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 또한 과거의 추억과 회한과 아쉬움이라는 마음의 골방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그 어둠 속에서 탈출하기가 용이치 않다. 마음으로는 간절히 소원하면서도 막상 그 어둠 밖으로 벗어날라치면 불안과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정말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내가 정말 떠나버린 그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과 만나 결혼할 수 있을까? 나를 거절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줄 사람이 정말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그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나는 길은 밝은 세상으로의 화려한 외출(外出)이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한다는 건 생각만큼 용이치 않기에 답답하고 괴로운 것이다.

 
넷째, 더 나아가 자신이 원했던 사람과 결혼 못하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연인과 하나님 모두로부터 버림당했다는 거절·상실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혼란으로 괴로움이 가중되고, 원망과 상실감으로 극도의 무기력증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새 출발은 자칫 공허해지고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갈등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원망과 상실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에게보다 본인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고, 스스로를 쉽사리 지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제5단계: '환멸'의 단계이다. 다시 말해 깊은 수렁 속에서 한없이 헤매고 헤매다 결국 스스로 지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처지에 대해 환멸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과거 때문에 끙끙댄다는 건 이미 패배를 예견하는 것이다. 그건 이길 수 없는 적과 무모하게 맞싸우는 어리석은 장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얼마나 스스로 어리석은 부나비가 되기를 학수고대하는가. 어떤 사람이든 현실을 냉정히 인식치 못하고 계속 과거의 미련 때문에 질곡 속을 헤맬 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배반과 환멸감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석에 이끌리듯 과거회귀의 충동 속에서 맞부딪치는 무수한 좌절과 극도의 실망감은 결국, 그를 과거 쇠사슬로부터의 해방을 촉진하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극도로 환멸토록 부추긴다. 이로 인해 그는 결국 더 이상 자신의 이유 없는 고집을 버텨낼 명분을 잃고 독신(獨身)을 투항하는 것이다.

 
제6단계: '실행'의 단계이다. 독신을 투항한 그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무거운 멍에로부터의 자유함이며, 홀가분함과 기대감이다. 오랜 수렁 속에서의 악전고투로 지친 그에겐 더 이상 뒤로 돌이킬 기력도 막무가내로 버텨낼 명분과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인 반면, 그는 이제 평안한 안식을 찾아 새로운 여행을 떠날 마음으로 들뜨게 된다. 과거로 회귀할 의욕과 힘은 이미 소진했지만, 미래를 향한 기대감과 에너지는 샘솟게 된다. 비록 그 대상은 불확실하지만, 그는 서서히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으로 다가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어색한 느낌과 몸짓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랫동안 독신 아닌 독신을 고집했던 터라 일면 쑥스럽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달라졌다는 평을 듣게 되고, 새롭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거나 스스로 만남을 시도해 새 출발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새 출발을 실행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희망의 날갯짓을 하게 되고, 결국엔 부자연스럽고 쑥스러운 몸짓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향한 거보(巨步)를 내딛게 되는 것이다.

 
제7단계: '퇴행'의 단계이다. 그런데 그토록 열심히 새 출발을 시도했건만, 그가 다시 맞닥뜨린 건 좌절감과 실패감,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왜냐하면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고 새롭게 만나는 이성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와 맞선을 보거나 소개받아 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고생스러운가를 경험하게 된다. 더욱이 연령의 증가에 따라 그 스트레스 포물선은 급격한 상승커브를 그리게 마련이기에, 만혼자일수록 쉽게 좌절하고 주저앉을 확률이 높다.

