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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2 11:15
결혼의 영적 장애물과 지혜로운 극복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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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영적 장애물과 지혜로운 극복법언론보도 모음




[주요셉 칼럼] 결혼의 영적 장애물과 지혜로운 극복법
▲주요셉 목사(시인/소설가/결혼사역자/반동성애운동가,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www.hesedwem.net,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www.antihomo.net).


 

4가지 영적 원인을 극복할 때 결혼 문이 열린다



 


결혼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상담해 오다 보니 겉보기와 영 딴판인 사람을 자주 접한다. 많은 미혼자들이 결혼을 갈망하고는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내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좋은 사람만 만나면 금방 결혼할 듯이 이야기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도 결혼으로 골인하지 못하는 미혼자들이 의외로 많다. 이는 그의 내면에 도사린 결혼 장애물 때문이며,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복잡하다. 이를 큰 카테고리로 묶어 가족적 장애요소, 개인적 장애요소, 영적 장애요소, 환경적 장애요소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오늘은 먼저 영적 장애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는 지나치게 조건 중심적이고 현시(顯示)적이고 물질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 결혼을 마치 시장의 물건 흥정하듯 성사시키는 속칭 ‘뚜쟁이 문화’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로 인해 세칭 성공적 결혼 스토리는 그 허황됨을 증폭시켜 왔고, 지금도 많은 이들을 암암리에 그릇된 길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마 15:14)는 예수님의 경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내 결혼 문화가 세상 문화와 별 차이 없이 혼재돼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교회 내에도 믿음이나 성격, 또는 신앙 인격보다 외적 조건을 중시하는 흐름에 따라 결혼을 단지 화려한 결혼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풍조가 엿보인다. 목회자를 주례로 모셨다 뿐이지, 일반인들의 결혼식과 별 차이 없이 치러지는 수많은 결혼식은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엄숙하고 경건한 ‘결혼예배’라는 생각보다, 번듯한 ‘결혼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오늘날 크리스천가정에서도 이혼율이 높아가는 추세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려 부득불 갈라설 수밖에 없는 크리스천가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잘못된 결혼관과 결혼풍조로 인한 영향 때문이기 쉽다. 미리 결혼 전에 올바른 성경적 결혼관을 정립하고, 내게 적합한 배우자상을 정립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내게 가장 적합한 배우자를 만나 하나님과 증인들(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하객) 앞에서 엄숙히 결혼예배를 드렸다면 쉽사리 이혼으로 치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드러난 비극적 이혼의 결과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결혼 이전 교제 기간에서의 불충분한 준비와 섣부른 선택이라고 본다. 이는 물론 하나님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의 생각과 신앙이 원인이며, 신앙의 뿌리가 약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크리스천은 결혼문제에서 영적인 가치와 세상 가치를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려는 이원론적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결혼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좋은 외적 조건의 아내와 남편, 며느리와 사위만을 기대하고 또 그것을 부추긴다면, 어쩌면 주님께로부터 책망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이 땅의 결혼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내 아내감와 남편감, 내 사윗감과 며느릿감에 대한 세상적 통념을 과감히 떨치고, 진정 주님께서 내게 주시고자 하는 배우자가 누구인지, 내 자녀의 배우자로 누구를 예비하셨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땅의 혼탁하고 어지러운 결혼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부패하고 일그러진 결혼문화를 변혁시킬 수 있다. 세상조건만을 고려한 채 내 맘에 드는 배우자를 아직 만나지 못해 결혼 안하고 있다고 변명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며, 주님 앞에 깊이 뉘우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미혼청년들이 의외로 많다. 세상에서도 조건중시풍조와 만혼(晩婚)풍조와 비혼(非婚)풍조와 성 모럴의 붕괴 등으로 미혼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도 그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영적 이유로 결혼을 꺼려하는 미혼자들이 대단히 많다. 어떤 면에선 극단적 이유를 앞세우는 듯 보이는 그들의 영적 장애물 중 첫 번째는 잘못된 직통계시이다.

일반인보다 영적으로 앞서며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함정에 곧잘 빠지는 것을 본다. 그들은 결혼문제를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하나님과 단둘이서만 풀려고 한다. 어느 누가 그 사이에 끼어들려고 하면 극도의 경계심과 배척하는 태도를 취하며 스스로 고립된 길을 취하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그렇게 자신의 결혼문제에 대해 아무도 손 못 대게 한 결과, 만혼으로 접어들고 결혼할 소망을 잃고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를 교회 안에서 자주 본다.

 

그러나 이는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 모두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종종 믿음과 헌신과 선교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힘으로 얼마든지 결혼문제를 풀 수 있다고 오만하게 굴다가 결국 자신의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될 경우, 대부분의 미혼자들은 극도의 좌절감과 버림당한 심정으로 곤두박질친다. 사람들로부터의 배척과 멸시는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 있는 상태지만, 그토록 헌신했고 충성했던 하나님으로부터의 배척과 무관심과 무응답은 그 사람을 미치도록 만든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내게 아직까지 결혼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는 걸까?’ ‘왜 하나님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나 나보다 믿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은 쉽게 결혼을 허락해주시면서 왜 내겐 이토록 가혹하시단 말인가?’…….

끊임없이 다가오는 의문과 원망과 상실감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렇게 불만을 터뜨리고 회의하는 그 당사자가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 채 엉뚱하게 불평만 늘어놓고 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나님은 결코 미혼청년들을 결혼하지 못하도록 골탕 먹이시지도, 결혼하길 간절히 원하는 저들의 기도를 외면하시지도 않는다. 문제는 다만 그들이 잘못된 영적 계시를 받고 그것을 악착같이 고수하고 있기에 결혼에 장애를 겪고 있는 것뿐이다.

 

이렇게 영적인 문제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혼청년들의 첫 번째 원인은 개인의 욕심을 자신의 열성적인 신앙생활이나 영성(靈性)으로 기만하거나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고, 영적으로 남들보다 앞서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의 근본 결함이나 잘못에 대해 귀가 어둡기 쉽다. 여간해선 남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자신의 아집을 쉽게 꺾지도 않는다. 스스로 결혼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다는 자기기만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심지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노라고까지 섣부르게 주변사람들에게 공언하기까지 한다. 외부의 압력이 가중될수록 그는 더욱 영적 전쟁에 임하는 군사처럼 강인해지고, 외부의 적들에 대해 극도로 예민해지고, 스스로에게도 가혹하리만치 엄격해지기에 결혼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지고 해결 불가능의 길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영적인 어려움을 겪는 두 번째 원인은 착시 현상이다. 우리가 아는 ‘기하학적 착시현상’이 신앙인에게도 존재하며, 특별히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미혼크리스천들에게 심하다. 오래도록 결혼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미혼크리스천들이 종종 빠지는 혼란은 바로 그와 같은 영적 착시현상이다.

 

기하학적 착시현상이 가르치는 교훈은 우리 눈의 부정확성과 오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의 판단보다 앞세우며, 결혼문제를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착각을 일으킨다. 이사야 55장 8-9절 말씀은 그러한 우리들에게 통렬한 깨달음을 주며, 미혼크리스천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만일 결혼문제가 오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속히 자신이 잘못된 착시현상에 이끌려 시간을 낭비해오지 않았나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의 뜻과 일치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도 동일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배우자상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맞는지 틀리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미혼크리스천청년들이 자신과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착각에 빠져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을 본다. 자신의 진면목을 정확히 꿰뚫고 자신의 분수를 알며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배우자를 고르려기보다, 남들과 비교해 좋아 보이고 자신의 수준 이상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오랜 기도 응답의 대가라고 꿈꾸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축복권 속에서 그러한 일이 가능할 수도 있고, 또 그러한 간증을 종종 접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이 구별되듯, 내 결혼문제도 다른 사람의 결혼문제와 전혀 다르게 풀릴 수 있음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내가 이제껏 보고 경험한 주변의 결혼성공사례들을 내 것과 혼동하는 ‘동일시의 오류’에서 벗어나 얼른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러나 교회 내 만혼(晩婚)의 미혼청년들에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아직도 자신과 결혼할 미혼상대방이 많이 남아있을 거라는 착시현상이다. 늘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다 보면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현실감각을 잃고 사는 게 몸에 익고 습관화되기 쉽다. 현실감각을 잃고 착각 속에서 살 때 주님의 경고에 둔감해지고 소홀해지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여러 경로를 통해 무수히 경고의 나팔을 불어도 들은 체 만 체하는 미혼청년들은 뒤늦게 쓰라린 후회의 눈물을 흘릴 위험성이 크기에 속히 영적인 착시현상과 둔감성에서 깨어나 결혼의 문을 열심히 노크해야만 한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이러한 곤경에 처한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더 늦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치 말기 바란다.