 
그동안은 전혀 이러한 상황을 경험치 못했기에 그 사람은 새롭게 맞닥뜨린 낯선 환경에서 충격을 받게 되고, 부담감을 느끼고, 새 출발이 만만치 않은 현실임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거나 새로 만나는 이성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회의감을 느껴 과거로 회귀하고픈 충동에까지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하여 더 이상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며 마땅한 도피처가 없을까 두리번거린다. 이 단계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상황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예 단념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쉽사리 극복하지 못할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성이 커진다. 비록 아픈 과거였지만 언제나 길들여져 있었고 안정적이었던 상황이 갑자기 돌변해버렸기에, 그는 극단적 감정의 소용돌이와 혼란 속에서 들짐승처럼 울부짖고 숨을 헐떡일 수도 있다. 자존심은 어느새 또다시 짓밟혔고, 고고(孤高)했던 자신과 과거의 연인에 대한 죄책감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새로운 희망도 빛바래졌고,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돌이킬 수도 없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상황에 처했다고 결론이 나는 순간, 그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새'로 전락하기 쉽다.

 
제8단계: '원망'의 단계이다. 퇴행의 단계를 지나 이 단계에까지 이르면 자신을 향하던 비난의 화살이 별안간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그 동안 마음속으로 은근히 서운했던 감정과 하나님을 향한 불만의 감정이 일시에 폭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거나 전지전능자, 치외법권적 존재가 아니라,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고 망가진 내 인생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가해자로 급부상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기도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주여! 왜?" 라고 부르짖으며 주님께 절규하게 된다. 자신이 이렇게 불행에 빠진 원인이 모두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으로 주님을 탓하고, 주님께서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투로 멋대로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제9단계: '신뢰'의 단계이다. 신뢰란 쌍방 간의 평화를 의미한다. 기나긴 갈등과 원망과 다툼의 단계를 지나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의 응어리도 남아있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상대방에 대한 의혹과 불신으로 인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안정기로 접어들며 이젠 결혼이란 매개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고난과 시련을 주신 이유와 목적을 알게 되며, 그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기에까지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결혼을 향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고, 결혼에 대한 굳건한 의지적 행동을 보여주고, 새 출발에의 갈망이 안정된 결혼의 꿈으로 무르익는다. 하나님은 더 이상 내 축복된 결혼의 훼방꾼이나 방해자가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이시요 내 결혼의 주권자(主權者)와 동반자(同伴者)로 자리 잡는 것이다.

 
제10단계: '치유와 회복'의 단계이다. 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결혼의 장애요소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고, 과거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난 내면의 평안상태에 다다르며, 결혼을 갈망함은 물론 적극 찾아 나서게 된다. 이처럼 완전한 치유의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과거의 추억으로부터도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으며, 아무런 이별의 슬픔을 느끼지 않으며, 더 이상 과거가 현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물론, 기억 속에서는 어느 정도 그 흔적이 남아 조심스럽고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흔적에 불과할 뿐, 현재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치유와 회복'의 단계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는 새 눈앞에 결혼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걸 발견한다. 그 동안 백안시했거나 전혀 자신과 동떨어진 듯 여겼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과 결혼이 현실로 인식되며, 또 실제로 결혼할 용기가 생기고 결혼을 향해 자신 있게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게 되며, 더 이상 떠나간 옛 사랑에 대해 미련을 두지도 않게 되며, 더 이상 옛 연인과 새로 만나는 배우자감을 직접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도 않는다. 이미 옛 연인에 대한 후회와 환멸의 극한까지 경험했기에, 뒤로 돌이킨다는 건 소름끼치는 일이며, 자신을 파멸시키는 일임을 깨닫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오직 자신 앞에 활짝 열린 결혼의 문을 응시한 채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배우자에 대해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결혼은 더 이상 타자(他者)가 아닌 자신의 일부(一部)가 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과거 실연상처로 고통 겪는 이에게 과거 얽매임으로부터의 자유와 결혼의 복된 문이 활짝 열리길 소망한다.


나르시오 16-10-13 22:59
답변 삭제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를 신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즉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된다거나 하는 등의 의견이나 사도 바울처럼 꼭 할 필요는 없다라는 식의 관념 등을 말슴 드린 겁니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은 사회연상과도 맞물려 있는데 결혼하지 못하는 원인을 너무 개인적 관점에서만 보시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