 

영적인 문제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혼청년들의 세 번째 원인은 잘못된 직통계시이다. 일반적으로 기도를 전혀 안 하거나 서툰 사람들에 비해 영적으로 열심인 크리스천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잘 받는 편이다. 그런데 믿음 좋은 사람들이 결정적인 문제 앞에선 오랫동안 기도응답을 못 받는 경우를 본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있는 경우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 있기에 주님께서 기도응답을 주시지 않는 경우이다.

 

주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기도응답은 다음 네 가지이다. 하나는 예스(Yes), 즉 즉각적이거나 조금 시간이 경과한 후에 승낙 받는 응답. 두 번째는 노(No), 즉 즉각적이거나 조금 시간이 경과한 후에 거절 받는 응답. 세 번째는 웨잇(Wait), 즉 주님의 응답이 떨어지기까지 어느 정도 기다림의 시간을 요하는 응답. 네 번째는 체인지(Change), 즉 본인의 기대와 달리 전혀 다르거나 엉뚱한 길로 이끄시는 응답(사 55:8-9).

지금껏 필자의 인생경험이나 수많은 상담사례와 결혼사례를 놓고 볼 때 결혼문제에선 네 번째 응답이 가장 많은 거 같다. 그만큼 주님의 뜻이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과 다르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일부 믿음이 충만해 보이는 미혼청년은 자기 믿음을 과신해 무조건 소망하는 배우자를 달라고 주님께 떼쓴다. 그러다가 필이 꽂히는 이성을 자신의 배우자감으로 점찍고 확신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깊이 그 대상을 묵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수렁으로 깊이 빠져 들어갈 뿐, 그 대가는 혹독한 후회와 환멸과 시간 낭비이다.

 

영적인 문제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혼청년들의 네 번째 원인은 ‘독신은사’와 ‘결혼은사’에 대한 오해다. 많은 믿음 좋은 청년들이 결혼이 저절로 쉽게 풀리지 않을 경우, 너무나 가볍게 스스로를 독신은사자(고전 7:7)로 규정해버린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잠겨 일순간 이성(異性)이나 결혼을 아예 생각조차 않는 ‘일시적 독신은사’의 단계에 머물 때가 있지만, 결혼은사자인 경우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많은 믿음 좋은 미혼청년들이 계속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우를 본다.

 

주님께서 결혼배우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뜨리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결혼 이후 매력이 미움으로 바뀌는 결혼과정의 3단계부터 위기가 찾아와 급속히 실망과 미움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때 부부를 지탱해주는 건 굳은 의지와 헌신이다. 비록 일시적으로 실망감이 몰려오고 권태감이 느껴져도 내가 선택하고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짝이라는 사실로 인해 결혼울타리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가정이 붕괴하는 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른 채 감정과 느낌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너무 드물어 만나기도 쉽지 않은 독신은사자가 아닌 미혼청년은 결혼에 대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무런 노력과 투자 없이 어떻게 열매를 거둘 것인가.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지만(마 6:6), 골방파(派)처럼 고립된 상태에서 하늘로부터 택배서비스를 받을 생각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다음 단계로 이행하여 ‘구찾두의 기도’(마 7:7, 눅 11:9)를 해야 한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주님께로부터 더 이상 결혼응답이 없다면, 이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단계로 진지하게 옮겨가라. 미혼청년들에게 이건 마태복음 28장 19-20절과 같은 엄숙한 지상명령이다. 왜냐하면 결혼배우자는 사람을 통해 만남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막상 교제를 시작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는 건 직접 겪어보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속담은 잠언서에 들어갈 만큼 값지고 귀중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격언이다. 지금껏 수많은 이혼자 상담사례를 통해 볼 때, 결혼 전 이를 무시했다간 훗날 피눈물을 쏟을 걸 각오해야 한다. 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돌다리를 두드리듯’ 기도하면서 평생 해로할 배우자를 꼼꼼히 체크하는 건 지혜로운 태도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 아무쪼록 영적 결혼장애물을 잘 극복해 결혼 문(門)으로 성큼 다가가는 미혼청년들 되었으면 한다.